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스스로 제 몸에 칼 댈 수 있을까 (下)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0 17:12
  • 호수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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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과거사委, 시국사건·부실수사 의혹사건 재조사 결정

 

(上)편 ​ ‘장자연 리스트’ 사건, ‘용산 참사’에 이어서 계속

 

검찰이 과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에 들어가게 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4월2일 오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10차 회의를 열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사건 등 5건의 사건을 2차 사전조사 사건으로 선정해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에 사전조사를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장씨 사건과 함께 용산 참사,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사건, 낙동강변 2인조 살인 사건, 춘천 강간살해 사건 등이 재조사 사건으로 선정됐다. 재조사 권고를 받은 사건들은 모두 과거 검찰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은 것들이다. 특히 장자연 사건의 경우에는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동참했다.

 

과거사위는 이와 함께 2월 선정한 1차 사전조사 사건 12건에 대해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두 차례 보고받아 검토한 결과, 8건에 대해 본조사를 진행하도록 권고했다. 본조사 대상은 △김근태 고문 사건(1985년)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1991년) △약촌오거리 사건(2000년) △PD수첩 사건(2008년)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2010년) △남산 3억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년, 2010년, 2015년) 등이다. 본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1999년) △유성기업 노조 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2011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사건(2012년) △김학의 차관 사건(2013년) 등 4건도 사전조사를 계속 진행한다.​ 

 

2008년 8월6일 정연주 KBS 사장이 KBS 본관에서 감사원의 특감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방송국 본관 앞에서는 정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 시사저널 우태윤


 

정연주 前 KBS 사장 배임 사건(2008년)

 

2008년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이 사퇴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정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던 사건이다. 대표적인 검찰권 남용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정권의 언론탄압 사건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03년 KBS 사장에 취임했던 정 전 사장은 사장직을 연임하던 중 2008년 8월 해임됐다. 해임 사유는 세금 소송 과정에서의 배임 문제였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이 2005년 국세청을 상대로 수년간 벌여온 법인세 부과 취소소송에서 승소가 예상됨에도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KBS에 1892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혐의(특가법상 배임)로 기소했었다.

 

이 사건은 약 4년 가까이 지난 2012년 1월 대법원이 정 전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마무리됐다. 정 전 사장은 당시 대법원 무죄 확정 직후 “우리 사회 정의를 위해 복무해야 할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정치권력을 위해 봉사, 복무해 온 권력 남용에 대해 대법원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는 뜻”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기소 초반부터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이명박 정권이 정 전 사장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재조사에서도 검찰권 남용 여부와 정권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낙동강변 2인조 살인 사건(1990년)

 

일명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으로 불린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호인으로 참여한 사건이기도 하다. 용산 참사나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사건이 시국사건이라면,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고문과 증거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 갈대숲에서 두개골이 함몰된 여성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마땅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키 큰 1명, 키 작은 1명의 2인조”라는 목격자 진술만이 전부였다. 경찰은 2년 가까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마땅한 용의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1년 11월 낙동강 갈대숲에서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뺏은 2인조를 검거했는데, 경찰은 이들이 엄궁동 살인 사건과 같은 장소에서 범행을 벌였고 2인조인 데다 목격자 진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진짜 범인이라고 의심했다.

 

경찰은 두 사람 중 신장이 큰 남성이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남성이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결론 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두 사람은 살인 혐의로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을 받아 출소한 이들은 당시 경찰수사에서 고문과 허위자백이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이 사건을 변호한 문 대통령 역시 2016년 10월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변호사를 35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었다”며 이들은 살해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춘천 강간살해 사건(1972년) 

춘천 강간살해 사건은 1972년 9월27일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서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9살 딸이 강간 살해당한 사건이다. 배우 류승룡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전 국민적 관심이 일어난 이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지시했고, 경찰은 파출소장의 딸이 자주 다니던 만화방 주인 정아무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에 검거된 정씨는 줄곧 범행을 부인했으나, 강압 수사에 못 이겨 “내가 죽였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결국 정씨는 1987년까지 꼬박 15년을 복역한 뒤 풀려났다. 출소한 정씨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1999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고, 대법원으로 재항고했으나 2003년 12월 대법원도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결국 정씨 사건에 대한 조사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 경찰은 정씨가 범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물을 조작하고, 유리한 증언을 한 목격자를 구속하는 방법으로 증언을 짜맞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찰은 범행을 부인하는 정씨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결국 2007년 11월 과거사위의 재심 권고로 재심이 다시 열렸고 춘천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사건 당시 제시한 검찰의 증거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다”며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재항고해 고법에서 2심이 열렸고 2심도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2011년 10월27일 무죄가 확정되면서 정씨는 사건 발생 39년 만에 치욕을 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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