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상징이 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6 10:55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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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샤라포바·티에리 앙리 등 방한한 해외 스타들 거쳐 가는 관문으로 자리매김

 

MBC 《무한도전》이 3월말을 끝으로 종영한다. MBC 측에선 휴식기를 가지고 올가을 이후 돌아올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현재의 《무한도전》 그대로 다시 시작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일단 지금 시점에선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MBC는 폐지되는 예능에 종종 ‘시즌 종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다음 시즌에 돌아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무한도전》은 2005년 《강력추천 토요일》에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등의 코너로 시작해 2006년 5월 지금의 《무한도전》으로 독립 편성됐다. 초기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무한도전》으로 자리 잡은 후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 예능 중의 예능, 국민 예능,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방송 프로그램 등으로 10년 이상 군림하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무한도전》은 출연진에 캐릭터를 부여한 최초의 예능이었다. ‘유반장’ 유재석, ‘박사장’ 박명수, ‘식신’ 정준하, ‘짧은 아이’ 하하, ‘퀵 마우스’ 노홍철, ‘어색한 뚱보’ 정형돈 등의 캐릭터가 각인되고, 그 캐릭터들 사이의 상생 관계가 살아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이 본격화됐다.

 

© 사진=연합뉴스


 

《무한도전》, 리얼 예능의 시대를 열다

 

시청자들은 평균 이하를 표방한 《무한도전》 캐릭터들에 동질감을 느꼈다. 멤버들이 울고, 웃고, 힘들어 할 때 시청자도 그 고락을 함께했다. 멤버들의 무모한 도전이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세월이 흐르고 시청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무한도전》 속의 캐릭터도 함께 성장했다. ‘어색한 뚱보’ 정형돈이 나중에 ‘패션 리더’나 ‘예능 천재’ 캐릭터로 바뀐 게 대표적이다. 평균 이하로 출발했던 그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예능권력으로까지 성장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미국 공연에 함께하며 국제 스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성장의 연대기를 시청자와 함께하면서 《무한도전》과 시청자 사이엔 각별한 유대감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끝난다고 하자 《무한도전》 2030 팬들이 상실감을 토로하는 이유다.

 

《무한도전》은 새 흐름을 열었다. 바로 ‘리얼’의 시대를 연 것이다. 이 프로그램 전까지 예능은 스타 게스트에 의존하며 대본에 의해 정돈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멤버들의 캐릭터가 살아나고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도, 그 캐릭터가 대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을 반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사생활까지 여과 없이 드러내며 현실의 모습을 그렸다.

 

사람들은 이런 형식을 그 전까지의 예능과 구분해 ‘리얼버라이어티’라고 했다. 어느 정도 설정은 있지만 현장에서의 진행은 멤버들의 행동에 의해 실제 상황으로 전개됐다. 이것이 그 전의 예능에선 느끼지 못했던 ‘날것’의 재미를 안겨줬다. MC에 의한 차분한 진행이 없었고 모든 멤버들이 저마다 자유롭게 행동했다. 점잖게 정돈되지 않은 생생한 재미를 추구하는 인터넷 시대와 어울리는 예능 형식이었다. 이때부터 다수의 카메라가 출연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형성된 수많은 동영상을 편집실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며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작업 방식이 정착됐다.

 

《무한도전》이 열어젖힌 리얼의 시대는 예능을 구시대와 완전히 단절시켰다. 《무한도전》이 바로 예능에서 21세기를 열었던 것이다. 타 방송사들도 속속 리얼버라이어티 대세에 합류해 KBS 《1박2일》, SBS 《패밀리가 떴다》가 《무한도전》과 함께 주말 리얼버라이어티 3파전을 이뤘다. 세 프로그램 모두 ‘국민 예능’이라 불렸고 각 방송사의 연예대상을 휩쓸었다. 주말마다 세 프로그램 지지자들의 설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무한도전》-김태호 PD-유재석 지지자들과 《1박2일》-나영석 PD-강호동 지지자들의 대결이 과열됐었는데, 이제 그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린다. 지금은 《무한도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리얼의 시대가 열렸다. 리얼버라이어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리티다. 나영석 PD가 tvN으로 이적해 리얼리티 시대의 총아가 됐다. 12년간 정상의 자리에서 쉼 없이 달려온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에너지 고갈을 호소했다. 휴식기 이후에 어떤 아이디어로 돌아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무한도전》이 특별한 프로그램인 이유는 사회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박명수의 여드름 난 등에 그려진 보물지도를 따라 보물상자를 찾는 ‘여드름 브레이크’ 추격전에는 철거민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추격전의 배경이 모두 철거 역사와 관련 있는 곳이었고, 보물 액수는 과거 철거민에게 지급된 이주 보상비와 같았다. 식목일에 박명수가 멤버들의 물을 빼앗아 독식하는 상황극을 방영했는데, 거기에 대자본의 물 독점을 풍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의미는 예능에서 보기 힘든 미덕이었기 때문에 시청자가 뜨겁게 반응했다. 일본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을 찾은 삼일절 특집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의미에 더해 《무한도전》에는 창조성이라는 미덕도 있었다. 보통 예능이 정해진 포맷으로 계속 이어지는 데 반해 《무한도전》은 매주 포맷이 달라졌다. 매주가 특집이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제작진이 에너지 고갈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창조성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왼쪽부터 《무한도전》 앙리 편, 잭 블랙 편, 무한상사 편, 토토가 편 © MBC 제공



사회를 담은 예능에 시청자들 공감

 

바로 이런 사회성과 창조성에 열광한 시청자들에 의해 《무한도전》에는 아이돌과 같은 극렬한 팬덤이 생겼다.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선 없었던 일이다. 팬덤은 《무한도전》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며 때로는 ‘시어머니’ 노릇도 했다. 경쟁 프로그램 PD는 공고하고 거대한 《무한도전》 팬덤 때문에 경쟁이 힘들다고 토로했고, 팬덤의 열기에 부담을 느껴 정형돈과 노홍철이 복귀를 포기하기도 했다. 팬덤의 레이저 눈빛 때문에 새로운 멤버를 제대로 뽑지도 못했다. 마치 아이돌 팬덤 현상에서처럼 《무한도전》 상품(굿즈)이 판매됐고, 수익금으로 약 63억원이 기부됐다. 앞으로 다시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다.

 

《무한도전》은 예능의 본령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을 히트시킨 것을 비롯해 수많은 특집이 시청자를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포복절도하게 했다. ‘무한상사’를 통해 88만원 세대의 상실감을 위로하며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무한도전》 가요제로 음원시장을 뒤흔들었고, ‘토토가’ 특집으로 90년대 복고 트렌드를 열었으며, 한국 대표 예능으로 마리아 샤라포바·티에리 앙리·잭 블랙 등 많은 해외 스타가 거쳐 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상징과 같았던 프로그램이 이제 떠난다. 한 시대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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