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계절 5월이 왔다…8일 칸국제영화제 개막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4 15:36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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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국제영화제, 《버닝》 《공작》 등 한국영화 주목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축제인 칸국제영화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거장과 신예를 아우르는 최고의 화제작들을 만날 수 있는 이 명예의 전당은 올해로 71회째를 맞는다. 5월8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경쟁부문에 올라 눈길을 끈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 또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으로 호명돼 칸의 레드카펫을 밟게 된다. 칸으로 가는 한국영화들을 비롯해, 올해 영화제를 미리 들여다본다.

 

올해 각종 외신은 칸의 라인업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상영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작품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셔서다. 마이크 리 감독이 영국 피털루 대학살을 소재로 만든 《피털루(Peterloo)》, 데뷔작 《사울의 아들》(2015)로 칸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헝가리 감독 라슬로 네메즈의 신작 《선셋(Sunset)》, 매튜 매커너히가 출연하고 하모니 코린 감독이 연출한 범죄 코미디 《더 비치 범(The Beach Bum)》 등이 그 주인공. 특히 마이크 리 감독은 《비밀과 거짓말》(1996)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어 그의 신작 상영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 감독의 신작 《존 F. 도노반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The Life of John F. Donovan)》 역시 라인업에 오르지 못했다.

 

《공작》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경쟁부문 아시아 영화 강세, 크고 작은 논란도

 

경쟁부문은 예년에 비해 한층 국가 다양성을 꾀한 모양새다.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강세가 우선 눈에 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 지아장커 감독의 《애쉬 이즈 퓨어리스트 화이트(Ash Is Purest White)》,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Shoplifters)》,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 I & II(Asako I & II)》 등이 포함됐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더 이미지 북(The Image Book)》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킨 가운데,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 《스리 페이시스(Three Faces)》가 단연 화제다. 2015년 《택시》로 제65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파나히 감독은 이란 대통령 퇴진 시위 과정을 영화로 만들다 당국에 체포돼 이란 법정으로부터 20년간 영화제작 금지 및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칸영화제 측은 이란 당국에 파나히 감독의 특별 초청 허가를 요청했으나, 그의 참석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

 

또 한 명의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신작 《에브리바디 노우즈(Everybody Knows)》는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한 작품으로, 결혼 후 고향 스페인으로 떠난 여인이 과거의 비밀과 마주하는 내용이다. 한편 폐막작인 테리 길리엄 감독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는 때아닌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감독과 사이가 틀어진 제작자가 상영 금지를 신청한 것. 칸영화제 측이 “법원의 판단에 맡길 테지만 감독을 우선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상영 여부는 개막 전날인 5월7일 결정된다.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미투(Me Too)’와 ‘타임즈업(Times up)’ 운동의 영향은 칸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에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선정한 것 역시 각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한층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심사위원단은 배우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트, 장첸 그리고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크 감독과 드뇌 빌뇌브 감독 등 9명이다. 이들은 경쟁부문에 오른 20편의 작품을 심사한다.

 

영화제 기간 중에는 성범죄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피해 상담 및 가해자 신고를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핫라인이 설치된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성폭력 사건의 일부가 과거 칸영화제에서 발생했기 때문. 칸의 이 같은 결정은 환영받았으나, 4월20일 발표한 추가 초청 라인업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조직위원회는 《윈터 슬립》으로 2014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더 와일드 페어 트리(The Wild Pear Tree)》를 경쟁부문에 초청하는 등 총 11편의 추가 라인업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중 논란의 작품은 비경쟁부문 초청작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스릴러 《더 하우스 댓 잭 빌트(The House That Jack Built)》다. 그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로 심사위원대상을, 《어둠 속의 댄서》(2000)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칸이 사랑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어둠 속의 댄서》의 주연배우 비요크가 촬영 당시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바 있으며, 2011년 감독의 연출작 《멜랑콜리아》가 칸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그가 나치 옹호 발언을 한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의 칸 복귀를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이유다.

 

《버닝》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제공


 

칸의 레드카펫 밟는 한국영화들

 

올해도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오른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이 칸영화제 진출에 성공했다. 그중 《버닝》은 수상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감독의 전작 《밀양》(2007)과 《시》(2010)가 각각 칸에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 트로피를 받은 바 있어서다. 이 감독은 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에 위촉되는 등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신작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한 작품. 유통회사에서 일하는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와 조우하고,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의문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현지 시각으로 5월16일 오후 6시30분에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가진다. 국내 개봉은 5월17일이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이보다 앞선 5월11일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된다.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윤 감독은 연출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로 제5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이후 두 번째로 칸에 입성한다. 주연배우 황정민과 이성민, 주지훈도 칸의 레드카펫을 밟는다.

 

비평가주간에는 김철휘 감독의 단편 《모범시민》이 초청됐다. 비평가주간은 감독주간과 더불어 영화제의 대표적 사이드바 부문으로, 연출가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만 상영이 가능하다. 배우를 포함한 전 제작진이 동국대 전산원 재학생과 졸업생. 영화는 오물로 엉망이 된 경마장 화장실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주인공이 나타나 청소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모범시민》은 전 세계에서 온 10편의 중·단편과 ‘Leica Cine Discovery’상을 두고 경쟁한다. 한편 비경쟁 단편영화 부문에는 한국영상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인 구상범 감독이 연출한 《우체통》이 공식 초청됐다. 우편배달부와 탈북자의 교감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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