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DNA를 바꾼 ‘어니스트 티’의 도전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9 09:49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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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Tea Road] 칼로리 줄인 ‘프리미엄 티’로 승부수

 

어니스트 티(Honest Tea)는 한국에 아직 생소한 브랜드지만, 연매출 5500억원이 넘는 차(茶)음료 전문 회사다. 버락 오바마의 입맛을 상원의원 시절부터 사로잡은 탓에, 미국 대통령 전용기와 헬기 안에도 이 어니스트 티가 구비돼 있을 정도다.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는 ‘오 매거진’에 소개되면서 오프라 윈프리의 잇 아이템(it item)으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4000여 종의 새로운 음료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미국의 음료시장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에 속한다. 살벌한 음료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어니스트 티의 출사표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마실 차는 내가 만들겠다’였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세스 골드먼(Seth Goldman)은 업무출장이 잦았다. 여행 도중에 땀 흘리고 목마를 때 딱히 마실 만한 건강음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어느 날 깨달았다. 대부분 건강음료에는 설탕이 12스푼 이상 들어 있다. 몸에 좋으리라 믿고 선택한 과일음료는 과일 함유량이 0.002%에 불과했다. 세스 골드먼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 재직 중인 스승 배리 네일버프(Barry Nalebuff)를 찾아가 목이 말라도 믿고 마실 만한 건강한 음료가 없음을 하소연했다. 스타벅스가 커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우리도 차로 성공해 보자며 의기투합한 스승과 제자는 “우리가 마실 차를 직접 만들자”며 상표등록을 서둘렀다.

 

‘정직한 차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로 네일버프 교수는 ‘어니스트티(Honestea)’로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Nestea’ 앞에 ‘Ho’만 붙은 만큼 네스티(Nestea) 상표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등록거부 통지를 받았다. ‘정직함’을 뜻하는 ‘Honest’를 버릴 수 없었던 세스와 네일버프는 고심 끝에 ‘Honestea’를 두 단어로 변경하여 ‘어니스트 티(Honest Tea)’로 재신청해 마침내 상표등록에 성공했다. 어니스트 티는 1998년 2월2일 난산 끝에 태어났지만 두 사람에게는 차 생산설비는 물론 사무실도 없었다. 차를 우릴 수 있는 세스의 주방이 사무실을 겸한 공장이었다.

 

인도의 차 유기농원 © 사진=서영수 제공


 

“내가 마실 차 내가 만든다”며 출사표

 

네일버프가 사준 보온병 5개를 집으로 가져온 세스는 주방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휴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배수진을 치기로 한 세스는 투자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중국과 인도, 모로코산(産) 찻잎을 산지별로 우려낸 시제품을 보온병에 담아 유기농만 취급하는 슈퍼마켓으로 유명한 홀푸즈로 가져갔다. 액상이나 가루를 희석해 만든 음료가 아닌 진짜 찻잎으로 우린 차에 관심을 가진 홀푸즈 구매담당자는 어니스트 티 1만5000병을 주문했다. 창업한 지 25일 만에 받은 첫 주문이었다. 2003년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찻잎을 사용한 차 음료를 처음 출시한 어니스트 티는 2004년 미 농무부 유기농 인증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회공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니스트 티는 이름처럼 ‘정직한 차’로 레드오션인 음료시장에 도전해 블루오션을 찾아냈다. 설탕과 인공감미료로 버무린 다디단 음료를 싫어하는 소비계층이 있었지만, 대형 음료회사들은 단맛에 빠진 대다수를 위해 점점 더 당도가 높은 음료를 출시하는 데만 몰두했다. 어니스트 티는 대중 음료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달지 않은 차’로 틈새시장을 확대해 갔다. 설탕보다 몇 배나 비싼 꿀과 메이플 시럽을 사용하면서도 경쟁제품에 비해 원가경쟁력을 갖게 된 비결은 달지 않아도 되는 차 음료의 특성을 살려 소량만 넣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은 제조공법으로 칼로리를 기존 RTD(Ready To Drink·개봉해 바로 마시는 음료)의 6분의 1로 낮출 수 있었다.

 

어니스트 티는 2005년 찻잎으로 우린 차를 넘어 차 사업을 대용차(代用茶)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어니스트 에이드(Honest Ade)로 레몬차 시장에 진출하며 어린이용 주스인 어니스트 키즈(Honest Kids)를 출시했다. 경쟁기업이 여기에 가세했다. 어니스트 키즈에 자극받은 경쟁사 제품 ‘카프리 썬’이 파우치당 칼로리를 40%나 줄인 것이다. 카프리 썬의 자구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사 제품이 모두 잘 팔리며 어린이 건강에 도움이 됐다. ‘설탕이 덜 들어간 프리미엄 음료를 만들겠다’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미션이 경쟁회사에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어니스트 티를 최우선 인수 대상으로 삼은 코카콜라의 신규사업 투자팀인 벱(VEB·Venturing and Emerging Brands)은 2007년 7월 세스와 배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차 음료 분야에서 코카콜라를 앞지른 펩시에서도 인수·합병(M&A) 제안이 이 무렵 들어왔다. 네슬레에서는 코카콜라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세스의 최대 고민은 좋은 가격조건이 아닌 ‘어느 회사가 어니스트 티의 창업미션을 잘 살려줄 수 있느냐’였다. 해를 넘긴 협상 끝에 코카콜라 북미 지역 사장인 샌디 더글러스(Sandy Douglas)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미션을 보장했다. 세스는 최고경영자인 TEA-EO로 남기로 했다. 혁신적 사고와 창조정신에 목말랐던 코카콜라 최고경영자(CEO) 무타 켄트(Muhtar Kent)는 ‘음료로 세상을 바꾸려는’ 어니스트 티의 영입을 환영했다.

 

무타 켄트가 어니스트 티의 공동창업자인 세스 골드먼과 배리 네일버프에게 “어니스트 티를 코카콜라 아류(亞流)로 키우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코카콜라 DNA를 바꿔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하려 한다”고 말한 것이 협상 타결의 결정타였다. 2008년 3월 어니스트 티의 주식 40%를 4300만 달러에 매입한 코카콜라는 3년이 지난 2011년 어니스트 티의 나머지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 코카콜라가 투자를 시작한 2008년 어니스트 티를 취급하는 매장은 1만5000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2만 곳을 넘기고 있다.

 

RTD(개봉해 바로 마시는 음료) 차 © 사진=서영수 제공


 

가격보다 ‘창업 미션’ 살릴 코카콜라에 매각

 

2015년 7월 북미시장에서 코카콜라의 매출이 전년도보다 3%나 줄었지만 순이익은 20% 가까이 증가했다. 광고비 절감도 원인이었지만, 코카콜라 DNA와 전혀 다른 어니스트 티의 판매신장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탄산음료를 피하면서 탄산음료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어니스트 티의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무타 켄트의 뒤를 이어 지난해 5월1일 코카콜라 CEO로 취임한 제임스 퀸시(James Quincey)는 전 세계 탄산음료 시장 부진에 따른 급격한 매출감소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애틀랜타 본사 직원을 중심으로 1200명을 감축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70%가 넘는 탄산음료 매출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고 차와 생수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코카콜라와 대한민국 차의 콜라보레이션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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