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문화에도 ‘미투’ 운동이 필요하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7 17:49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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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중원 대한간암학회 회장 “잘못된 음주 문화, 10~20년 후 사회적 문제로 부상”

 

알코올은 국제암연구소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술은 특히 간암의 발병 요인이다. 우리는 이 술을 자주 그리고 과하게 마신다. 술을 상대방에게 강하게 권하기까지 한다. 이런 음주 문화에 대한간암학회가 제동을 걸었다. 하루 1잔만 마셔도 간암 등 간 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박중원 대한간암학회 회장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

 

박중원 회장은 지난해 19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간암 치료 전문가다. 현재 국립암센터 간암센터 수석연구원이자 국제암대학원 암관리학과 교수다.

 

© 시사저널 박정훈


 

간암 환자 가운데 어느 정도가 술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정확한 통계가 없어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의사로서 접한 간암 환자의 최소 3분의 1은 술과 관련이 있다. 간암에서 차지하는 술 요인을 통계로는 10%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술의 폐해가 심각한 것이다. 정부와 국민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저항이 강해 금주 캠페인을 펴기조차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서 미국·일본·중국 사람의 알코올 소비량은 우리보다 낮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과 안 마시는 사람이 명확히 갈린다. 게다가 알코올 함량이 많은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일본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이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므로 그 폐해가 적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통계는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거의 모든 성인이 술을 마시므로 알코올 소비량이나 폐해가 크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면 건강을 덜 해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근거가 있나.

 

“근거 없는 얘기다. 알코올 도수보다 술의 절대량이 중요하다.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술 판매량이 더 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젊은 여성이 음주에 노출되는 기회가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향후 10~20년 뒤 여성의 음주 문제가 부상할 것이다. 이런 것이 국민적 폐해로 돌아온다.”

 

 

술 제품에 붙는 경고 문구가 2016년 변경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보다 음주 경고 수위가 낮아졌다고 평가한다. 주류업체는 3가지 경고 문구 중 1가지를 선택해 술 제품에 표기하면 된다. 그런데 업체들이 선호하는 경고 문구에는 ‘암을 유발한다’는 내용이 빠졌다. 따라서 음주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적은 술을 거의 매일 마시는 사람과 이따금 한 번씩 몰아서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가.

 

“음주와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환자를 대상으로 문진한다. 하루에 술을 1잔 이상 마시는지, 또는 일주일에 몇 번 술을 마시는지 등을 묻는다. 폭음하는 타입과 꾸준히 음주하는 타입을 분석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둘 다 간암이나 간 질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일 소주 1잔을 마시는 것과 일주일에 1번 소주 7잔을 몰아서 마시는 것 모두 간에 미치는 악영향은 같다는 얘기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도 매일 여자는 하루 1잔 이상, 남자는 2잔 이상의 술을 마시면 술과 관련된 질환을 유발한다고 규정했다.”

 

 

대한간암학회는 ‘하루에 남성 2잔, 여성 1잔의 술도 지속적으로 마시면 간암 발생과 사망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그 정도보다 적게 마시면 괜찮은 것인가.

 

“그 문제를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술 1잔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성은 하루 2잔 이상, 여성은 1잔 이상의 술을 마시면 간 건강에 위험하며, 그 이하 음주도 괜찮지 않다는 것이다. 1잔의 술도 건강에 좋지 않으며 그 이상 마시면 그 위험도가 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대한간암학회는 ‘적정 음주량이란 없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하고 싶다.”

 

 

학회가 음주 문제를 강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자의 양심으로 말하겠다. 술을 조절하면 간 질환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질환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로 들어서는 데 있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대사성질환(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심장병 등)이다. 그 핵심 요인이 비만과 술이다. 비만과 술은 형제지간과 같아서 술을 조절하지 못하면 대사성질환을 잡지 못한다. 대사성질환은 국가적으로도 큰 부담이어서 미국이 대사성질환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따라서 음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도 20년 후엔 간 질환과 대사성질환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외국과 우리의 음주 패턴은 어떻게 다른가.

 

“외국은 술을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알코올성 지방간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집계하고 분석해 각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알코올성 지방간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나누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예컨대, 일주일에 한두 번 술을 마시는 사람을 비알코올성이나 알코올성으로 구분하기가 모호하다. 이렇게 애매한 사례가 간암의 15%나 차지한다.”

 

 

건강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음주 문화는 어떤 것들인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술을 마시게 하는 것 같다. 제사 때 음복이라며 미성년자에게도 술을 마시게 한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 어른에게 술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이런 문화는 일단 술을 당연히 마셔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아예 술에 손도 댈 수 없도록 했다. 또 TV에서 술을 마시는 방송을 하는 것이나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음주 문화도 버려야 한다. 요즘 미투(me too) 문화가 확산하면서 앞으로 성희롱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음주 문화도 크게 변해야 한다. 음주 문화는 한 개인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만큼 심각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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