술술 넘어가는 술, ‘적당히’ 마셔도 간암 유발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7 17:01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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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도수 낮은 술 의미 없어…술에 관대한 음주 문화 버려야

 

흔히 병원에서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적당히’란 매우 애매한 표현이어서 일반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해석한다. 술에 약한 사람은 술 1잔으로 인식하며, 술에 강한 사람은 1병으로 생각한다. 올해 간암의 날(2월2일)을 맞아 대한간암학회는 ‘적당히’의 기준을 ‘하루에 남성은 2잔, 여성은 1잔의 술’이라고 제시했다. 또 ‘남성은 하루 2잔, 여성은 1잔 술도 지속적으로 마시면 간암 발생과 사망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간암 전문의들이 술 1잔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한 결과, 술은 암과 상극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국제암연구소(IARC)는 술, 즉 알코올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흡연·톱밥·햇빛·공기오염 등이 이 분류에 속한다. 1급 발암물질이란 사람에게 확실히 암을 일으키는 것들을 말한다. 따라서 알코올은 확실히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이에 따라 간암의 3대 원인으로 B형 간염, C형 간염과 함께 알코올성 간염이 포함된다. 술에 의해 발생한 간암은 약 10%다. 간암 환자 10명 중 1명은 술 때문에 간암에 걸렸다는 얘기다. 생각보다 적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간암 전문가들은 국내 간암 요인 중 술이 차지하는 비율을 10%보다 높은 30~40%로 본다. 박중원 대한간암학회 회장(국립암센터 간암 전문의)은 “10%라는 수치는 통계의 함정이다. B형과 C형 간염을 제외한 알코올성 간염만 집계하다 보니 그 비율이 적게 잡힌 것이다. B형과 C형 간염 환자 대부분은 술을 마시므로 사실상 간암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거의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외국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이 확실히 구분된다. 미국인의 간암 원인 중 술의 비율은 30~4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여성, 술 1잔으로 간암 발병률 1.33배 증가

 

간암을 일으키는 음주량은 얼마일까. 이에 대해 대한간암학회는 국내외 학술지에 실린 알코올과 간암 관련 연구결과를 종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매일 남자는 술 2잔(알코올 20g) 이상을, 여자는 1잔 이상을 마실 때 간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1.33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1잔 이하로 마시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적은 양의 술이라도 지속적으로 마시는 사람은 간암에 걸릴 확률이 1.33배 높다는 얘기다. 또 하루에 술을 2잔씩 마시면 간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1.17배다. 반드시 간암이 아니더라도 다른 간 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무려 3.22배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B형 또는 C형 간염이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간암에 걸릴 가능성은 각각 2.36배와 1.85배다. 간암 전문의들이 간염 환자에게는 술을 한 모금도 먹지 말 것을 경고하는 이유다. 박중원 회장은 “온 국민이 우려하는 초미세먼지와 비교해 보자. 2014년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은 1.09배 높다. 소주 1~2잔만 마셔도 간암에 걸릴 위험성이 1.33배 높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술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대신 맥주나 와인 등을 마시면 알코올 섭취가 적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소주잔 1잔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약 10g이다. 맥주는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기 때문에 같은 알코올 10g이라도 술의 양은 많아진다. 흔히 500cc를 맥주잔 한 잔으로 볼 때 알코올 함량은 10g을 넘긴다. 약 300cc 맥주량이 알코올 10g 정도 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알코올 10g은 소주잔 1잔, 맥주잔 1잔, 와인잔 1잔, 막걸리 1사발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떤 술이든 특정 술잔으로 마실 때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양은 거의 비슷하다. 알코올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술의 종류가 아니라 그 양에 달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는 한번 술을 마시면 소위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신다. 술잔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양을 하룻밤에 섭취한다. 이 정도의 음주량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도 따로 설명된 바 없다. 거의 치사량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하루 술 2잔 이상, 위험음주”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술 2잔(여성은 1잔)을 넘어서면 과다음주 또는 위험음주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는 65세 미만 남성은 일주일에 14잔 이상을, 65세 이상 남성과 여성은 일주일에 7잔 이상의 술 섭취량을 과다음주라고 규정했다. 과다음주는 흔히 우리가 ‘과음했다’고 표현하는 정도의 음주량이다. 사실 우리가 술 3잔을 마셨다고 과음했다고는 하지 않지만, 국제적으로는 3잔 이상(여성은 2잔 이상)부터를 과음으로 보는 것이다. 하루 3잔을 마시면 혈중알코올농도는 0.05~0.08%에 해당한다.

 

한 번에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은 폭음이다. NIAAA는 2시간 이내에 남성은 5잔 이상, 여성은 4잔 이상 마실 때를 폭음으로 규정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2주일에 1~2회 폭음하면 수시폭음자, 3~5회 폭음하면 상습폭음자다. 14일 동안 한 번이라도 4~5잔을 마시면 폭음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립암센터도 이 정도 음주량을 폭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는 과다음주와 폭음 규정이 있지만, 우리의 음주량과는 거리가 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7년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을 보면 한국은 9.1리터로, 35개국 평균 9리터보다 약간 많다. 이 수치는 지난 5년 동안 변화가 거의 없다. 미국(8.8리터), 일본(7.2리터), 중국(5.8리터)보다 많다. 알코올 소비량이 많은 톱 5개국은 리투아니아(15.2리터), 벨기에(12.6리터), 오스트리아(12.3리터), 프랑스(11.9리터), 슬로베니아(11.5리터)다.

