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치매 패러다임, 이제 치매는 상식이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0 13:55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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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기억의 레시피 《엄마의 공책》 펴낸 유경·이성희씨

 

“노력한다고 나아지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돌본다고 애틋함이 깊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허무해지면서 의욕이 떨어진다. 우울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끝을 치매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인생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우울하다. 치매노인 돌봄과 간병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우울과 고립 속에 빠져들면서, ‘간병살인’ ‘간병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병,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에 대해 개인과 가족에게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사회가 다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201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64만8000명(유병률 9.8%)으로 집계됐다. 현재 68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2050년에는 271만 명(유병률 15.1%)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치매환자 문제는 더 이상 이웃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치매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도움 될 정보를 담은 《엄마의 공책》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갑자기 닥친 가족의 문제로 우왕좌왕할 사람들을 위해 노인 복지 전문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가이드북을 만든 것이다. 동명의 영화가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30년 동안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최고의 손맛을 가진 어머니 애란과 대학 시간강사 아들 규현이다. 두 사람은 쌀쌀맞기 짝이 없는 모자 사이로 지내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이상하다. 단골 채소장수와 돈을 줬니 안 줬니 싸우지 않나, 냉장고 속에 양산과 지갑을 넣어 두지 않나, 결국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게 되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반찬가게를 정리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은 어머니가 삐뚤빼뚤한 글씨와 어설픈 그림으로 요리 레시피를 적어 놓은 공책을 발견한다.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이성희 한국치매가족협회 회장 © 사진=궁리 제공


 

치매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까지

 

“영화 《엄마의 공책》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우리의 부모님들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치매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영화가 치매를 중심으로 해서 어머니의 사랑, 가족 간의 화해와 관계 회복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영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치매의 발견에서부터 진단,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치매환자의 문제 행동, 가족들의 심리, 치매환자를 대하는 방법, 집에서 돌봐드릴 때와 요양시설에 모실 때 알아두어야 할 것들, 아울러 치매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인지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치매 가이드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함께 책을 펴낸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와 이성희 한국치매가족협회 회장의 설명이다. 치매가 의심되거나 치매 진단을 받고 충격과 황망함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치매환자를 돌보다가 벽에 부닥쳤을 때, 너무 어렵지 않고 손쉽게 치매환자와 치매 가족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치매는 한 사람, 한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도 치매 부담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치매국가책임제’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 책은 정책과 제도에 대한 설명이나 사회적 서비스의 종류,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세부기술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치매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온 국민이 ‘이제 치매는 상식’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치매에 대한 상식과 공부가 필요하다.”

 

유경·이성희 지음 궁리 펴냄 188쪽 1만2000원


 

‘생각주머니’ 깨져도 인간 존엄성 유지되게 돌봐야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고 행동을 명령하는 뇌에 병이 생겼다 해서 하찮은 사람이 되거나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 병이 환자 자신의 인격까지 변화시키고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지만 존재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텅 비어버리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살아내고 있는 치매환자. 그 삶의 무게가 결코 만만찮을지라도 버티고 있는 연약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치매는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병이 아니며, 뇌혈관이나 뇌세포를 가지고 있는 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 것이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치매환자 본인은 본인의 병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치매는 보통 초기(건망기)-중기(혼란기)-말기(치매기)의 3단계나 초기치매-중고도치매(중기와 말기)의 2단계로 구분한다. 뒤로 갈수록 지적 능력을 포함한 모든 기능이 나빠지면서 식사나 용변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고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만, 초기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의식이 있다.”

 

지난해 9월18일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다른 중증질환들도 많은데 왜 유독 치매만 이렇게 국가가 책임진다고 나서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히 말하면 치매는 우선 노인인구 증가와 맞물려 환자가 무섭도록 늘어나고 있고, 현대 의학기술로는 완치 방법이 없는 데다, 그 어떤 질병보다 돌봄이 중요해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예방주사나 위생교육, 혹은 환자 격리 같은 방법으로 발병률을 줄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아이들 표현대로 ‘생각주머니’가 깨졌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도우며 돌봐야 한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병 앞에서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해 돌봄으로써 치매환자가 마지막까지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치매환자는 ‘치매’라는 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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