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CT 안 찍는다…“건강하면 CT 찍을 필요 없어”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4 14:04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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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암 찾는 PET-CT 방사선량, X선의 200배

 

예전엔 머리가 아플 때 의사를 찾았다면 지금은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려는 경우가 있다. 머리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암과 심장질환 등 생명을 위협하는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영상진단은 진가를 발휘한다. 발병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이 정기적으로 영상진단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건강한 일반인도 정기적으로 방사선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실제로 질병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추가로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있다. 이런 수요에 맞춰 병원도 ‘암예방검진’ ‘VIP’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패키지 검진 상품을 쏟아낸다. 그러나 X선·CT·PET-CT(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 등 방사선 진단기기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병을 찾아내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방사선 피폭이라는 역기능도 있다. 고위험군에게는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크므로 정기적인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한 일반인에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클 수 있다. 예컨대 암이 의심되는 사람에게는 방사선 노출보다 암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방사선에 노출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의사는 CT와 같은 방사선 검사를 자제한다. 유재욱 유재욱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은 “방사선 피폭 때문에 많은 의사는 웬만해선 CT를 찍지 않는다”고 밝혔다.

 

© pixabay


 

“소량 방사선 피폭으로도 암이 발생한다”

 

방사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mSv(미리시버트)로 표시한다. 흉부 X선 사진을 한 장 찍으면 0.1mSv에 피폭된다. 같은 부위를 CT로 찍으면 X선보다 100배 많은 10mSv에 노출된다. 만일 검진에서 머리·흉부·복부를 CT로 각각 찍으면 모두 30mSv가 된다. 또 환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필요할 경우 한 번의 CT 검사에서 3차례 촬영하기도 한다. 또 요즘 유행하는 PET-CT를 한 번 찍으면 약 20mSv의 방사선을 받는다.

 

방사선 피폭량이 한 번에 100mSv 이상이면 평생(20~30년 후) 암에 걸릴 위험이 0.5% 증가한다. 이에 비하면 영상진단기기의 방사선량은 적은 편이다. 원전의 방사능 입자와 달리 의료용 방사선은 몸을 통과하므로 몸 안에 축적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방사선 강도가 세거나 검사 횟수가 늘어나면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두 번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암에 걸린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담배를 많이 그리고 오래 피울수록 폐암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태섭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방사선 피폭은 현재는 몰라도 다음 세대에 유전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일반인이 CT 등 방사선 검사를 받는 것이 위험하다고 단정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애매한 부분’에 대해 한 대형 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머리나 배가 아파도 CT를 찍으려는 사람이 있다. 사실 머리나 배가 아파 찍은 CT는 판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거의 100% 정상이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 병이 생길 수 있는 그 희박한 가능성이 애매한 것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을 알지만, CT를 찍겠다는 환자를 의사가 말릴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적은 양의 방사선은 안전할까. 이에 대한 연구결과는 없다. 다만 아무리 낮은 방사선량이라도 질병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근거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기준을 대폭 낮춰, 한 해 방사선 피폭량을 1mSv 이하로 권장했다. 이는 사람이 자연 상태에서 피폭되는 방사선량(연간 2mSv 정도)을 제외한 수치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방사선 피폭을 발암물질 1급(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으로 분류했다. ‘탈핵에너지 교수모임’ 공동의장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방사선 피폭량에 따라 암 발생 위험이 비례한다는 이론이 의학 교과서에 나와 있다. 100mSv 이하의 방사선 피폭으로도 암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학자로서 일반인이 건강검진에서 CT를 촬영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freepik

 

 

국민 1명 연간 방사선 검사 건수 4.6회

 

방사선 검사 건수는 해마다 증가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빅데이터를 분석한 바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방사선 검사 건수는 1억6000만 건에서 2억2000만 건으로 37% 증가했다. X선 촬영이 1억7000만 건으로 가장 많았고, CT는 600만 건이었다. 국민 1명이 연간 방사선 검사를 받은 건수는 같은 기간 3.3회에서 4.6회로 늘었다. 매번 CT 검사를 받았다면 연간 40~50mSv의 방사선량을 받은 셈이다. 방사선 검사 건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김선호 국립암센터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미국의 전례를 보면 우리 영상진단의 미래를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 영상진단은 의료 근거자료다. 따라서 국내 영상진단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선 검사가 늘어나면서 소량이라도 피폭량은 증가할 게 뻔하다. 남은 숙제는 어떻게 방사선 피폭을 줄이냐다. 외국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암을 찾겠다고 CT나 PET-CT를 찍는 일은 없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만 영상검사를 한다. 이 경우에도 독일에선 의료진이 환자에게 최근 방사선을 쬔 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영상진단으로 피폭될 방사선에 대해 설명한다. 영국은 방사선 장비의 피폭량을 측정해 권고기준을 넘는 장비를 제한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환자가 받은 방사선 피폭량을 의무적으로 기록하며 환자의 연간 피폭량을 파악한다.

 

우리 정부도 방사선 피폭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2017년 건강검진에서 PET-CT 촬영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병원은 PET-CT 촬영 시 방사선 피폭량과 위험성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양승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핵의학과 주임과장은 “건강한 일반인이 단순 검진 목적으로 CT를 촬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 유방암·자궁암 등은 초음파검사로 진단할 수 있다”며 “50세 이상이 저선량 CT로 폐를 촬영한다고 해서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몇 년에 한 번 검사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걱정되는 부위가 있으면 의사를 찾아라”

 

국민의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값비싼 건강검진 프로그램일수록 많이 검사하므로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어차피 검사받을 때 CT와 MRI(자기공명영상)를 같이 찍으면 질환을 더 잘 찾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단기기는 어떤 게 더 정확하다가 아니라 서로 사용 분야가 다르고 보완하는 관계다. 예컨대 위장을 살펴볼 때는 내시경 검사가 가장 정확하다. 방사선이 없는 초음파 진단기는 심혈관과 복부 진단에 유용하다. 특히 물혹은 고가의 검사장비 없이 초음파 검사만으로 확진할 정도로 정확하고, 공기가 드나드는 폐나 위장 진단에는 약하다. MRI는 공기의 영향을 받지 않아 초음파나 CT로 검사하지 못하는 질병을 찾아내는데, 주로 근골격계와 머리의 질환을 찾는 데 이롭다.

 

X선은 폐결핵·폐렴·골절·골암 등 폐와 뼈 진단에 이상적이다. CT는 짧은 시간에 촬영할 수 있어 폐·심장·내장 등 움직이는 기관을 검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난소에 생기는 기형종(양성 종양)을 가장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전신을 스캔한다는 PET-CT는 질환의 위치를 찾는 데 유리하다. 이 검사를 했다고 CT 검사가 필요 없는 게 아니다. PET-CT 촬영 후 추가로 CT 검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휴대전화에 사진기가 붙어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사진 전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는 해상도가 비교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PET-CT 검사를 위해 환자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먹어야 한다. 따라서 PET-CT 촬영 후 일정 시간 동안 환자 몸에서 방사선이 나오므로 가족이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다. 김선호 전문의는 “내가 어릴 땐 배가 아프면 의사를 찾았다. 사진을 찍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환자가 진료보다 방사선 검사를 하려고 한다. 불필요한 방사선 피폭과 의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40세 미만 건강한 사람은 패키지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 국가에서 하라는 위내시경 등 기본검사면 된다. 그래도 본인이 걱정되는 부위가 있다면 영상진단 검사를 할 게 아니라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진단 후 의사가 영상진단을 권할 때 검사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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