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화도시’ 선포한 김포, 그에 걸맞는 상징이 필요하다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8 15: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문화적 소통으로 인류 화합” 포부 밝힌 김포시

 

김포시는 2015년 ‘평화문화도시’임을 선포했다. 김포시에 가면 ‘평화문화 1번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지역 홍보물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북한땅을 마주보고 있는 도시로서 평화문화도시란 비전을 가지는 것이 일견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자는 김포시를 한강신도시로 기억할수도 있고, 사실은 김포시에 있지도 않은 ‘김포공항’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김포시가 선택한 도시의 정체성은 ‘평화문화도시’다.

 

‘평화’와 ‘문화’ 모두 낯설지 않은 단어지만, ‘평화문화도시’라고 하면 좀 낯설다. 무엇을 뜻하는 걸까, 쉽게 와닿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평화’는 특히나 남한과 북한이 큰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교류하며 지내는 상태를 뜻하는 일이 많았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두고 ‘평화올림픽’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 속에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만들어지자, 고대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회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포시의 슬로건은 '평화문화 1번지'이다. 사진은 3월3일 개관한 김포시 운양동 아트빌리지의 전시 중 '평화문화 1번지 김포로의 초대, 詩랑 市랑'. © 사진=김지나 제공


 

‘정의 실현’ 적극적 의미의 평화 추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평화의 의미는 좀 더 심오하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소극적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로, 갈등의 소지가 있는 ‘저항’의 분자들을 평화를 위해 폭력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용인되는 다소 역설적인 평화다. 반면 적극적 평화는 간디·마틴 루터 킹과 같은 위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실현된 상태’를 뜻한다. 김포시는 이 적극적 평화를 지향하겠다고 천명했다. 평화문화도시란 이런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 교육하는 도시라 해석할 수 있겠다. 문화적 소통을 통해 인류 화합을 이루어 세계 평화를 만들어가는 도시. 그것이 김포시가 현재 내걸고 있는 비전이다.

 

신선하기도 하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평화문화도시에서는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 어떤 장소들이 있고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여전히 알기 어렵다. 2015년에 ‘평화문화도시 추진전략’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 전략들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까마득하다. 우리나라에서 평화를 논할 때 남북교류나 통일을 벗어나 더 큰 이상을 꿈꾸기에는 지금 한반도가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 특수하기도 하다. 평화라는 단어해석에 몰입한 나머지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김포시에서 그려내야 하는 평화의 실체가 모호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애기봉전망대에서는 강을 사이에 두고 좌측의 북한땅과 우측의 남한땅이 동시에 보이는 경관이 펼쳐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TOP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