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김정은 압박 위한 고단수?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 10:09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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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대화 상대편에 혼선 줘 실리 추구…‘통 큰 전술’도 자주 사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인이다. 과장과 비난이 반복되는 트럼프의 행보를 보고 워싱턴 정가조차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이는 정치라는 영역에서만 트럼프를 바라볼 때 생기는 오류다. 트럼프 인생에서 정치인의 삶은 지극히 짧다.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업가(Businessman)로 살아왔다.

 

미국 경제지 ‘포천’의 2016년 4월21일 기사 ‘비즈니스; 트럼프의 길(Business; The Trump Way)’은 정치인 트럼프가 아닌 인간 트럼프의 면모를 설명하고 있다. 포천은 기사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트럼프의 행동에서 그의 의사결정 과정은 딱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를 ‘트럼프 본인은 언제나 최고고 가장 앞서 결정한다(Trump always comes first)’라고 설명했다. 포천을 비롯해 미국 유수의 매체들은 트럼프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서 ‘트럼프는 돈을 버는 것보다 사장(Boss)이 되는 것, 명성(Publicity)을 얻는 것을 중시한다’고 설명한다. 대선 출마 때부터 공화당 주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워싱턴 정가에 부채의식도 없다.

 

© 일러스트 정찬동


 

“트럼프, 돈보다 사장 자리 좋아하는 사람”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를 쓴 서강대 국제대학원 안세영 명예교수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을 동물의 제왕인 사자와 비교했다. 사자는 한번 목표를 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려들지만, 배만 차면 눈앞에 어떤 동물이 와도 그냥 보고 마는데 트럼프가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학의 대가인 하버드대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 교수가 말한 협상가 분류법을 기준으로 하면 트럼프는 하드 포지션(Hard Position) 협상가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협상가란 남의 말을 잘 듣고 궁지에 몰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는데 트럼프는 그와 다른 유형이다. 굳이 구분 짓자면 트럼프는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쳐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는 협상가의 종류를 원칙적 협상가와 소프트 포지션 협상가, 하드 포지션 협상가로 분류했다. 하드 포지션 협상가에게 방어는 없다. 오로지 공격뿐이다. 상대방을 코너로 몰고 협상을 자신의 승리로 이끌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대체로 협상은 51 대 49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협상의 세계에서 100 대 0의 게임은 없다. 내가 51을 갖고 오고 상대가 49까지만 가져가도 성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소프트 포지션 협상이다. 반면 하드 포지션 협상은 100 대 0에 가깝게 도달하도록 상대를 몰아친다.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면 양보하라는 식이다. 우리를 비롯해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상(FTA)에서 미국 통상 당국의 자세가 이와 비슷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트집 잡기를 짜증스럽게 보지만 협상의 관점에서 트집은 흥정을 위한 고단수 전략이다. 하버드대 협상연구소의 데이터를 분석해 《하버드 협상수업》이라는 책은 쓴 중국의 대표적 협상가 왕하이산은 “이런 식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다 보면 상대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역시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트집 잡기에 나설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나가는 현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하나. 협상 타결을 위한 진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일 경우도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협상 현장에서 속임수는 사수(詐數)가 아니다. 상대가 속임수를 쓸 경우를 가정해 얼마든지 맞불작전 식으로 방어막을 칠 필요성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미 관계 전체를 비관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다녀온 뒤로 미국 최고위급 인사인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평양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협상 어드바이저로 활동한 조지 로스가 “트럼프는 딜 메이커로서 숲을 보는 법을 배웠고 나무들은 아랫사람들이 보도록 했다”고 말했는데 이번 북·미 협상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를 가리켜 ‘미치광이’라고 비판하지만, 협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상대방에게 혼선을 주는 효과가 있다. 큰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에서 좌충우돌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 상대에게 자신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물론 자신의 목표는 이미 크게 정해 놓는다. 이른바 트럼프의 ‘통 큰 전술’로 불리는 싱크 빅(Think Big) 전략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종종 파이트 백(Fight-Back) 전략을 쓴다. 트럼프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부분 사람들과 잘 지낸다.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들에겐 잘 대해 준다. 하지만 나에게 나쁘게 하거나 불공정하게 대하면 나는 그들에게 철저히 응징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 생애에 거쳐 그렇게 해 왔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파이트 백 전략이다.

 

국제무역 세계엔 도덕적인 협상가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모두 비겁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나만 윤리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북한이 1993년과 2000년 두 차례의 핵 협상을 걷어찬 것을 예로 들며 이번만큼은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할 생각이 없다. 이를 트럼프의 언어로 해석하면 ‘상대를 보고 반응하라(Response in kind)’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협상은 ‘총 안 든 전쟁’

 

그렇다면 북한의 협상 전략은 무엇일까. 그동안 주요 서구 언론에서 많이 거론된 것이 벼랑 끝 전술이다. ‘이렇게 나를 벼랑 끝으로 몰면 나도 죽지만 너도 죽을지 모른다’는 식이다. 이는 구 소련 체제 아래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때문에 국제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와 협상하기는 정말 힘들다’는 말이 있다. 협상에 임하는 게임의 룰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협상은 총을 안 든 일종의 전쟁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만책도 사용된다. 또 자주 인용되는 협상이론이 라이파 딜레마 이론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대가 지저분한 술책을 쓰면 “그들과 똑같은 술책으로 맞받아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마냥 점잖게 협상하면 질질 끌려 다니다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클린턴, 오바마 정부의 대북 협상력이 한계를 보인 것도 북한의 전략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라고 본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를 때에는 2~3수 앞서 선제적으로 결정하라’는 것도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대외 협상 패턴이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을 비롯해 북한의 수뇌부는 어릴 적부터 협상을 제왕학의 중요한 한 가지로 여기고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한·미 보수층의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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