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례로 본 남북 정상회담 실천 방향
  •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전 통일연구원 원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8.05.01 03:28
  • 호수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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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독일,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로의 평화통일 이뤄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났다. 성과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남북관계의 새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며, 남은 과제는 합의 내용의 실천이다. 하나의 언어로 기록된 합의문의 이면에 남북이 실제 가졌던 의도가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도록 합의문을 이행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진전돼야 할 비핵화 문제를 제외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남북 간의 합의사항을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책목표와 연계해 실천할 것인가? 이를 분단의 원인이나 분단 이후의 역사가 다르고, 사회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독일 사례와 비교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독일이 자유와 민주주의적 체제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 연합뉴스

 

평화적 공동 번영을 북한 변화와 통일로 연계

 

남북 간의 대화·교류협력이 상호 신뢰구축·공동 이익의 창출을 넘어 북한 사회의 변화와 통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다듬어지고 지속적·체계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4조 통일 조항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based on the principles of freedom and democracy)을 명시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란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자 염원으로 추구하는 통일된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바로 독일의 통일 방식이다.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총을 내려놓고 우리 체제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북한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고 자발적인 결정으로 그들이 우리 체제를 자신들의 지향체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합의통일, 평화통일이다.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결단해 우리 체제를 받아들일 때 평화통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정상회담 합의사항의 이행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너무나 당연한 다음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 첫째, 북한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그들이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를 누리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다. 둘째, 대화·접촉과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를 열어줘 바깥 세계를 체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앞선 우리 사회를 북한 주민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에 입각한 서독의 대동독 정책, 즉 ‘독일정책’(Deutschlandspolitik)은 다음과 같은 목적의식을 가졌다. 통일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면 민족 간 이질성은 커지고 공산주의 치하에 있는 동포들의 고통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접촉을 통해 건너편에 있는 동포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느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독은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작은 걸음의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을 펴면서 동독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러한 서독의 대동독 정책은 정권이 진보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어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됐고, 오히려 성과는 1980년대 보수당 콜 총리 시기에 나타났다. 서독은 동독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동·서독 주민들이 상호 방문할 수 있게 했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의 텔레비전·라디오·신문을 보고 듣고 읽을 수 있게 했다. 체육, 문화, 과학기술, 청소년, 언론·방송, 환경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독은 동독과 협정을 체결해 교류협력이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분단 기간 4회에 걸쳐 이루어졌던 정상회담 가운데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이 1987년 서독을 방문했던 콜-호네커 제4차 정상회담이 크게 기여했다. 서독 정부는 평화 공존을 넘어 동독 주민들의 삶의 질, 인권 개선에 초점을 뒀고, 동독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마침내 서독과의 통일을 향한 도도한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이란 희망의 싹을 심어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따뜻한 우리의 동포애가 전달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물질적 삶의 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일회적이거나 행사성이 아니라 북한 당국과 협정을 체결해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제도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지역통합과 연계

 

남북관계의 진전이 동북아 국가들과의 연계, 지지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준비되고 실천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가운데 추진되는 남북 간 교류협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북한 변화와 통일의 꿈은 현실화될 수 없다.

 

“서독은 서방세계의 동쪽 끝이 됐고 동독은 동방세계의 서쪽 끝이 됐다. 독일의 분단은 유럽의 분단이 종결되지 않는 한 끝이 날 수가 없다”는 폰 바이체커 서독 대통령의 말처럼 서독은 전쟁의 패배로 인해 미·영·불·소 이른바 전승 4개국에 의해 분단된 그 순간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통일이 서방과 동방, 즉 유럽의 통합,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소련 간의 화해와 동의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고려에서 ‘통일’보다 ‘통합’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독은 통일을 가슴에 품고 긴 안목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되, 통일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완화하거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필수조건들을 하나씩 채워가는 ‘현실정책’(Realpolitik)을 추진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서독이 국제사회와 평화적으로 공동 번영할 수 있는 훌륭한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통합정책’(Integrationspolitik)이었다.

 

통합정책은 분단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해 추진됐다. 먼저 미·소가 대결했던 냉전의 시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철저한 ‘서방통합정책’을 통해 국가를 건국하고, 군사적 재무장과 NATO 가입, ‘마셜플랜’에 의한 지원을 바탕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경제성장을 이룩함과 동시에 서방으로부터 신뢰를 획득했다.

 

다음으로 미·소가 화해했던 긴장 완화의 데탕트 시기에는 ‘신동방정책’을 기조로 하는 ‘동방통합정책’을 추진해 소련 및 폴란드와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동유럽과의 관계 개선은 물론 동구의 거대한 시장을 획득했으며, 미·소의 양해 아래 1972년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또한 동서 간 해빙 분위기 속에서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를 통해 출범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촉매 역할을 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시작된 신냉전 시기에는 다시 서방통합을 중점으로 하되 CSCE를 통해 동유럽과 간접적 협력을 지속하는 ‘균형정책’을 추진했다. CSCE를 무대로 유럽에서의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 및 동유럽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결국 서독은 국제정세의 가파른 변화 속에서 현실적·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통합정책을 통해 동·서방 양 진영에 서독이 과거의 파쇼국가가 아니라 함께 평화적으로 공동 번영할 수 있는 훌륭한 동반자란 인식을 심어주면서 국력을 성장시키고 통일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의 가능성이 도래한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토대로 통일을 무리 없이 끌어낼 수 있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됐다. 판문점은 남북한 분단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 AP 연합

 

통일의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책 방향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이 동북아 역내에서 평화적으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동반자 국가로서 확실히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주변국들에 그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북한이 덧붙여져 활발한 협력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한반도 전체의 상황이 동북아 역내의 평화적 번영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이 체감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향후 남북 간에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표명되는 순간이 도래할 경우, 동북아 국가와 국제사회는 통일된 한국이라 할지라도 역내 국가, 나아가 세계 사회와 함께 평화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굳게 하여 한반도 통일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민족공동체와 동북아공동체를 동시에 형성하려는, 국가 성장과 통일을 동시에 이룩하려는 통합정책을 통한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미·중 간에 패권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은 서독이 신냉전 시기에 추진했던 균형정책의 창조적 응용이 필요한 시기다.

 

 

선진민주사회 건설의 가속화

 

정상회담을 계기로 진전되는 남북관계에 상응해 우리 사회를 선진민주사회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더욱 확대되고 깊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며, 그러할 때 남북한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북한 주민이 우리와 함께하려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한국이 정치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민주화의 진행을 더욱 재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국은 통일에의 유인력을 더욱 가질 수 있게 되며, 이것을 북한 주민이 깨달을 때 그들은 동력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통일에의 힘은 북한 주민으로부터 분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줘야 하며, 한국은 그들의 지향점임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변화되는 국제환경 속에서 북한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것이다. 이 변화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체제경쟁이 끝난 현 상황하에서 그 동기는 바로 우리에게서 나와야 할 것이며, 우리가 북한에 기대하는 그 이상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냉전 종식은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통일에의 소명의식을 확고히 한 후 학자로서 처음으로 발표한 1993년의 윗글은 29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도 안타깝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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