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후예의 유배 역사 품은 ‘대청도’
  • 인천 = 구자익 기자 (sisa3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6 09:44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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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힐링, 옹진 섬] 해변의 섬으로 불리며 국내 최대 ‘홍어’ 산지로도 각광

 

대청도는 고려시대에 원나라의 황태자나 세자, 황족 등의 유배가 잦았다.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1260~1294)는 충렬왕 6년(1280)에 여섯째 아들 아야치를 대청도로 유배를 보냈다. 쿠빌라이는 충렬왕 14년(1288)에 대왕 고케데이와 위왕 에무게도 대청도에 귀양을 보냈다. 대왕 고케데이는 충렬왕 23년(1297)에 대청도에서 숨졌다. 원나라 인종(아유르바르와다)이 집권했던 충숙왕 5년(1318)에는 태자 바이라가 5년간 유배됐다. 바이라는 진종(시디발라)이 왕권을 잡았던 충숙왕 11년(1324)에도 다시 5년간 대청도에서 귀양을 살았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고려 출신의 공녀를 황후(기황후)로 삼았던 혜종(토곤 테무르)도 충숙왕 17년(1330)이던 황태자 시절에 2년간 대청도에 머물렀다.

 

고려도 대청도를 유배지로 활용했다. 충렬왕 4년(1278)에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무신 김방경이 모반을 했다는 모함을 받아 대청도에서 귀양을 살았다. 이듬해에는 최유엄이 정치에 대해 직언을 했다가 대청도에 유배됐다.

 

‘맛있는 힐링, 옹진 섬’의 일곱 번째 탐방지는 ‘유배의 역사를 품은 푸른 섬’ 대청도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30분쯤 달리면 대청도 선진포선착장에 들어선다. 대청도에서는 농어촌공영버스 한 대가 하루에 8차례 순환한다.

 

대청도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농여해변


 

포경 기지 사라지고 홍어 잡이 활발

 

일본은 1918년에 대청도 선진항에 동양포경주식회사의 포경 기지를 설치했다. 이때부터 1930년까지 고래잡이의 중심지로 삼았다. 고래잡이가 이뤄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일본인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광복 이후에 고래잡이는 사라졌지만 어업은 계속 활성화됐다. 씨알이 좋은 생선이나 해산물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청도는 2000년도 이후 국내 최대의 홍어 산지가 됐다. 연중 홍어가 나온다. 대청도에서 잡히는 홍어는 흑산도 홍어와 똑같은 ‘참홍어’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도권 지역에서는 대청도 홍어의 인지도가 높지 않다. 수요가 적은 편이다. 제값 받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청도에서 잡힌 홍어는 대부분 택배를 통해 전라남도 지역으로 팔려 나간다. 전남 지역에서는 홍어가 귀한 음식이다. 삭혀서 먹는다. 장례식뿐만 아니라 결혼식 등의 잔칫상에는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 홍어가 빠지면 손님 대접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가격도 대청도 홍어보다 2~3배가량 비싸다. 대청도 어민들로선 가슴 아픈 대목이다.

 

대청도 홍어회


 

홍어는 대표적인 고단백질 알칼리성(ph9) 영양식품이다. 다른 어류보다 요소와 암모니아, 트리메틸아민산이 많아 자극이 강한 냄새와 맛을 낸다. 관절이 아프거나 기관지가 약한 사람에게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내용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잘 나타나 있다. 대청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싱싱한 상태로 먹는다. 최고의 맛은 ‘코’고 두 번째 맛은 ‘애(간)’, 세 번째 맛은 ‘살’, 네 번째 맛은 ‘날개지느러미’로 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요리는 회와 탕·무침·찜 등이 대표적이다.

 

홍어회는 살이 쫀득쫀득하고 찰지다. 혀에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왕소금 기름장이나 초장에 적셔 먹는다. 싱싱한 홍어 애도 회로 먹는다. 비리지 않다. 고소하고 담백하다. 홍어탕은 신선한 홍어의 내장과 묵은지를 함께 넣어 끊인다. 특유의 시원하고 칼칼한 맛은 대청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홍어무침은 새콤달콤하다. 홍어 살점에 미나리와 양파·식초·고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려 먹으면, 달아났던 입맛도 돌아온다. 홍어찜은 미나리와 콩나물 등을 함께 쪄 먹는다. 살점을 한 올씩 벗겨 먹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쫄깃하다.

 

이 밖에도 대청도는 해산물이 많다. 특히 신선한 바다 향을 맛볼 수 있는 성게비빔밥이나 자작하게 강된장처럼 끊여낸 자연산 홍합탕도 별미다. 옹진군은 대청도의 바다식당(홍어탕·홍어회·홍합탕·성게비빔밥·칼국수)을 ‘청정옹진 7미(味) 맛집’으로 선정해 놓고 있다.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독바위


고목나무를 세로로 세워 놓은 것 같은 나이테바위


대청도의 1경 모래사막 © 옹진군 제공·시사저널 구자익


 

모래사막이 숨 쉬는 해변의 섬

 

대청도(大靑島)는 예로부터 숲이 무성해 ‘푸른 섬’으로 불렸다. 그 음을 한자로 옮겨 ‘포을도(包乙島)’라고 칭하다가, 고려 초에 한자로 쓰게 된 것이 ‘청도(靑島)’이다. 섬 이름의 유래는 송나라의 서긍(徐兢)이 1123년에 작성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기록은 서긍이 사신으로 고려를 오갈 때 작성한 견문록이다. 그는 ‘멀리서 바라보면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먹과 같다’는 고려인들의 말을 인용해 대청도를 ‘대청서(大靑嶼)’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섬을 꼼꼼하게 둘러보면 해변이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대청도를 해변의 섬이라고 부른다. 대청도 해안은 여느 서해안 같지 않다. 동해나 남해의 해안과 비슷하다.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준 유원지로 명성이 자자한 답동해변과 고즈넉한 대진동해변, 해안사구가 잘 발달된 옥죽동해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농여해변, 물결무늬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미아동해변, 대청도의 대표 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지두리해변, 고풍스러운 해송이 우거진 모래울해변, 자갈밭 걷기에 좋은 광난두해변, 바위의 기세가 등등(騰騰)한 독바위해변, 커다란 연못 모양의 황금동해변 등이 형성돼 있다.

 

이들 중 옥죽동해변 뒤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모래사막(해안사구)은 대청도의 ‘1경’이다. 해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모래산이 형성됐다고 한다. 바람결에 모래 표면이 변하는 이국적인 정취를 뽐낸다.

 

또 기암절벽도 즐비하다. 대부분이 지질공원이다. 바닷가의 검은색 바위로 불리는 검은낭갯바위와 고목의 나이테를 세로로 세워놓은 것 같은 나이테바위,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대한 절벽으로 막아주는 서풍받이, 바다 가마우지의 쉼터 조각바위, 넓고 평평하게 섬 끝자락을 에두른 마당바위, 구멍 뚫린 커다란 바위가 해안으로 툭 튀어나온 기름아가리, 뾰족한 바위가 고독하게 서 있는 독바위 등은 비경이다. 독바위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대청도 삼각산(343m)도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코스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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