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軍 첫 미투 폭로···‘성폭행 피해’ 女장교 인터뷰
  • 유지만·구민주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6 10:59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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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성폭행 사건 피해자 “그는 내게 ‘남자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2017년 9월, 해군은 박아무개 중령과 김아무개 대령 등 2명의 해군 간부를 구속했다. 이들은 부하였던 김하나(가명·여) 대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해군에 따르면, 김 대위는 2010년 직속상관이었던 박 중령에게 성폭행당한 뒤 부대 지휘관인 김 대령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상담하던 중 김 대령에게 재차 성폭행을 당했다. 해군은 사건 발생 7년 만에 수사에 착수해 가해자들을 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현재, 피해자 김 대위가 언론에 모습을 보였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5일과 올해 3월20일, 21일 세 차례에 걸쳐 김 대위를 만나 인터뷰했다. 김 대위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하는 데 동의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투(#MeToo) 운동’ 과정에서 처음으로 나온 군 내 성범죄 폭로다.

 

이 사건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피해자인 김 대위가 성소수자(동성애자)라는 점이다. 김 대위는 “성소수자인 나는 권력을 가진 상관이 건드리기 아주 편한 상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위는 또 “성소수자라는 점을 악용했고, 나를 마치 ‘교육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

 

현재 김 대위는 휴직 상태로 1심 재판에 임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옛 기억을 되살리면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판정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3월 안에 결론이 나리라 예상했던 1심 재판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가해자 2명은 모두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첫 번째 가해자인 박 중령은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두 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김 대령 측은 김 대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대위는 “미투 운동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몸과 내 기억이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들에게 유죄 선고가 내려진다 해도 군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제는 내 삶을 되찾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수차례 성폭행에 임신 중절까지 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지난해 9월 이 사건에 대한 단신 보도가 언론에 나왔다. 그때는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조직이 피해를 입을 것 같아 기사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큰 이유는 재판 중 가해자들이 보인 태도였다. 인신공격성 발언도 있었고, 사건을 부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모든 커리어를 흔들려 작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의 힘에 기대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행 사건은 언제 발생했나.

 

“2010년 9월말에서 12월초까지 발생했다. 가해자는 당시 배에서 같이 근무했던 상관 2명이다. 박 중령은 직속상관이었고, 김 대령은 배의 지휘관이었다. 회식 술자리가 끝난 뒤, 술에 많이 취했는데 아침에 깨보니 모텔이었다. 바로 옆에 직속상관인 박 중령이 있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느낌이 바로 왔다. 나가지도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내 몸을 본인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이후에도 성폭력이 이어졌나.

 

“모텔에서의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강간과 추행이 이어졌다. 배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상습적으로 추행했다. 그 후에도 강제적으로 회식에 참석하게 하거나 모텔로 데려가서 강간한 경우가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확정된 것이 세 번이다. 그로 인해 임신했었고, 중절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지휘관(김 대령)에게는 언제 이 사실을 알렸나.

 

“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휴가신청을 하면서다. 배에 근무하고 있는 동안 중절 수술을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휴가를 요청했다. 박 중령 때문에 임신하게 됐고 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휴가가 필요하다는 정도로만 보고했다. 강간당했다는 표현은 당시에 쓰지 않았다.”

 

 

중절 수술 이후에 지휘관이 성폭행한 것인가.

 

“중절 수술 얘기를 했을 때 별 얘기 없이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서 수술 후 몸을 추스르고 복귀했는데, 그 이후에 티타임 형식으로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이후 본인 자택에서 날 성폭행했다. 첫 번째 가해자와 똑같은 강간이었고, 사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삽입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가해자가 여러 차례 성폭력을 행사할 때 거부할 수는 없었나.

 

“난 일상적인 업무 환경에서도 명백한 ‘을’의 입장이었다. 첫 번째 성폭행이 있었던 모텔에서 뛰쳐나갔다면 난 출근하지 못하고 배에서 바로 내려야 했을 것이다. 성폭행 사실을 밝힌 이후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심리적으로도 그 순간 공포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김 대위는 증언 과정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점을 밝혔다. 김 대위는 상관 둘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꼽았다. 직속상관이나 지휘관에게 이런 점을 이미 밝혔고,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 오히려 약점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7년 6월1일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해군 대령에 의한 해군 여대위 자살 사건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 사진=연합뉴스


 

“내 ‘첫 남자’가 돼 좋다고 해”

 

성소수자임을 밝힌 것은 언제인가.

 

“성폭행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상관과 지휘관에게 밝혔다. 가해자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소수자라는 점이 드러나면 조직에서 생활하기 힘들지 않나.

 

“내 성적 지향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 나를 대상화하며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이 싫었다. 상관에게 알렸던 것은 일종의 ‘보호막’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남군·여군 관계없이 조직에서 신뢰와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누군가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내 자괴감을 이용했다.”

 

 

어떻게 이용했나.

 

“1차 가해자인 박 중령은 내가 기억하는 한, 분명히 자신이 나의 ‘첫 번째’가 돼 좋다고 어필했고 (남자를) 가르쳐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성관계를) 어떻게 하냐’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가해자 모두 같은 태도였나.

 

“아니다. 2차 가해자는 1차 가해자로부터 당한 그런 행동들을 내가 함구했기 때문에 본인이 또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어딘가에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 생활을 어떻게 이어갔나.

