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리온그룹, ‘MB 당선 축하금 의혹’ 진실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4 09:19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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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경 부회장, 검찰수사 코칭 과정서 당선 축하금 언급

 

오리온그룹이 충격에 휩싸였다. 최근 제기된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축하금 의혹’ 때문이다.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청담동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던 김아무개 원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금을 전달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오리온은 공식 해명자료를 배포하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오리온은 일단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제보자로 지목된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이 과거 계열사에서 비리를 저지른 인물이며, 그가 공개한 녹취도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 전 사장과 오리온 가운데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일까.

 

© 시사저널 포토


 

“의도된 녹음” vs “이 부회장 수사 코칭”

 

조 전 사장이 공개한 녹취에는 이 부회장과 2012년 4월과 5월 사이 통화 내용이 녹음돼 있다. 오리온은 조 전 사장이 자신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강하기 위해 이 부회장을 상대로 일종의 ‘유도신문’을 했다고 주장한다. 조 전 사장의 입장은 다르다. 녹취 당시 오리온그룹 비자금 수사에 대한 검찰 수사망이 오너 일가까지 향하자 이 부회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녹취에서 당선 축하금이 언급된 것도 이 부회장이 검찰수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코칭’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2012년 4월30일자 통화 녹취록의 일부다.

 

 

이화경 부회장(이): 난 검찰이 너무 미워. 어떻게 이렇게 표적수사를 할 수가 있어? 난 검찰이 정말, 편지 쓰고 죽고 싶어.

 

조경민 전 사장(조): 표적수사는 저 하나에 지금 타깃이 정확해요.

 

이: 아, 그것도 너무 미워. 왜, 왜 해야 되는데(울먹임)? 그렇게 당하고 나왔는데 (울먹임). (중략)

 

조: 예, 중심 잡으세요. 중심 잡을….

 

이: 그러면 내일 당신이 나한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줄 수 있게 전화를 좀 해 줄래?

  

조: 뵐게요, 제가.

 

이: 우리 만나자, 응?

 

조: 예, 제가 뵐 테니까.

 

이: 한번 만나자(울음).

 

조: 예, 뵐 테니까 중심, 중심 잡으세요. 이 폭탄이 어디로 터질지 몰라. 모르지만 사장님한테 가….

 

 

“금품 전달 안 해” vs “이 부회장 지시로 전달”

 

오리온은 또 이 부회장이 이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금전 요구는 물론 금품을 전달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혹의 본질은 이 부회장이 김 원장에게 당선 축하금 명목의 자금을 전달토록 했는지 여부다. 이 부회장은 김 원장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전해졌다. 김 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인 2011년 나경원 당시 서울시장 후보(현 자유한국당 의원)와 관련해 도마에 오른 ‘고액 피부과’를 운영해 온 인물이다. 2012년 5월3일자 통화 녹취록을 보면, 이 부회장은 김 원장을 ‘대통령 주치의’이자 ‘정치권에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로 인식해 온 것으로 보인다. 

 

 

조경민 전 사장(조): 요즘 그 사람 만나긴 하지요? 그분 안 만났으면 좋겠….

 

이화경 부회장(이): 그, 그러니까 그, 그러니까…. 클리닉 원장(김 원장), 원장 얘기하는 거지요?

 

조: 예 예.

 

이: 내가 만, 만나긴 하지. 그 사람한테 꼭 얘기를 할게.

 

조: 그러니까, 그렇다고 좀 떠들지 말라고, 그다음에….

 

이: 알았어요, 알았어요. 응.

 

조: 대통령 주치의는 맞아요?

 

이: 요즘에 떨어져 나갔어. 사건 난 다음에.

 

조: 아, 그전에 있었는데?

 

이: 아, 그전에는 정말 대통령 주치의였는데 그 무슨 강, 무슨 여자 있었잖아. 나경원, 나경원이 때문에 완벽하게 다 떨어져 나갔어. 정치권하고는 완벽하게 떨어져 나갔어요.

 

 

처음 당선 축하금이 언급되는 것은 2012년 5월9일자 녹취록에서다. 이날 통화에서 조 전 사장은 김 원장에게 건네진 자금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조경민 전 사장(조): 사장님(이화경 부회장) 관련해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하나 있잖아요.

 

이화경 부회장(이): 예, 그건 누구야?

 

조: 한 명뿐이 더 있어요? 지금 사장님 때문에 그 골치 아픈 사람, 우리가.

 

이: 누구지? 아우, 누구야? 이름 좀 대 봐.

 

조: 아유, 뭐 있잖아요. 그 원장(김 원장) 하나 뭐 이상하게 생긴….

 

이: 아, 원장. 예 예. 예 예 예.

 

조: 예, 그게 또,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것들은 전부 다 다 회사 용도로 쓰이고 다 이렇게 했는데, 그다음에 다른 건 우리 용처를 다 밝힐 수가 있는데 두 가지를 밝힐 수 없는 게 있어요. 근데 공교롭게도 두 가지가 삼, 3개, 3개야.

