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풍력발전소' 영덕 주민, 풍력발전에 등 돌린 까닭
  • 경북 영덕 = 박동욱 기자 (sisa5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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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영덕풍력발전 쇠락에 추가 건설 반대여론 '팽배'…신재생에너지 아닌 '혐오시설' 인식

 

동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북 영덕군 창포리 야산에는 높이 80m, 날개 길이 40m 규모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24기가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한때 영덕지방을 찾는 나들이객들의 관광코스로도 인기를 끌던 곳이다. 

 

영덕 지역에는 이곳 뿐아니라 강구·남정·달산면 일대에도 28개 규모의 풍력발전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외형상으로는 영덕군 일대가 국내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안으로 들어가보면 풍력발전 일원이 소음 등으로 혐오시설 취급을 받으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같은 주민들의 반발 속에 현재의 풍력발전 추진 방법 자체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거세다.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에는 안된다) 현상과 별도로 과연 풍력발전 건설사업 대부분이 민간에 맡겨져 추진되는 것이 현실적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민간회사가 독자적으로 지난 2005년 3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영덕풍력발전의 현주소를 13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파악해 봄으로써 신재생에너지의 효자로 꼽히는 풍력발전의 뒷면을 짚어본다.

 

지난 2005년 4월4일 경북 영덕군 창포리 영덕풍력발전단지의 준공식 모습. ⓒ 연합뉴스

국내 1호 풍력발전, 6년 만에 외국계 기업에 매각…2025년 이후 자연 복구 '걱정' 


영덕풍력발전소가 위치한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일대는 '바람의 언덕'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곳이다. 낮은 고도인데도 해안에서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차에서 내리기 위해 열었던 문이 저절로 닫힐 정도다.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위한 지역의 풍속은 초속 5m. 이곳의 평균 풍속은 7m에 달한다. 

 

풍력발전 전문업체인 유니슨(주)는 16만6117㎡의 부지에 사업비 675억원을 들여 1년여 동안 풍력발전기 1650kW급 24기를 건설, 2005년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총 시설용량은 39.6MW로, 발전량은 연간 9만6680MWh이다.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쓸 수 있는 규모다. 풍력발전소가 들어선 장소는 특히 지난 1997년 큰 산불로 인해 민둥산으로 변한 곳으로, 산불 덕에 발전소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새로 닦을 필요가 없었던 일화를 갖고 있다.

 

이처럼 힘차게 돌아가던 영덕풍력발전(주)는 상업 개시 6년 만인 2011년 9월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호주계 맥쿼리 사모펀드에 헐값에 매각됐다. 과도한 투자 지분에 대한 약정이자를 감당해 내지 못한 결과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당시 약정이자는 연리 25%에 이른다. 시중 은행 예금 금리 1.25%에 20배를 넘었다. 풍력발전이라는 새로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낳은 버블 효과 탓이다. 당시 56.44% 지분을 보유한 유니슨은 일본 마루베니(34%), 군인공제회(6.35%), 경북개발공사(3.18%) 등 영덕풍력발전 보유 지분 100%를 215억원(전환사채(CB) 별도)에 일괄 매도한 뒤 맥없이 무너졌다. 

 

맥쿼리 사모펀드가 사들인 현재의 영덕풍력발전(주) 모습은 어떨까. 현재 이 회사는 매각사의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원금과 이자를 모두 해결하면서 매년 45억원의 투자 수익을 챙겨 실질적으로 투자 자본을 이미 회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덕풍력발전의 현재 잔여 자본금은 89억여원. 지난 2016년 회계기준 미처리결손금(누적손실금)이 71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6년 한해 결손금만 30억7000만원 가량으로, 2017년도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결손금 발생은 매각 당시 매출(발전판매액)이 130억원을 상회하던 것이 지난해말 기준 70억원 안팎으로 떨어지는 등 매년 크게 발전량이 대폭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곧 자본 전액 잠식에 발생하고, 기업회생에 들어가거나 소위 빚잔치를 해야 하는 국면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영덕풍력발전소 이진철 상무는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 아래 "지난 10여년 간 영덕풍력은 정부 시책에 따라 초창기 풍력발전 기술 발전에 기여하면서 많은 긍정적 결과를 낳았는데도 현재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며 "현재와 같은 (냉소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해외 이전을 포함해 다른 프로젝트로 옮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사견을 피력했다. 

