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노’자도 말 못 꺼내는 IT 종사자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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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인력’ ‘힘 없는 위치’ ‘살인적 업무’…네이버 노조 설립 계기로 본 IT업계 근무 실태

 

“드디어 IT업계에도 노조가!”

 

4월2일 네이버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 네티즌이 쓴 댓글이다. 그동안 IT업계가 '노조 무풍지대'였음을 보여주는 반응이다. 네이버 노조 선언문에도 "지금까지 IT업계는 노조의 불모지였다"란 구절이 나온다. 국내 최대 IT기업 네이버에 노조가 결성된 건 창립 19년 만에 처음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모습. ⓒ연합뉴스


‘IT업계 채용은 새벽 인력시장과 다를 바 없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이 대세다. IT 업체가 기존 기업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더 젊고 소통을 중시하는, 선진적인 기업문화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IT업계에 무노조 풍토가 짙은 이유가 뭘까. 일단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친다는 점이 그 이유로 언급됐다. 'IT업계 구인구직은 새벽 인력시장과 다를 바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프로그램 개발자로 3년째 근무중인 정기훈씨는 "인터넷에 '자바(프로그램 언어) 할 수 있는 분 3명 구합니다'와 같은 공고가 수시로 올라오고, 충원도 그때마다 곧장 이뤄진다"면서 "그러다보니 굳이 대우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취업정보기업 '인디드' 한국사이트엔 4월4일 하루에만 150건이 넘는 개발자 구인공고가 올라왔다. 

 

정씨는 "그나마 개발 쪽은 업계에서 중시하기 때문에 (노조가 없어도) 지원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반면 중견 IT기업에서 서버관리를 하고 있는 구아무개씨는 "우린 힘이 없기 때문에 노조 설립에 대해 목소리조차 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는 "IT 분야별로 다르겠지만 서버관리 쪽은 돈을 버는게 아니라 쓰는 직종"이라며 "개발 쪽과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IT업계 특성상 노조가 결성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 10년째 몸담고 있는 개발자 김아무개씨는 "노조가 있는 산업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자동차인데, 자동차 산업은 파업 등으로 생산라인을 멈추는 게 가능하다"며 "하지만 IT산업은 계속해서 서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점 때문에 노조가 있어도 잘 안 돌아갈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악한 근무환경…노조 설립, 네이버 계기로 IT 업계 전반 확산돼야​

 

그럼에도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대선 후보로 나섰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노조 필요성을 강조하며 "IT업계의 젊은 세대는 노조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버관리자 구씨는 "노조만 설립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며 ​"IT업계 종사자들이 근무강도는 센데, 처우는 그에 비해 열악한 편"이라고 했다.  ​

  

IT업계의 악명 높은 근무강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16년 11월 넷마블 자회사에서 일하던 청년 개발자가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당시 나이는 28세.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에 대해 "발병 4주 전 1주일 간 78시간, 발병 7주전 1주일 간 89시간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2016년 한해에만 넷마블에서 숨진 근로자가 두 명 더 있었다. 네이버 노조는 선언문을 통해 "열정페이라는 이름 하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IT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연대할 것이다"라고 주창했다. 이와 관련, 개발자 정씨는 "네이버나 넷마블 같은 대기업은 그래도 복지가 좋은 편"이라면서 "중소 IT기업 근무자는 밥먹듯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교대근무를 하지만 제대로 된 몸값을 못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IT업계 노조 설립이 네이버에서 일회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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