 

 

여기서 조 전 사장이 언급한 ‘3개, 3개’는 각각 3억원을 의미한다. 하나는 조 전 사장이 2008년 4월 오리온 계열사 부회장이던 윤아무개씨에게 이 전 대통령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3억원이다. 다른 3억원은 김 원장에게 건네진 것이다. 이 가운데 2010년에 전달된 2억원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자금으로 지목된 바 있다. 당시 김 원장은 오리온·미디어플렉스·메가마크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해결해 주겠다며 자금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저널은 2014년 6월 ‘세무조사 무마 2억, MB 당선 축하금 3억도 오너가 지시’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김 원장에게 전달됐다는 3억원 중 나머지 1억원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당선 축하금이다. 조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 전 대통령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2008년 김 원장에게 1억원을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지시 없이는 거액의 자금을 임의대로 인출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로비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만 이 자금이 실제로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김 원장이 금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등 이른바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오리온은 이 부회장의 지시는 일절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2012년 5월9일자 녹취록에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이화경 부회장(이): 그게(김 원장에게 전달된 자금) 지금 얼만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지금 문제가 안 될까 싶더라고요.

 

조경민 전 사장(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있어요. 첫 번째는 뭐 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한번은 선거 끝나자마자 사장님이 저한테 “(김 원장에게) 가서 이렇게 전달해라” 한 적이 한 번 있고.

 

이: 그게 얼마야?

 

조: 그때가 한 개(1억원)일 거예요.

 

이: 한 개.

 

조: 한 개를 사장님이 저한테 이렇게 해서 이렇게 요구를 하니 이런 용도로 뭐 어쩌고저쩌고…. 그랬잖아요.

 

이: 그렇지요. 응.

 

조: 대선 축하자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갖다 주라 해서 한 적이 있고. 그다음에 두 번은 하나씩, 하나씩인데 뭐 우리 조사(세무조사)받을 때 자기가 누구 또 잘 안다, 어쩐다 하면서 쓴 자금이 있잖아요.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은 2011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 당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사진) 대신 총대를 멨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비리로 회사에 손실” vs “오너 일가에 팽”

 

오리온은 조 전 사장을 횡령 및 배임을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는 등 그룹에 피해를 끼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비자금 조성에 대한 책임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전가했다고도 지적했다. 조 전 사장은 오리온이 자신을 부도덕한 인물로 몰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오히려 과거 검찰수사 당시 담 회장 대신 총대를 멨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담 회장이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발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도 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오리온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 당시 조 전 사장이 담 회장의 책임을 대신 뒤집어썼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제1441호 ‘[단독]오리온에서 벌어진 조폭 영화의 한 장면’ 참조). 조 전 사장은 2011년 검찰수사 당시 담 회장이 총대를 메주는 대가로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이 부회장 부부가 보유한 지분 가치 상승분의 10%를 주겠다고 한 과거의 약속을 이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이 1992년 자신에게 신규사업 개발전담팀인 에이펙스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이런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스톡옵션인 셈이다.

 

조 전 사장과 담 회장은 2011년 10월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1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담 회장이 말을 바꿨다는 것이 조 전 사장의 주장이다. 자신에게 사직을 종용하고 약속도 이행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 회장은 조 전 사장의 계속된 압박에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2012년 3월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의 대화 녹취록이다.

 

 

담철곤 회장(담):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10%를 줄까요?

 

조경민 전 사장(조): 그건 주식을 매각하셔야죠. (중략)

 

담: 지금 매각을 못해요. 지금 매각하면 조 사장이 회장한테 핵심 잡았구나, 매각하는 순간, 그러니까 온 동네 모든 사람들이….

 

조: 회장님….

 

담: 그러니 그건 대외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좋은 방법을 찾아요. 다 같이 가는 길이 있어야 되지. 

 

 

이후 조 전 사장은 돌연 검찰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에 투서가 접수되면서다. 처음엔 오리온이 운영하던 스포츠토토가 골프장 사업을 위한 부지 매입 과정에서 수백억원대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검찰수사 결과,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이내 또 다른 투서가 접수돼 새로운 수사가 시작됐다. 이번엔 스포츠토토에서 허위로 투표용지 등을 발주해 1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였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사장은 허위 발주는 없었다는 입장을 지켰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스포츠토토에 발주 관련 서류 제출을 요청했지만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때문에 조 전 사장은 결국 최종적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반전된 상태다. 스포츠토토 소액주주들이 조 전 사장을 상대로 허위 발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민사소송 과정에서다. 재판이 진행되던 중 스포츠토토 퇴직 직원들이 실제 발주가 이뤄졌다는 서류를 조 전 사장에게 제공했다. 이로 인해 형사재판의 결과는 뒤집어졌다. 이와 관련해 오리온은 의도적으로 자료를 누락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 전 사장은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데 모종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조 전 사장은 최종심이 마무리되는 대로 재심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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