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파문’, 지방선거에 하나의 변수일 뿐
  • 이민우 기자·김현 뉴스1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1 21:09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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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추가 폭로·4월 남북정상회담·5월 북미회담·개헌 이슈 등 선거 변수 아직 많단 지적도

 

유력 대권잠룡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3월5일 수행비서 성폭행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의혹이 제기된 이튿날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일체의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은 추가 피해자까지 나오면서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피해자인 수행비서는 3월5일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피해사실을 공개한 뒤 “추가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한 뒤 이튿날 안 전 지사를 검찰에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3월7일엔 안 전 지사가 설립한 연구소의 직원으로 일했던 한 여성이 같은 방송에 나와 1년 넘게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야말로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파문이 일파만파 확장되는 상황이다.

 

3월9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서부지검에 자진출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충격에 빠진 與…“유구무언” 바짝 몸 낮춰

 

이른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불길이 말로만 맴돌던 정치권으로 옮겨 붙은 것이긴 하지만, 그 첫 대상이 차기 대권주자이자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 특히 오는 6·13 지방선거와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는 여야 정치권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의 파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논란은 단순히 안희정 개인을 넘어서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권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꼽혔던 정봉주 전 의원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3월7일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이 과거 대학생 시절 여의도의 한 호텔 카페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피해자의 주장을 보도하면서 정치권 미투 운동의 또 다른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해당 피해자는 “(정 전 의원 같은)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일(서울시장)을 맡길 수 없잖아요.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요”라고 했다. 당초 정 전 의원은 당일 오전 11시 출마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보도가 출마회견 1시간30분 전에 나오면서 결국 기자회견은 10분 전에 취소됐다. 정 전 의원은 “한 편의 완벽한 소설”이라고 주장하며 출마기자회견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 전 의원은 2월 더불어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복당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여권 인사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연이어 지목되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자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미투 지지선언을 했다.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이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형국이다. 3월7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당대표 간 청와대 오찬회동에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오찬 자리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유구무언”이라며 “청와대에 초청을 받고도 여당 대표로서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미투 복장을 하고 왔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거듭 몸을 낮췄다. 민주당 내에선 “하나만 더 나오면 끝”이라는 위기감까지 감돌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양상이다. 안 전 지사 사태의 충격이 워낙 커서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파문으로 민주당의 지지도는 2주 만에 상승세가 꺾이며 오차범위 내에서 하락했다. 3월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3월 1주 차 주중집계 결과, 민주당의 지지도는 47.6%로 지난주보다 오차범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 내에서 2.4%포인트 하락했다. 이 조사는 tbs 의뢰로 3월5일부터 사흘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3만252명과 접촉해 최종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나온 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 전 지사를 즉각 출당·제명하면서 큰 폭의 하락은 막았지만 추가 피해 사례가 폭로될 경우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감돌고 있다.

 

당장 이번 사태로 안 전 지사가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으면서 민주당의 역학 구도와 차기 당권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말 충남지사 불출마 의사를 일찌감치 밝혔다. 이후 2022년 대선을 목표로 중앙 정치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였다. 안 전 지사는 성폭행 논란 이전까지만 해도 오는 8월에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확보할 것이란 분석도 많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 파문으로 치명상을 입으면서 정치 역학구도의 변화가 예상된다. 사진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날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당시 의원, 경선 경쟁자 등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與, 차기 당권 구도에도 변화 예상

 

안 전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친노(親노무현)의 핵심 인사지만, 지난해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항마 역할을 자처했다. 특히 대연정 등을 주장하고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당내에선 완전한 비문(非문재인) 인사는 아니지만 비문 진영도 포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지녔다고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안 전 지사의 출마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당권 경쟁의 성격과 구도 모두 바뀔 전망이다.

 

당초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친문계와 비문계의 지지를 받는 안 전 지사의 진검승부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방선거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하지만 비문 진영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후보가 빠지면서 친문계의 내부 경쟁으로 구도가 짜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3월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전 지사가 사실상 당권 경쟁에서 빠졌기 때문에 차기 전대는 누가 더 문 대통령을 잘 도울 것인가의 경쟁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물론 일각에선 구도를 미리 판단하긴 섣부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당대회가 6월 지방선거 및 재·보궐 선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당권뿐만 아니라 향후 대선가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근소한 차로 3위를 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중도 하차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주목도가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같은 잠재적 후보군이 더욱 주목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당 밖에선 안 전 지사와 정치적 스펙트럼이 유사해 지지층이 일부 겹치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인사들이 연이어 미투 운동의 중심에 설 경우 자유한국당의 지지율도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당권·대권 구도뿐 아니라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권에선 “악재”라는 분석에 입을 모으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3월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높은 데다 큰 실책만 없으면 6월 지방선거는 무난한 상황이었는데,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는 등 미투 운동이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전 지사 등 여권 인사들의 성폭력 문제를 이슈화할 텐데, 여권에 마이너스인 것은 맞다”고 공감을 표했다.

 

3월6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전국여성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박원순·이재명·안철수 ‘반사 이익’ 얻을까

 

일단 민주당은 미투 운동과 지방선거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영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미투 운동과 선거를 연계해 생각하지 않겠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미투 운동은 미투 운동대로 단호하게 대응하고, 지방선거는 지방선거대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여권에 유리한 현재 지방선거 판세를 뒤엎을 만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방선거까지 아직 석 달가량 남아 있는 데다 미투 운동이 어디서 터져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무통으로 알려진 한 여권 인사는 “지방선거는 아직 세 달이나 남았고, 미투 운동이 여권에서만 계속 나오겠느냐”며 “그 사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 개헌 등 이슈가 너무나 많아 안 전 지사의 미투 사건이 충남 지역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전국적 파급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희정 전 지사는 여권에서 상당히 유력한 대권후보였다. 정봉주 전 의원도 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다”면서 “상황 전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여권이 유력주자들을 자꾸 잃게 되면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또 “안 전 지사는 유력한 차기 주자였기 때문에 충청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역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선거에서 여당이 이겨본 적이 없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보수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권에 유리하다고 볼 순 없다. 종합적으로 보면 여권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도 “안 전 지사 사태는 수도권 표심엔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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