 

경북 영덕 창포리 해안가에 위치한 국내 첫 풍력발전단지 모습. ⓒ 연합뉴스

 

 

GS E&R, 풍력발전소 영덕 추가 설치 계획에 '주민 반발' 

 

영덕풍력발전의 이같은 어려움은 해당 외국계 사모펀드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풍력발전회사는 고정자산이 거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땅은 임대이고, 초기 투자 자본은 대부분 기계설비(풍력발전)에 투입된다. 때문에 고정자산은 매년 5% 감가돼 20년 지나면 잔존가치가 0원에 가깝게 마련이다. 이런 실정에서 영덕풍력발전(주)의 경우 허가 기간이 끝나는 2025년말에 발전소 부지에 대한 자연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건설비용에 2배에 상당할 수 있는 매몰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가 벌써부터 큰 고민거리다.

 

이런 우려는 영덕군의 또다른 지역에 추진되고 있는 영덕제1풍력발전과 이미 가동되고 있는 영양의 GS영양풍력발전 지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들 발전회사는 모두 GS E&R이 100% 지배하고 이를 다시 GS가 89% 정도 재지배하는 구조로 돼 있다. 사업실패에 따른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면 실제 지배주(조부 회사)인 GS에 직접 책임을 징수할 방안이 미비한 셈이다. 

 

국내 풍력발전의 원조인 영덕풍력발전(주)의 이같은 부실 운영 속에 '바람의 고장' 영덕군에 잇달아 추진되고 있는 풍력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GS E&R은 지난 2016년 산업자원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영덕군 강구·남정·달산면 일원 25만5000㎡ 면적에 사업비 2600여억원을 투입해 3.3㎿급 28기(총 발전용량 92.4㎿) 의 풍력발전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3년차에 접어든 올해에도 착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행사는 지난해와 달리 올들어 해당 지역 10개 마을을 돌며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주민 설득작업에 나섰지만, 별무소득이다. 지난 3월에는 일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회유성 돈을 뿌린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대민 설득작업은 더욱 위축됐다. 

 

주민들의 반대 논리는 소음과 저수파 발생 등으로 인한 건강권과 재산권 상실 우려다. 저주파는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20㎐ 이하의 소음으로, 선진국에서 직접적 피해라는 검증된 사례가 없다는 시행사 측의 설명이 주민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 영덕 건설 현장에 상주하는 GS E&R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공사 착공 시기를 정해 놓기보다 주민들의 동의를 우선 얻는 것을 사업 추진의 목표로 삼고 있다"며 "적지 않은 초기 자본이 투입됐지만,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리더라도 차분히 주민 설득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시행사 측의 태도에 대해 주민과 마찬가지로 지역 자치단체에서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인근 영양군에 이미 1년여간의 공사 끝에 지난 2015년 9월부터 3.3㎿급 25기를 상업운전을 개시한 경우처럼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공사가 진행될 것이란 불신감 때문이다. 영덕군 관계자는 "산자부는 지역의 여론을 전혀 수렴하지 않고 전기사업법 규정에 따라 사업 주체에 허가를 내준 뒤 뒷처리를 지역 자치단체에 미루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불만감을 토로했다. 이어 "시행사가 아직 개발행위신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리 얘기하기 힘들지만,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풍력발전 부정 여론 전국 확산…"정부, 종합적·체계적 신재생에너지 비전 내놔야"

 

풍력발전소 신규 건립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경북 영덕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태양광 발전과 함께 풍력발전의 확대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목표치 도달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풍력발전소 허가가 집중되고 있는 강원도 곳곳에서 환경오염을 이유로 반대에 부딪히고 있고, 포항죽장풍력(72MW)은 사업 예정지역 인근 마을 주민들이 소음 피해로 인한 보상금 합의 문제로 사업추진이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사업도 무산되거나 무산 위기다. 한국동서발전이 추진하는 영천보현산풍력(40㎿)과 기룡산풍력(39㎿)은 2016년 8월 주민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또 서부발전의 전남 장흥풍력(16.1㎿) 사업 역시 소음과 저주파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를 도입, 대규모 발전사가 2022년까지 발전량의 10%까지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면서 태양광 발전과 함께 풍력발전소 확대를 유도하고 있으나, 당장 지역 곳곳에서는 갖가지 문제로 발못이 잡혀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풍력발전의 한 전문가는 "경북 영덕 뿐만아니라 강원도에 70개, 전남에 30개 가량 풍력발전소 신규건립을 위한 허가가 나 있지만, 현재와 같은 지역민들의 반대 여론 속에서 종전처럼 밀붙이기식 공사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신재생에너지 수립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원전탈피라는 분명한 정책 방향을 내놓고도, RP​S를 앞세워 민간기업에게만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떠넘겨 놓은 채 손을 놓고 있는 듯하다"며 "지금이라도 미래 에너지 비전을 분명히 제시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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