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세상 지배해도 호킹은 살아남았을 것”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6 13:23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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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과 1년간 함께 한 소광섭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우주를 연구하던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나 우주의 별이 됐다. 1942년 태어난 그는 대학 졸업 이후 50여 년 동안 사지가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았다.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활동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호킹 박사는 달랐어요.”​ 국내에서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소광섭 서울대 명예교수의 증언이다.

 

소광섭 교수는 1990년 말부터 1년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펠로우(fellow)로 근무했다. 우리나라의 방문교수 개념이다. 이때 호킹 박사와 같은 연구실을 썼다. 당시 호킹 박사는 이론 물리학과 학과장이었다. 소 교수는 매일 오전 11시나 오후 4시에 호킹 박사와 티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소 교수는 호킹 박사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몸은 거의 못 움직였지만 사람들과 얘기하기 좋아했고, 방문객이 오면 항상 친절하게 맞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직접 말은 못하고 컴퓨터에 저장된 기계음으로 소통했지만, 구사하는 언어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매우 적절했습니다. 호킹 박사를 중심으로 연구실은 늘 화기애애했습니다.”

1990년 9월 시사저널 초청으로 한국에 방한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모습. 호킹 박사의 오른쪽 뒷편 파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소광섭 서울대 명예교수다. ⓒ 시사저널


호킹 박사는 누구보다 활동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리는 각종 세미나에 다 참석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적극적으로 질문도 했다. 연구실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갖는 식사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소 교수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살았고, 사회성이 뛰어났던 사람”이라고 했다. 

 

외신의 평가도 비슷하다. AFP 등은 호킹 박사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녔던 별이 졌다”고 표현했다. 호킹 박사의 유족들도 부고 소식을 전하며 “그의 재치와 유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했다. 호킹 박사가 코믹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나 SF영화 ‘스타트렉’의 제작진이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에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1990년 시사저널 초청 방한에서 첫 만남 “베토벤 같아”

 

소 교수는 호킹 박사를 베토벤에 비유했다. 청각을 잃고도 위대한 음악가가 된 베토벤처럼, 호킹 박사 역시 루게릭병을 이겨내고 위대한 과학자가 됐기 때문이다. 소 교수는 “호킹 박사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모든 논문이나 책을 다 외우더랍니다. 남이 책을 넘겨주면 겨우 읽는데 일단 본 건 전부 머리에 저장을 하는 거예요. 입력한 걸 토대로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이론을 만들어내는 거죠. 손도 못 움직이는 사람인데, 베토벤에 버금가는 인간 승리라고 봅니다.”

 

소 교수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호킹 박사를 처음 만났다. 1990년 9월 시사저널 초청으로 호킹 박사가 방한했을 때였다. 소 교수는 그의 두 차례 강연에서 모두 통역을 맡았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다.

 

“서울대와 신라호텔에서 강연이 열렸는데 모두 청중으로 꽉 찼어요. 전부 6000명쯤 될 겁니다. 그 많은 대중 앞에서 호킹 박사는 기죽지 않고 열강을 했어요. 통역을 해야 하니 보통 강의보다 시간이 배는 길어졌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죠. 몸을 못 움직일 뿐이지 에너지가 굉장한 분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위대한 학자, 시간여행 가능성 높여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블랙홀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소 교수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블랙홀에 대한 이론을 창시한 사람이 바로 호킹 박사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켜 블랙홀의 실체에 좀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 교수는 “호킹 박사는 블랙홀 연구로 시간여행 이론이나 시공간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초석을 쌓았다”면서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가장 훌륭한 물리학자”라고 극찬했다.

 

그럼에도 호킹 박사는 노벨상과 인연이 없었다. 그가 블랙홀 이론을 입증하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인 걸로 풀이된다. 하지만 천체물리학 분야는 호킹 박사의 이론을 이어받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은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오는 중력파를 관측한 3명에게 돌아갔다.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고 있는 셈이다. 소 교수는 “한국에서도 우수한 젊은 과학자들이 천문학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에 대한 주장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대표적인 ‘안티AI’다. 2014년부터 매년 “AI는 인류를 위협하는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또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개발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래봤자 호킹 박사는 살아남을 겁니다.” 소 교수는 말했다. AI가 인류를 압도하더라도 호킹 박사처럼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은 괜찮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이제 머리 좋다고 자랑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우리나라도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킹 박사는 한때 “지능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뜻한다”며 “아이큐를 뽐내는 이들은 모두 루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소 교수는 지난해까지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생물․의학물리 센터장으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지금은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소광섭 교수 제공


 

 

스티븐 호킹은 ‘사랑꾼’

 

호킹 박사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 또 있다. 러브 스토리다. 이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해 개봉하기도 했다. 영화는 호킹 박사와 그의 첫째 부엔 제인 와일드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호킹 박사는 나중에 두 번째 부인 일레인 메이슨을 만났다. 소 교수는 일레인과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한다.  

 

“일레인은 호킹 박사의 간호원 출신이었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게 인상깊더라구요. 호킹 박사는 대학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살았는데, 하루는 거기서 아내와 함께 밤샘 파티를 열었습니다. 두 사람이 꽤 다정해보였어요. 나중에 이혼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그때만큼은 사이가 좋았죠. 호킹 박사의 활기찬 생활은 아내의 헌신 덕분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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