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검찰·정권 눈치 보며 ‘80년 무노조 경영’ 포기했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 21:27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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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8000명 직접 고용 파장…다른 계열사나 재계에도 영향 미칠 전망

 

“노조는 안 된다”는 것이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지였다. 2세 경영자인 이건희 회장도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사실상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 왔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 8개 계열사에 노조가 생겼지만 제대로 된 활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배경으로 노조 활동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감시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4월17일, 80년간 지속된 삼성의 ‘무노조 경영’ 역사에 마침표가 찍혔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8000명을 직접 고용하면서, 협력업체 근로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포용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8000명은 삼성의 주요 계열사 한 해 채용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번 결정으로 발생할 인건비 증가분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이번 합의가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비정규직 문제에 물꼬를 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다. 회사 관계자는 “2013년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검찰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노사 간에 직고용 문제를 논의하다 최근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져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 시사저널 고성준


 

노조 와해에 대한 고강도 수사가 합의 배경?

 

이전까지 삼성전자서비스는 사내하청 방식으로 8000명을 고용했다. 사내하청 근로자는 원청업체로부터 직접 지시나 감독을 받지 않고, 2년 넘게 일해도 원청업체의 정규직이 될 수 없다. 때문에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우리도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이라며 근로자 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서비스 기사를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으로 볼 수 없다”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상황이 삼성에 나쁘지 않은데도 회사 측이 노조와 전격 합의한 배경은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 때문이라는 게 재계나 노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삼성이 노조 파괴에 나서는 등 실제 고용 주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는’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은 2013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기한 바 있다. 심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2012년 1월 삼성그룹에서 작성된 것으로, ‘노조 설립 상황이 발생되면 그룹 노사 조직, 각사 인사부서와 협조체제를 구축해 조기에 와해시켜 달라’ ‘조기 와해가 안 될 경우 장기 전략을 통해 고사화해야 한다’ 등의 지침이 담겼다. 노조가 결성될 경우 조합원 탈퇴를 압박하고, 노조 저지를 위한 ‘비밀별동대’를 가동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러나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은 2015년 1월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당시 미래전략실장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미 3년 전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삼성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해 검찰이 다시 수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소송비 대납 수사를 위해 삼성그룹 서초동 사옥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6000건에 달하는 노조 와해 의혹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문건에는 삼성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노조 와해를 시도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조합원을 매수하는 ‘우군화 전략’, 비조합원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노-노 갈등’을 유도한 내용도 포함됐다.

 

노조 설립 초기 분열을 유도하고, 효과가 없으면 아예 위장폐업을 하는 방안으로 실적을 냈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직접 ‘폐업 시나리오’를 작성해 협력업체인 센터 사장들을 대상으로 교육에 나서고, 언론 인터뷰를 대비한 연습까지 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노조 가입 비율이 높았던 경기도 이천센터 폐업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측 관계자는 “경영상 어려움과 직원들에 대한 불신으로 발생한 사태지, 노조를 이유로 폐업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며 위장폐업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또 삼성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설립되자 종합상황실을 꾸려 노무사 등 외부 전문가에게 매달 수천만원 상당의 용역비를 제공하며 노조 파괴 관련 자문을 받았고, ‘노조 파괴 전문가’로 알려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출신 변호사를 고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현재 자문 역할을 한 노무사를 소환해 조사하는 등 전·현직 회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노조 대응 계획이 수립·실행된 과정도 파악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상고심 선고 앞두고 부담 가중

 

삼성의 이번 합의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 계좌,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등 많은 논란으로 인해 최근 비판 여론이 급증한 것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상고심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심상정 의원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핵심인사들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삼성의 결정이 나온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상고심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현 정권이 삼성의 노조 대응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 직전 ‘무노조 경영’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부정·배척하는 위헌적 권한 남용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삼성의 이번 결정은 90여 개에 이르는 기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과의 협상이 성사돼야 마무리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 대표 등 경영진을 중간 관리자급으로 채용하거나 영업권을 보상하는 해결책 등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회사인 삼성전자의 막대한 자금력을 생각해 볼 때 보상책 합의 가능성이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협력업체들이 법적 대응을 하면서 타결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직원이 700명 선이니만큼 직접고용 절차가 끝나면 그룹 내 최대 노조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삼성의 이번 결정에 따라 현재 노조가 있는 삼성물산·삼성에스원·삼성웰스토리 등 다른 계열사의 노조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노조가 원하는 수준까지 활동이 보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현재 노조가 없는 다른 계열사에도 노조가 잇달아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

 

간접 고용을 유지해 온 삼성이 직접 고용 대열에 합류하자, 비슷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다른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사내하청 근로자 직접 채용 등의 변화가 잇따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결정으로 인해 대기업들도 계산이 복잡해졌을 것”이라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에서도 직접 채용 등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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