 

이런 나라에 비하면 우리는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주 문화와 술 종류가 다르므로 술을 적게 마신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국에는 대개 와인이나 맥주 등 알코올 함량이 적은 술을 소량씩 식사하면서 마시는 음주 문화가 있다. 우리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그것도 다른 술과 섞어 마시면서도 폭음하는 음주 문화에 익숙하다. 2015년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약 9리터 술 소비량 중 소주(증류주)가 6리터, 맥주가 2리터를 차지했다. 

 

2016년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모든 술의 판매량을 조사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소주 브랜드가 10년째 180개국 증류주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소주 판매량은 위스키인 조니워커 판매량의 5배에 이른다.

 

이쯤 되면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먹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3년 국민영양통계를 보면, 50세 미만까지는 밥보다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사회생활이 가장 활발한 30~49세는 하루 음주량이 178g으로, 백미 섭취량 156g보다 많다.

 

그렇다 보니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밥보다 술에서 얻는 현상도 나타났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2016년 세계 24개국의 칼로리 섭취 경로를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는데, 한국인은 알코올을 통해 섭취하는 칼로리양이 세계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하루 평균 약 168kcal를 술에서 섭취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뒤를 이어 폴란드·독일·체코 등이 알코올로 섭취하는 칼로리양이 많은 나라로 꼽혔다. 한편 콜라 등 청량음료에 의한 칼로리 섭취는 한국인이 1인당 하루 44kcal로 나타나 조사 대상국 중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마트 진열대에 가득한 다양한 술 제품 © 시사저널 박정훈



 

알자지라 방송 “한국 음주 문화, 매우 폭력적”

 

2016년 중동 방송 알자지라는 한국의 음주 문화를 고발하는 보도를 장시간 내보냈다. ‘한국 숙취’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아시아 담당 특파원인 스티브 차오는 서울 현장 취재를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하는 나라지만 밤이 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며 한국의 폭탄주 회식 문화를 꼬집었다. 만취해 인사불성이 된 젊은 여성을 술집 화장실에서 경찰이 끌어내는 모습, 술로 인한 가정폭력 등과 같은 부정적인 장면, 수십 잔의 폭탄주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 등이 전파를 탔다. 알자지라는 “미국인이 독주를 일주일에 평균 3잔, 러시아인은 6잔 마시는 데 비해 한국인은 무려 14잔을 마신다. 지구상 어떤 곳보다 독주를 많이 마시는 곳이 한국이다. 술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매년 200억 달러(약 23조95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음주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우 폭력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직장 회식에서 술은 여전히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잡코리아가 2015년 남녀 직장인 79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술을 마시는 직장인은 93%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은 술을 가까이하는 셈인데, 이 가운데 일주일에 2~3회 음주하는 비율은 21.4%, 1회 음주는 23.4%, 한 달에 2~3회 음주는 36%로 집계됐다. 직장인의 70.6%는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술을 마신다. 조직의 단결을 위해 회식에서 술을 마시는 비율은 37.1%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은 조직의 일원이 아니거나 누구와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찍히기도 한다. 음주를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이 반복되므로 직장인의 술 문화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맥주와 양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문화는 과거보다 줄었다. 그 대신 탄산음료, 고카페인 음료, 이온 음료를 섞어 마시는 새로운 음주 문화가 유행했다. 알코올의 쓴맛보다 달콤한 맛 때문에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된다. 또 여성의 기호에 맞춰 주류업체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시장에 내놨다. 예컨대 1924년 알코올 도수가 35도였던 소주는 2014년 17.8도로 낮아졌다. 과일 맛이 나는 술도 여성의 구미를 당겼다. 폭음하는 여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월 1회 폭음하는 비율은 남자가 54%, 여자는 23%로 집계됐다. 남성의 월간 폭음률은 줄어든 반면 여성은 소폭 늘었다. 월간 폭음률은 남성이 2010년 58%에서 54%로 줄었지만, 여성은 같은 기간에 22%에서 23%로 소폭 증가세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술(혼자 마시는 술) 문화도 확산했다. 친목 도모나 회식이 아니어도 술을 찾는 인구는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일반 가정은 물론, 혼자 살면서도 대형마트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를 사다가 냉장고에 저장하는 생활습관도 고쳐야 할 음주 문화다. 사실 주류업체는 다양한 수입 맥주를 묶어 싼값에 내놓는 마케팅을 펼쳐 술 소비를 부추긴다.

 

술 광고가 자유로운 점도 음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요인이다. 길거리나 음식점에서 술 광고 포스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술 광고에는 청소년(청소년기본법상 24세 이하)이 모델로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서는 25세 이하 유명인의 주류 광고 출연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는 아예 TV 예능 프로그램에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24시간 술을 살 수 있는 점도 음주량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미국 등지에서는 일정 시간을 넘기면 술 판매점은 물론 술을 보관한 창고도 문을 잠근다.

 

담배처럼 술 제품에도 경고 문구가 있다. 1995년 이후 21년 만인 2016년 그 경고 문구가 변경됐다. 2015년까지는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 간암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경고 문구에 있었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주류회사가 3가지 경고 문구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 표기할 수 있는데, 주로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알코올은 발암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을 일으킨다’거나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라는 내용을 표기할 수 있지만 주류업체는 ‘암’이란 표현을 꺼린다. 간암 전문가들은 술 경고 문구가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지적한다.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병원, 청소년 수련시설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한 법안이 국회에서 두 번 무산된 바 있다. 찜질방과 국공립공원에는 주류 반입이 금지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술에 관대하다.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질러도 심신미약 상태를 참작해 형량을 줄이기까지 한다.

 

술은 ‘적당히’ 마셔도 간암 위험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식욕을 자극하므로 체중 증가의 원인이다. 비만은 거의 모든 질환의 기본이 되는 대사증후군의 원인이다. 한마디로 술은 암과 모든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셈이다. 국민은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술에 대한 관대함 탓에 잘못된 음주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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