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 정상회담서 한반도 평화선언 나온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 09:22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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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분단 반세기,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라진다

 

꿈에 그리던 통일이 한 발짝 다가온 것일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3차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반세기 동안 한반도를 뒤덮고 있던 전쟁의 먹구름이 사라질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을 기대하며 3차 남북 정상회담을 미리 짚어봤다.

© 사진=연합뉴스(사진 합성:시사저널 미술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4월1일 느닷없이 평양을 방문한 우리 예술단의 공연장을 찾아 “4월초 정치 일정이 복잡해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늦더라도 오늘 공연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당초 우리 측은 김 위원장이 이틀 후 열리는 남북 합동공연에 참석하리라 내다봤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시 우리 측 외교안보라인은 김 위원장이 말한 ‘4월초 정치 일정’이 무엇일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궁금증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4월17일 미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풀렸다. WP는 보도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가 부활절 주말(3월31일〜4월1일) 극비리에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방북 당시 폼페이오는 차기 국무장관 후보자이자, 미국의 대외 정보라인을 총괄하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다.

 

3월말 중국 베이징을 다녀온 김 위원장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폼페이오를 통해 북·미 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미국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전해 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최고지도자의 입을 빌려 다시 한번 확인했을 것이다.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으로 북·미 관계가 얼마나 간격을 좁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미국과 북한이 폼페이오 방북 이후 상대를 자극하는 신경전을 줄인 것만은 긍정적이다. 폼페이오는 4월12일 열린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첫 정상회담에서 단번에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 사람은 없다. 김정은은 종잇조각의 보증서, 그 이상을 원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북 문제에 있어 강경파로 분류되는 폼페이오가 동시적 완전한 비핵화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나, 북한의 요구사항을 종잇조각 보증서 수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느낌이다. 북한을 다녀온 폼페이오는 이날 발언을 통해 앞으로 대북 협상에 적극 나설 것임을 알렸다.

 

지난해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보였던 미국과 북한이 올 들어 대화로 선회한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이와 관련해 존 딜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3월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어쩌면 지금 트럼프는 트루먼 대통령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을 괴롭혔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딜러리 교수는 “경우에 따라 북한에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말이 더 잘 통하는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보 전문가도 “김정은은 오바마의 대북정책 ‘전략적 인내’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며, 체제 전복을 유도하는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폐기시킨다는 차원에서 군비 증강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측근 폼페이오 비밀리에 방북

 

집권 2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문제 해결에 사실상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오는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3차 정상회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거라는 전망이다.

 

일단 시기적으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 달 뒤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현재 청와대는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를 북핵 문제 해결로 가닥을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여는 확고한 이정표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길잡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우리 정부의 기본 원칙과 목표가 모두 담겨 있다. 현재 정부 내에서 나오는 남북 정상회담의 기본 의제는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 등 3가지다.

 

경제제재 해제와 같은 지원책은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는 생각에 후순위로 밀렸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도 4월18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을 의제로 삼지 않고 비핵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것을 미국·일본 등 관련국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면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경협과 경제제재 해제 등이 거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핵심 의제는 비핵화의 기준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앞으로 다시는 핵무기를 생산할 수 없는 비핵화)다. 단계적인 것이 아닌, 동시적이면서 근본적인 비핵화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회담 상대국인 북한은 ‘핵=주권’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의 대북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인 3월7일에도 북한은 공식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조선(북한)의 핵보유는 정당하며 시빗거리로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합의점을 찾는 게 실현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 대북 특사단과의 면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체제 보장을 약속하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은 ‘한·미 양국의 불가침 선언’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체제를 전복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올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에 우리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평화협정 체결 위한 준비회담 성격

 

현재 북·미 간 물밑 협상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북·미 양측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해법을 찾을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은 미국과 북한의 이익이 만나는 교집합이다. 앞서의 설명대로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인 폼페이오가 비핵화의 기준을 다소 낮추고 있어 긍정적이다.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폼페이오는 북·미 정상회담의 목적을 묻는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려는 노력에서 물러서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강경책만 포기하면 비핵화의 기준에 있어서는 다소 여지를 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최근 우리 정부 내에서 북한 비핵화 시한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년 내’로 보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는 것도 주목받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결국 비핵화 시기와 방법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론 내려질 것”이라면서 “이러한 ‘빅딜’이 이뤄지고 나면 트럼프 임기인 2년 내 완전 핵폐기를 검증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CVID를 거론하긴 했지만, 리비아식 비핵화를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기술을 무력화시키되 비핵화와 관련해선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결과물을 올 11월 치러질 중간선거에 적극 활용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재선 성공이라는 ‘잭팟’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최소한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체제 안정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조성을 위한 로드맵이 발표될 가능성도 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월18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궁극적인 평화체제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협의하고 있으며, 그 방안으로 현재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탓에 종전 선언은 남북 양측이 합의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1953년 7월에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북한군 사령관 김일성,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참석했다. 결국 국제사회를 대표해 미국·중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종전협정은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잘 어울린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해 온 문재인 정부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수준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까. 현재로선 종전 선언에 준하는 선언적 의미를 의제에 담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선언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는 구도다. AFP통신은 4월18일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두 번째 의제인 평화체제 구축이 주변국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양국을 향해 평화협정 체결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신(新)베를린 선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독일식 상설 연락사무소 개설될까

 

평화체제 전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왔다. 따라서 합의는 순전히 북한과 미국의 몫이다. 대신 우리 정부가 낼 다음 카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상징적인 기구 신설이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1, 2차 남북 정상회담과 차별화를 기하기 위해서도 이번 회담에서 서울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화된다면 1974년 동독과 서독이 상호 상주대표부를 설치한 방식이 유력하다.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도 논의되고 있다. 아울러 남·북·미·중 4개국이 참석하는 정상회담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여기까지 대화가 오가면 경제제재 완화와 개성공단 확대, 대북 투자 확대 등은 일사천리로 빨라지며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대결을 끝내자는 선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내에서 최근 군사분계선 내 중화기 설치나 병력 감축과 관련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김 위원장은 3월 대북 특사단이 방문했을 때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대북 특사단 대표를 맡았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추후 언론과 가진 브리핑에서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은 우리 측 요구가 없었음에도 김 위원장이 먼저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소장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군비 감축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일각에선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과거 1, 2차 때와 같은 합의안이 나오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한 달 뒤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폼페이오가 평양을 오가는 등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어 그 전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자칫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1991년 12월에 맺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한 단계 격상시킨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하기만 해도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반도 냉전 종식을 북·미 간 회담에서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가이드 또는 내비게이션 역할만 해 줘도 100%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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