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한국당 저격수? 홍준표 빼고 다 고마워해"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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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보수 격변기 정밀진단 & 북·미 정상회담 전망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예전보다 더 거침없어졌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와 보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긴 듯했다. 20대 때 민족해방(NL)계 학생청년운동, 30대 때는 북한 인권·민주화 활동, 40대엔 보수 정치에 몸담으며 사상·가치의 격변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올해 51세. 지금은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바른미래당의 재선 정치인으로서 '우클릭' 일변도인 자유한국당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다. '한국당 저격수'라고 규정하자 그는 다른 말을 한다. "한국당 의원들이 오히려 나한테 '자신들이 못 하는 것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있다."

 

5월2일 오후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을 만나 한반도 대화 국면, 보수의 변화 등에 관해 들어봤다. '자유한국당 저격수'로 통하는 그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축출해야 전쟁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친정 한국당 향해 맹폭격…“눈치 볼 거면 뭐 하러 정치 하나.”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한국당은 이제 빨갱이 장사 못 하게 돼 멘붕(멘탈 붕괴) 오겠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에서는 핵 폐기를, 남한에선 홍준표 폐기를 해야 한다."
"지방선거 전 홍 대표 퇴출을 위해 정치권이 힘을 합하자."
"홍 대표가 보수면 파리가 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하태경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쏟아낸 말들이다. 5월2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서도 실컷 홍 대표를 '디스'하고 온 하 최고위원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다른 편을 지적하는, 그것도 공개 비판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대의 대응사격도 피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드루킹 특검 요구, 6·13 지방선거 준비 등 '진짜 일거리'는 산적해 있다. 하 최고위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그래도 (최순실 청문회 때처럼) 문자 폭탄은 안 온다"며 웃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당 지도부에게 하 최고위원은 눈엣가시다.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소속으로 19대,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된 하 최고위원이다. 친정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하 최고위원과 한국당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지난해 9월4일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하 최고위원에게 욕설을 내질렀다. 당시 김장겸 MBC 사장의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해 국회 보이콧에 나선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하 최고위원은 "보수 정당이 안보 위기(북한 6차 핵실험)에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쳤다. 이에 정 의원은 "네가 어떻게 보수를 입에 올리고 지X이야, 이 나쁜 자식아"라며 화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하 최고위원의 홍 대표 비판·정부 칭찬이 이어지자 정호성 한국당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1일 "여당 의원 발언인지 야당 의원 발언인지 헷갈린다"고 힐난했다. 또 하 최고위원의 과거 언급을 예로 들면서 "'김정은 하나만 제거하면 남북한 7000만이 행복하다'고 날을 세웠던 그 때 그 결기는 어디로 갔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의원들과 늘상 마주칠 텐데, 껄끄럽겠다"고 하자 하 최고위원은 "그런 눈치 볼 거라면 뭣 하러 정치 하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한국당 지도부를 제외한 다수 의원들 생각은 다르다고 전했다. 하 최고위원은 "개인적으로 만나는 한국당 의원마다 홍 대표를 성토하더라"면서 "나한테 '자신들이 못 하는 것(홍 대표 등 당 지도부 비판) 대신 해줘서 고맙다, 잘 하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며 "지역구(부산해운대구갑)에 내려가면 홍 대표가 싫다는 시민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한국당 지도부와 의원들 사이 균열은 심해질 것이라고 하 최고위원은 내다봤다. 하 최고위원은 "당장 표를 날리고 있는 사람(홍 대표)을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라며 "지방선거 대표주자들로부터 시작된 홍 대표 비판론이 다른 후보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홍 대표가 지은 한국당 지방선거 슬로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패러디해 "홍 대표가 보수를 통째로 말아먹고 있다"고 표현했다.   

 

5월2일 오후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을 만나 한반도 대화 국면, 보수의 변화 등에 관해 들어봤다. '자유한국당 저격수'로 통하는 그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축출해야 전쟁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반공보수 시대 종언' 주장, 洪 퇴출운동도  


홍준표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야말로 보수를 입에 올려선 안 된다고 하태경 최고위원은 주장했다. 하 최고위원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보수가 더욱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고 확신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기존에 전쟁으로 형성됐던 대한민국 정치 구조가 평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며 "보수 세력이 확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전쟁의 산물인 반공 보수 시대가 종언을 고했는데, 죽어가는 반공 보수의 단말마가 바로 홍 대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깎아내리며 거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5월2일도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인 경남을 찾아 "(정부가) 되지도 않은 북핵 폐기를 다 된 것처럼 선동하고, 포악한 독재자가 한 번 웃었다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도가 77%까지 올라간다"며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라는 말까지 했다.

 

안보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와 확실한 대립각을 세워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겠지만, 여론은 물론 당내 분위기도 좋지 않다. 특히 한국당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표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 최고위원은 홍 대표에 대해 "마치 해방이 다가온 상황에서 일제 식민지 상태 그대로 살자고 하는 것과 똑같다"며 "평화의 발목을 잡는 이는 축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홍 대표는 일단 본인과 한국당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당권만 사수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안 물러나려 할 텐데 한시라도 빨리 홍 대표 퇴출을 위해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2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을 만나 한반도 대화 국면, 보수의 변화 등에 관해 들어봤다. '자유한국당 저격수'로 통하는 그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축출해야 전쟁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친북’ 운동가에서 보수의 미래 논하는 정치인으로


198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하태경 최고위원은 10년 이상 NL계 학생청년운동에 몸담았다. 이후 북한 인권·민주화 활동기를 거치며 친북(親北)에서 반북(反北)으로 '전향'했다. 2012년 4·11 총선 때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당선되면서부터는 각종 북한 관련 이슈 속 보수의 입을 자처했다. 북한 정권에 대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그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적극적으로 칭찬하자 '말 바꾸기' 논란이 따라붙었다. 하 최고위원은 "(남북 정상회담 전) 핵실험,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게 맞다"면서 "그런데 이번엔 김 국무위원장이 확실히 변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국무위원장이 개발독재자로서 경제 발전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수령사회주의에서 수령자본주의로 전환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진보이므로, 이럴 때는 김 국무위원장을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도 북한의 변화를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하 최고위원은 지적했다. 하 최고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온 세계가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며 "그럼에도 '북한이 아직 거짓말 한다'며 반공 시대 유령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쪽이 있는데, 그를 심판할 때"라고 비판했다. 

 

하 최고위원은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 역시 밝게 전망했다. 그는 "북·​미 간 이견이 많이 좁혀졌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김 국무위원장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 1,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제대로 못 이룬) 한반도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봉책으로 북한에 합의해줄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관해선 "부실한 합의를 하게 되면 역풍이 불 텐데,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합의'라는 평가가 나와줘야 중간선거에서 도움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후 우리나라에서 보수 정권이 집권해도 한반도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하 최고위원은 "당연히 이어가야 한다"며 "다만 홍 대표 같은 사람이 집권하면 (평화 체제가) 깨질 수 있으므로 축출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득 하 최고위원 집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예비후보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연루 의혹과 관련해 시기순으로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바른미래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민주당을 향한 특검 도입 요구를 재개했다. 한국당도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하 최고위원은 "한국당과 싸울 건 싸워도 협력할 부분은 협력해야 한다"며 "그게 정치"라고 밝혔다. 정치 초년생 때 정체성과 관련해 해명하는 게 일이던 그는 이제 '신(新) 보수'의 대표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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