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엄단” 소신 발언이 부메랑 된 윤종규 KB회장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4 16:47
  • 호수 14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윗선 향하는 KB금융 특혜 채용 의혹 수사…윤 회장 연임 행보에도 ‘빨간불’

 

KB금융그룹 내에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고졸 행원으로 시작해 은행장과 금융지주 회장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명도 ‘상고 출신 천재’다. 윤 회장은 2008년 KB금융이 출범한 이래 처음 내부 승진한 인사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야 했던 KB금융의 굴곡진 역사를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내부적인 신망 또한 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취임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KB금융지주 회장 및 KB국민은행장에 취임했다.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은행장이 내분을 벌인 직후여서 조직이 어수선했다. 윤 회장은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조직을 안정시켰다. 당시 윤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수첩을 하나 새로 샀다. 아직 하나도 기록된 게 없다. 하지만 인사 청탁을 하는 분은 반드시 수첩에 기록해 불이익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외부 청탁보다는 실력과 성과로 평가해 인사를 하겠다는 얘기였다.

 

내부가 안정되자 윤 회장은 적극적인 M&A(인수·합병)에 나섰다. 현대증권(현 KB증권)과 LIG손보(KB손해보험)를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의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 결과 KB금융은 지난해 처음으로 당기순이익 3조원 시대를 열었다. 신한금융지주(2조9179억원)를 제치고 9년 만에 ‘리딩뱅크’ 자리도 탈환했다. 지난해 KB금융의 주가는 4만2600원에서 6만3400원으로 67.2% 증가했다. 은행권에서 주가뿐 아니라 증가율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취임 초부터 채용비리 척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증손녀의 특혜 채용 의혹을 받으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고졸 행원으로 금융지주 회장 된 ‘商高 천재’

 

덕분에 윤 회장은 지난해 말 역대 KB금융 회장 중 처음으로 연임에도 성공했다. 은행지주 ‘연봉킹’ 타이틀은 덤이었다. 지난해 윤 회장은 금융지주에서 9억2600만원(상여금 4억5300만원 포함), KB국민은행에서 7억7600만원(상여금 3억9600만원)씩 17억원을 수령했다. 여기에 더해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3만6054주를 배정받았다. 주당 가격을 4월17일 종가인 5만9300원만 잡아도 21억4000만원에 이른다. 윤 회장은 올해부터 매년 1만2018주씩 이 주식을 나눠 받을 예정이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2년 이상 등기이사로 근무하면 성과 연동 주식이 부여된다. 윤 회장의 경우 지난해 연임됐기 때문에 올해부터 이 주식 가치만큼 현금으로 지급된다. 연임 기간의 성과 연동 주식은 3년 후인 2020년에 추가로 지급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임에 성공했을 때도 윤 회장은 채용비리 척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채용비리 문제는 많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취업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금수저나 은수저 등 오해를 초래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발언들이 윤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검찰은 최근 윤종규 회장의 사무실과 자택, 채용담당 부서 등을 잇달아 압수수색했다. 금융감독원 특별검사 과정에서 KB국민은행의 특혜 채용 의혹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1월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현재 특혜 채용이 의심되는 건은 모두 3건이다. 이 중에는 2014년 입사한 윤 회장의 증손녀(누나의 증손녀) A씨도 포함돼 있어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A씨는 서류 전형에서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에서 300명 중 273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2차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받으며 120명 중 4등으로 국민은행에 합격했다. 이 수상한 합격 과정에 윤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여부가 현재 검찰수사의 핵심이다.

 

물론 KB금융 측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정상적인 기준과 절차에 의해 신입행원 채용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직원들을 내부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문제가 없었다. 금감원의 지적대로 인사 담당자가 ‘VIP 리스트’를 따로 관리하기는 했지만, 면접관들은 인적사항을 가리고 블라인드 면접을 했기 때문에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며 “향후 검찰수사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특별검사를 벌인 시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지난해 윤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연임 과정에서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과 갈등을 빚었다. 최 전 원장은 두 회장을 ‘셀프 연임’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여기에 맞서 두 회장이 최 전 원장의 비리를 캐고 다닌다는 소문이 금융권 안팎에서 적지 않게 나돌았다. 금감원이 국민·하나·신한 등 11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것도 이때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은행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 왔다”며 “은행권의 채용비리 특별검사가 사실은 윤 회장과 김 회장을 겨냥한 금감원의 ‘표적 검사’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3월초 변수가 터져 나왔다. 국민은행 인사팀장 B씨가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B씨는 2015년 상반기 신입행원 채용 당시 20명을 ‘VIP 리스트’에 넣고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남성 지원자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점수를 비정상적으로 높게 준 사실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졌다. B씨에게 특혜 채용을 지시한 인사는 당시 국민은행 인사부장이었던 KB금융지주 HR(인력개발) 총괄 상무 C씨다. 검찰은 4월초 C씨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현재 윤 회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D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환조사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2017년 11월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KB금융 측 “검찰서 부르면 성실히 소명”

 

취임 때부터 ‘수첩론’과 ‘금수저 은수저론’을 펼치며 채용비리를 엄단하겠다고 밝힌 윤 회장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수사의 칼날이 점차 그룹의 윗선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최근 책임경영 차원에서 KB금융 자사주를 잇달아 매입했지만, 내부적인 시선은 여전히 곱지 못하다. 국민은행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연일 새로운 의혹을 쏟아내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증손녀가 지원한 사실조차 몰랐다는 윤 회장 측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며 “노조 설문조사에 참석한 4703명 중 93%는 ‘채용비리는 정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윤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도 87.8%에 달하는 만큼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