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 불구, 기결수 변호사 접견권 여전히 제한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3 11:11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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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결수 변호사 접견권 제한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판청구권 침해”

 

헌법재판소(헌재)가 기결수(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변호사 접견권을 보장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 교도소에서는 여전히 기결수의 변호사 접견을 불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헌재의 기결수에 대한 변호인 접견불허 헌법불합치 판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시사저널의 의뢰를 받은 A변호사는 최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기결수 B씨의 변호사 접견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구치소 측은 B씨가 기결수라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접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결수란 확정판결을 받은 수형자를 말한다. 따라서 기결수는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결수일지라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과 별개로 다른 사건에 대해 재판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때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것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기결수에게도 별개의 사건과 관련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재판청구권이 있고, 그 일환으로 변호사 접견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기결수의 변호사 접견권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측은 “기결수가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데 제약이 따른다면 이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에 대한 침해”라면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결수와 변호인 사이에 접견교통권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결수 역시 언제든 변호사 만날 수 있어야”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5년 11월26일 ‘수형자와 소송대리인 변호사와의 접견에 대해 접견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시행령 제58조 2·3항은 ‘변호인(변호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포함한다)과 접견하는 미결수용자를 제외한 수용자(수형자, 사형확정자 등)의 접견 시간은 회당 30분 이내로 한다. 수형자의 접견 횟수는 일반 접견과 합해 매월 4회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헌재는 이 시행령이 기결수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수형자의 재판청구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소송대리인인 변호사와의 접견 시간 및 횟수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변호사 접견을 성격이 전혀 다른 일반 접견에 포함시키는 것은 접견 시간 및 횟수를 제한함으로써 청구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이래의 박은태 대표변호사는 “헌재의 결정은 기결수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보장을 하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제약만 가하라는 것”이라면서 “기결수에 대한 변호사 접견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즉 기결수가 언제든지 변호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2016년 6월28일 형집행법 시행령 59조 2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 접견 시간은 회당 60분으로 늘렸고, 변호사 접견은 월 4회로 하되 일반 접견 횟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한 소송사건의 수 또는 소송내용의 복잡성 등을 고려해 접견 시간대 외에도 접견할 수 있고 접견 시간 및 횟수를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천주교 인권위 측은 “헌법 제27조에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14조 제1항에서 ‘사람은 누구나 형사상의 혐의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거나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으로 재판을 받게 될 때 법률에 따라 설치된, 관할권 있는, 독립된 그리고 편파적이 아닌 법정이 관장하는 공정한 공개 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헌법과 국제조약에서 말하는 ‘재판’이란 민사재판, 형사재판, 행정재판, 헌법재판 모두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즉, 기결수 역시 민사사건이든 형사사건이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기결수의 변호사 접견권을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독일·미국은 기결수 변호사 접견권 보장

 

기결수에 대한 변호사 접견권은 교도소 내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에 대한 법적 다툼이 발생했을 경우 더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천주교 인권위 측은 “기결수가 교도소 내의 부당한 처우나 교도관의 불법 가혹 행위 등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구금상태라는 제약과 자신의 직속 통제기관과 소송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송 상대방과 대등한 지위에 설 수 없다”면서 “기결수의 이러한 조건은 형사 절차상 검사와 법적 논쟁을 벌여야 하는 구속 피고인의 불리한 지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기결수에 대한 변호사 접견권은 미선임 변호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형집행법 시행령 58조 2항은 ‘변호인과 변호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미선임 변호사 역시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 이후 법무부가 신설한 형집행법 시행령 59조 2항에는 ‘(제58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소송사건의 대리인인 변호사’라고 표기했다. 이와 관련해 박은태 변호사는 “선임을 위한 면담 상태는 선임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선임 변호사라고 해서 변호사 접견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재판청구권 침해다. 선임을 위한 변호인 접견 역시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판결 취지로 보인다”면서 “선임을 위한 변호인 접견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재판청구권 행사의 시작이다. 선임을 위한 변호인 접견을 시행령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입법의 불비(不備)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결수의 변호사 접견과 관련해 독일의 경우 연방행형법에 따라 접견 시간 및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수형자가 선임했거나 장래에 선임하고자 하는 변호사와의 접견을 허용하며, 원칙적으로 횟수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이는 법률적 조언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권을 수형자에게 보장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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