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건축 규제 강화에 ‘목동 아줌마’들 뿔났다
  • 최형균 시사저널e. 기자 (ch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3.13 15:13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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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강화에 비강남권 단지들 ‘패닉’…“정권퇴진 및 낙선운동도 불사” 반응도

 

정부의 잇단 재건축 규제 강화 움직임에 재건축 추진 단지 입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재건축 연한이 도래해 사업 첫걸음을 떼려는 목동 등 비(非)강남권 단지 입주민들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을 검토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권퇴진 운동과 함께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올 정도다.

 

무엇이 ‘목동 아줌마’로 대표되는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을 화나게 했던 것일까. 국토교통부는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재건축 단지를 겨냥해 연초부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1월18일 서울 가좌 행복주택에서 ‘주거복지 협의체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건축 대상) 건축물의 구조 안전성이나 내구연한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전문가들은 재건축 연한이 30년에서 40년으로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한 강화는 목동·상계동 등 30년 연한이 도래한 주요 재건축 단지의 사업 절차를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카드로 여겨졌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강화 움직임에 목동 등 비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입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재건축 단지 겨냥한 정부 압박 잇달아

 

김 장관의 ‘연한 강화 암시’ 영향으로 재건축 단지의 집값 급등세가 주춤하자 국토부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1월21일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 20곳에 대한 부담금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조합원 1인당 평균 부담금 규모가 3억7000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15개 단지와 4구 외 지역 5개 단지의 평균 부담금 규모는 각각 4억4000만원, 1억4620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남 지역은 부담금 규모가 평균 8억4000만원에 이르는 단지가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에 재건축 단지 입주민들이 크게 동요했다.

 

재건축 단지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압박은 전반적인 집값 안정에는 일단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월말부터 2월 셋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매주 둔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 암시에 재건축 아파트는 물론 일반 아파트까지 가격 급등 피로감을 겪은 결과다. 대출규제 등으로 수요자들의 관망세가 뚜렷해지면서 가격 상승 여력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건축 규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재건축 절차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강화다. 2월20일 국토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안전진단 평가항목 중 구조안전성 비중이 종전 20%에서 50%까지 상향되는 것이 골자다. 재건축 사업이 급속히 추진되며 시장 과열이 발생하는 여지를 차단하기 위한 국토부의 의중이 담긴 것이다. 안전진단 이외 다른 평가지표 비중은 주거환경의 경우 40%에서 15%, 시설노후도는 30%에서 25%로 하향 조정됐다.

 

안전진단 절차는 그동안 재건축 사업의 요식행위 정도로 여겨졌다. 재건축 추진 단지로서는 사실상 관심 밖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차 가능 대수, 주거환경 등 환경 요인이 낙후되면 큰 문제 없이 안전진단을 통과해 다음 재건축 절차로 이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국토부 조치로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조차 끼우기 어려워졌다. 국토부는 재건축 단지 입주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우회로를 내놓았다. 주거환경 평가 세부항목 중 주차대수 비중을 20%에서 25%, 소방활동 용이성을 17.5%에서 25%로 늘렸다. 2월20일부터 10일간 진행된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을 토대로 국토부가 내놓은 방안이다. 비중이 높아진 주차난과 소방안전에 따라 재건축 단지의 주거환경 전체 등급이 과락에 해당하는 E등급으로 나올 경우 구조안전성 점수와 무관하게 재건축 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보완 조치에도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안전진단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보완 조치는 유명무실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비강남권은 상대적으로 강남권에 비해 재건축 추진 절차가 느리다 보니 정부 정책으로 받는 타격이 더 크다. 양천발전시민연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입주민 연합회, 비강남권 차별 저지 범국민 대책본부 등이 잇달아 구성되고 있다.

 

비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단지 입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토부의 이번 대책이 재건축 속도가 빨랐던 강남권 단지에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니만큼 비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실질 주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내놓은 대책이라는 점, 셋째는 내진 반영 여부를 무시한 채 구조안전성 비중만 높인 무리한 처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양천발전시민연대 관계자는 “전체 배점에서 아주 미미한 주차대수, 소방활동 용이성 비중을 높였다고 언급하는 것은 (국토부의) 립 서비스다”며 “현행 구조안전성 평가에 내진 반영이 극히 어렵다는 것을 건의했음에도 국토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안전까지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정부에 안전은 없고 정치만 있다는 게 재건축 예정 단지 입주민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라며 “헌법소원뿐 아니라 행정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차대수, 소방안전 배점을 높였지만) 정부 정책기조로 봐선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시킨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기준을 완화시켰더라도 실제 운용을 다르게 할 여지도 있다. 주차대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가 관건이지만, 주차대수가 넉넉한 재건축 단지가 전무한 만큼 무작정 완화된 기준을 (정부가) 적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목동 등 지역구 의원들 민심 겨냥 법안 발의

 

설상가상으로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재건축 단지에서 실망매물이 나오고 있다. 7일 기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6단지 전용 47㎡의 일부 매물 호가가 7억8000만원까지 낮아졌다. 지난달 실거래가가 8억원이었던 점에 비춰 2000만원가량 낮은 매물이다. 마포구 성산동의 성산시영아파트 전용 50㎡는 최대 호가가 5억6000만원이지만, 호가를 5억3500만원까지 낮춘 매물이 나왔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고정, 구조안전성 비중을 30%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구조안전성 대비 주거환경 비중을 높이는 내용의 도정법 개정안 발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의 공통점은 정치적 입지가 목동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이다. 황 의원은 서울 목동이 지역구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지만 목동이 위치한 양천 갑의 당협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지역 민심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 입주민들이 지방선거까지 염두에 둔 단체행동을 예고하고 있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원·기초단체장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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