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조선사들과 다른 길 간 세진중공업의 비결
  • 전승하 산업은행 수석컨설턴트 (jjsha@kdb.co.kr)
  • 승인 2018.04.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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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조선기자재 전문회사의 운명을 가른 산은 컨설팅

 

‘21세기조선, 삼호조선, 신아SB, 가야중공업, SPP조선…’ 

 

이제는 사라진 국내 중형 조선사들의 이름이다. 우리나라 중소형 조선사는 10년 전인 2008년의 27개에서 2018년 현재에는 5개 회사만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중소형 조선사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기존 대형 조선소에 블록 등 대형 조선기자재를 납품하던 업체들이었다. 이런 업체들이 2000년대 중반 세계적인 조선 호황 시기에 업종을 변경하여 중소형 조선소가 되었다. 현재 중형 조선소의 대표 업체인 현대미포조선도 원래는 수리조선 업체였다.

 

사라진 업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조선기자재 업체의 대표 업체가 된 회사가 있다. 바로 세진중공업이다. 세진중공업의 주력 제품은 선박에서 선원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Deck House와 LPG탱크선에 사용되는 LPG탱크이다. 매출의 90%이상을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으로 납품하고 있다. 세진중공업은 2012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조선업 불황에서도 살아남아 2015년 11월 코스피에 상장하였고, 주가는 상장대비 현재 약 47%나 상승하였다. 2017년에는 다른 조선기자재 업체인 일승을 인수하는 등 오히려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또한 불황을 이겨낸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향후 LNG 탱크 등 신규 사업과 해외진출을 통해 글로벌 조선 산업 구조조정 이후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2016년 7월28일 이기권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세진중공업을 방문해 근로자를 격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산은 컨설팅 보고서 “선박 건조 사업 진출 위험” 

 

사라진 업체들과 세진중공업의 달라진 운명의 시작은 바로 산업은행의 컨설팅에서 비롯되었다. 운명의 컨설팅은 2007년 지금의 세진중공업을 있게 한 약 17만평의 생산부지 확보를 위한 투자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세진중공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세계적인 조선 산업 호황에 발맞추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당시 세진중공업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기자재 업체들의 추세였다. 그 당시는 정부에서도 조선 산업 호황에 힘입어 경남 남해안 지역에 신규 선박건조 업체를 위한 대규모 부지 지원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연달아 내놓는 시기였다. 

 

우호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 컨설팅실은 당시 컨설팅보고서에서 과감하게 선박 건조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선 산업을 둘러싼 수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었지만, 중국 조선소들의 대규모 투자와 조선 산업의 슈퍼 사이클의 지속 여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근거로 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컨설팅보고서의 논리와 그 근거에 대해서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쪽은 결국 고객인 세진중공업이었다. 이미 대표이사 주위에서는 다른 업체들처럼 세진중공업도 대규모 생산부지 조성과 함께 선박 건조 사업에 진출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호황기의 선박 건조 사업은 생산부지만 확보하면 수익이 가능한 사업이었다. 수주 시 들어오는 선수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하여 건조를 시작하면 되기 때문에 손쉽게 대규모 매출을 달성하여 단기간에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수주를 위해 필수적인 RG(선수금환급보증)를 시중은행으로부터 받는 것은 지금과 달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진중공업은 산업은행 컨설팅실의 의견을 과감히 받아들여 기존의 조선기자재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신규 사업을 벌이는 대신에 회사의 내실을 다지고,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중장기 전략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그 선택이 지금의 세진중공업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수십 개의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시설자금을 유치하여 선박 건조를 위한 부두 및 도크 등을 잇달아 도입하였다. 결국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2012년 이후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초래하였고, 분위기에 휩쓸린 과도한 투자는 오히려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세진중공업과 산은 컨설팅실의 파트너십

 

세진중공업과 산업은행 컨설팅실의 파트너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컨설팅 보고서의 결론은 금융위기 이후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하였고, 세진중공업에서는 2010년 세진중공업의 중장기 발전 전략에 대한 컨설팅을 다시 산업은행에 맡겼다. 조선업 불황이 지속되던 2016년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컨설팅을 산업은행에게 의뢰하였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세진중공업은 M&A 등 다양한 성장전략을 추진하였다. M&A를 위한 컨설팅에서도 대상기업 선정 등 컨설팅의 모든 과정을 세진중공업과 함께 진행하여 실현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였다.

 

결국 컨설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 박자를 갖추어야 한다. 전문성 높은 솔루션, 회사 구성원들의 공감,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수용의지가 필요하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이 수용하지 않으면 그 컨설팅은 서랍속의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

 

세진중공업에 대한 네 번째 컨설팅이 언제 시작될지는 아직 서로 얘기하지 않았다. 2016년이 세 번째 컨설팅이었으니, 아마도 2020년경이 되지 않을까?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진중공업과 산업은행 컨설팅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세진중공업의 발전에는 항상 산업은행 컨설팅실이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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