 

“지휘관에게 당하고 나서 더 이상 이 배에서 근무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전출 요청을 했다. 요청 후 1개월이 안 돼 이동했다. 배가 아닌 육상근무로 배치됐다. 그 후 만난 지휘관에게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난 공론화를 원하지 않고 조심하고 싶다, (근무를)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으로 상담했고 그 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김 대위의 피해 사실이 군 내부에 알려진 것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7년여가 지난 2017년 6월이다. 이보다 한 달 전인 2017년 5월에는 해군 여군 장교가 상사의 성폭행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해군 내부에서는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김 대위는 “친분이 있었던 여군 수사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는데, 6월 근무지가 변경되자마자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김 대위도 끔찍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떻게 사건에 대해 밝히게 됐나. 

 

“2017년 2월쯤 개인적인 일로 내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여군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대화를 많이 했다. 이 때문에 친분이 생겨서 나중에 사적인 자리에서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다. 물론 이때도 사건화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전출 가기 전에 만난 자리에서 ‘사실 과거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었다. 당시 이 얘기를 들은 수사관이 엄청 분개하면서 당장 수사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었는데, 6월에 해군본부로 옮기자마자 헌병대에서 날 찾아와서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해군 여성장교 자살 사건 직후인가.

 

“맞다. 시기적으로 내부에서 성범죄는 엄중히 처벌한다는 분위기가 생기던 때였다. 헌병대 측에서는 오래전 사건이라 해도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도 난 수사를 원하진 않았다. 헌병대 연락을 받은 뒤 한 달가량 고민했다. 이후 7월에 군 검찰에서 첫 조사를 받았고 그 후 수차례 조사를 받았다.”

 

 

관련 내용이 9월 단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가해자들이 구속됐을 때다.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 자체를 부정하더라. 애정 관계에 기반을 둔 불륜이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걸 보니 혐오감도 들었다. 사건화하지 않았던 내 선택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사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증언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옛날 일이라 물적 증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내 증언과 기억이 곧 증거인 상황이었다. 아주 자세하게 증언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니 너무 힘들었다. 증언을 여러 번 반복했고, 자세한 피해 사실을 떠올리기 위해 최면 수사도 받았다. 그때 엄청 울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기억이 더 선명해지긴 했다. 지금은 거의 다 기억이 난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없었나.

 

“검찰 조사 과정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판정을 받았다. 원래 약간의 우울증은 있었는데 조사 후 기억을 떠올리면서 생겼다고 들었다. 사건을 묻어두고 있다가 지금 표출하다 보니 증상들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군 조직은 어느 정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런 피해가 더 많다고 보나.

 

“어느 조직이나 성 문제는 있다. 특별히 더 많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군에서는 피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옷을 벗게 되는 것 같다. ‘조직 부적응자’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처럼 7년이나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피해 입은 여군이 있다면 이젠 얘기해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재판이 끝난 뒤 군에 복귀해도 심적으로 힘들 것 같다.

 

“우선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구도 만나고 싶다. 가장 큰 바람은 다시 떳떳하게 군복 입고 복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이 없다. 부대 정문 위병소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우선 생활만이라도 회복하고 싶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 대령 측 인터뷰] 

“피해자 주장은 모두 허위”

 

시사저널은 가해자로 지목된 김아무개 대령 측과 접촉했다. 1차 가해자로 지목된 박아무개 중령은 관계는 인정하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2차 가해자로 구속된 김 대령은 모든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령의 부인은 “김 대위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김 대령 부인과의 일문일답이다. 

 

 

혐의사실 중 강간이나 추행 부분은 인정하나.

 

“전혀 인정하지 못한다. 김 대위가 박 중령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다는 주장부터가 거짓이다. 남편(김 대령)이 평소에 김 대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는 친구’라고 표현했다. 임신 중절 수술 얘기를 할 때 나도 남편 옆에 있었다. 당시 남편이 김 대위에게 ‘성폭행이냐’고 물었고, 김 대위는 성폭행은 아니라고 답했다.”

 

 

김 대령이 진상조사를 했나.

 

“당시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박 중령과도 얘기를 나누고, 김 대위와도 얘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합의에 의한 관계로 결론지었던 것이다. 다만 위에 보고하지 않은 잘못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 대위를 재차 성폭행했다는 것은 맞지 않는 얘기다.”

 

 

김 대위는 임신 중절 후 김 대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남편이 성폭행한 것으로 지목된 숙소는 어느 대원이라도 들어와서 머무르다 가는 기숙사형 숙소였다. 게다가 사령관 관사가 베란다 앞이고, 방음도 잘 안 되는 방이었다. 이상한 행위를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김 대위는 남편이 술을 마셨다고 했는데, 남편은 지병이 있어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 남편도 ‘내가 정말 성폭행하려 했다면 모텔에 가지 왜 숙소로 부르겠나’라고 했다.”

 

 

성폭행이라고 알렸을 경우 조직에 머무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사건화하려 했다면 이미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대위는 ‘내가 이렇게 당했다’는 사실을 여러 지휘관에게 말한 뒤 그들의 관심을 받고 우수자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 것 같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진실이 묻히고 너무 여성 쪽 말만 듣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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