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컵 갑질 피해자’ 광고대행사도 알고 보면 ‘갑’?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4 16:23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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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무, 갑에게 갑질한 셈… 갑질 되풀이되는 광고업계

 

한진그룹을 덮친 쓰나미는 조현민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에서 시작됐다. 조 전무는 지난 3월 대한항공의 광고대행을 맡고 있는 HS애드 소속 팀장에게 물을 뿌렸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HS애드는 국내 상위권 광고회사이자 LG그룹 계열사다. 그룹 자산 규모로 치면 LG가 한진의 3배가 넘는다. 게다가 HS애드 자체도 갑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럼에도 광고주와 대행사란 관계 속에 거꾸로 갑질이 자행된 셈이다. 

 

HS애드와 대한항공은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2007년 HS애드가 만든 ‘대한항공 몽골편’은 그해 한국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일본에게 일본을 묻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등 대한항공의 유명한 슬로건이 HS애드의 손에서 탄생했다. HS애드의 전신은 1984년 LG그룹 자회사로 설립된 LG애드다. 지금처럼 사명을 바꾼 건 2008년이다.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자가 최근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4월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갑질 당한 HS애드, 그룹 규모로 치면 더 ‘甲’

 

HS애드는 조현민 전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한 2005년에 바로 이곳에 입사했다. 당시 면접관이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냐’고 묻자 “항공사를 운영하신다”고 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듬해 HS애드는 광고를 맡고 있던 벤츠의 신차 발표회를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열었다. 그 배경엔 조 전무가 있었다. 

 

HS애드에서 2년 동안 광고 경험을 쌓은 조 전무는 2007년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과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과장 입사에 관해 나중에 한 방송에서 “낙하산이 맞지만, 광고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조 전무의 승진은 초고속으로 이뤄졌다. 2010년 팀장, 2013년 상무, 2014년 전무를 거쳐 2016년엔 진에어 부사장과 한진관광 대표이사 자리를 꿰찼다. 그가 승진가도를 달릴수록 HS애드와의 관계도 깊어졌다. 

 

한편에선 “한진그룹이 따로 광고 계열사를 만들 것”이란 추측이 돌기도 했다. 광고 계열사를 차려 일감을 몰아주는 대기업 그룹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HS애드를 계열사로 둔 LG를 포함해 삼성(제일기획), 현대자동차(이노션), 롯데(대홍기획)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조 전무가 이끄는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은 HS애드와 작업을 계속했다. 그가 2014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광고는 외주를 주는 게 경제적”이란 조 전무의 말에 동의했다고 한다. 



공격적 투자하는 대한항공 모셔야 하는 HS애드

 

그러는 동안 HS애드에게 있어 대한항공은 놓칠 수 없는 고객이 됐다. 광고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대한항공의 광고 집행비는 24억8600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내 모든 광고주 가운데 20위 규모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광고 집행비와 상품 홍보비 등을 포함한 대한항공 광고선전비는 총 740억원이 넘는다. 2016년엔 약 990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HS애드의 광고주만 놓고 봐도 대한항공의 영향력은 크다. 같은 계열사인 LG전자를 빼면 가장 규모가 큰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통 큰 광고투자 덕분에 HS애드는 급성장했다. 업계에선 광고대행사가 광고주로부터 받은 광고 제작비와 수수료 등을 모두 합한 ‘취급액’을 중요한 실적 지표로 삼는다. HS애드의 2010년 취급액은 5580억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엔 1조 4500억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이는 제일기획(5조 3600억원)과 이노션(3조 9400억원)에 이어 국내 광고회사 중 3위다.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을 수사하는 경찰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4월19일 오후 대한항공 직원들이 본가건물에 출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광고제작사 앞에선 ‘갑’, 대한항공 앞에선 ‘을’

 

덩치를 키운 HS애드가 광고제작사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논란도 일었다. 국내 TV광고 시장은 광고주가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에게 제작을 의뢰하면, 대행사가 이를 100여개의 제작사 중 한 곳에 맡기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행사가 제작사에게 계약서를 써 주지 않거나 대금 지급을 미루는 등 불공정 거래가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2015년 공정위는 HS애드에 과징금 2500만원을 부과했다. 

 

이런 HS애드가 대한항공 앞에서만큼은 ‘을(乙)’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HS애드 트위터 계정엔 “대한항공에서 예쁜 케익을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클라이언트=광고상 최다 수상” 등 대한항공을 추켜세우는 글이 검색된다. HS애드의 한 직원 SNS엔 “조현민 전무님께서 보내주신 치맥”이란 글도 보인다. 한때 조 전무가 대한항공의 연말 행사용 영상 제작을 HS애드에 맡겼는데, HS애드가 이를 공짜로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HS애드 관계자는 다만 "공정위 과징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고, 하도급 계약에서 우리가 모범사례로 선정된 적도 있다"면서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편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4월23일 “조현민 전무가 성격이 나쁘다는 소문은 그가 HS애드에 입사할 때부터 들려왔던 걸로 안다”면서 “이번 사건(물컵 갑질)으로 뒤늦게 드러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CG영상을 전문으로 만드는 R업체의 관계자는 "물컵 던지는 사람은 이쪽 업계에선 양반"이라며 "광고주가 무슨 짓을 해도 대행사나 제작사는 '주님'이라 부르며 떠받든다"고 했다. 그는 "광고업계에서 갑질이 악순환되고 있다. 대행사에 대한 광고주의 갑질이나, 제작사에 대한 대행사의 갑질이나, 정도는 다르지만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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