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국가 북한과 비정상 가족 ‘마담B’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0 09:08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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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전히 아쉬운 남북의 여성 인권문제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평화공존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온갖 아픈 데가 한결 덜 아파온다. 최근 주취자를 구조하다 폭행당해 사망한 여성 구급대원의 실제 사망원인이 지독한 성적 폭언이 준 스트레스로 뇌세포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 인간이 뿜어내는 악의 언어가 다른 한 인간을 파괴할 만큼 강력하다. 하물며 우리는 이렇게 악하고 독한 언어의 세례를 전쟁 후부터만 따져도 무려 65년간 뒤집어쓰며 살고 있다. 그러니 어찌 아픈 몸이 낫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상상은 막상 숫자를 만나면 약간 풀이 죽는다. 작년에 IPU(국제의원연맹)가 유엔과 함께 발표한 ‘2017 여성정치’(Women in Politics 2017)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의회 내 여성 비율에서 조사 대상 193개 나라 가운데 122위, 남한은 116위라고 한다. 선출직 여성 정치인 비율이 낮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 인권 수준과 직결된다 할 수는 없으나, 남북한 모두 여성은 제2의 성에서 그다지 탈출하지 못했다는 증거로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남북 정상회담 내내, 오로지 유일한 여성 참석자 강경화 장관을 제외하고는 카메라가 쫓아다닌 곳에 등장한 여성은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 김여정 ‘부부장’ 같은 가족 계열의 여성들이었다. 이 그림은, 보기 좋은 젊은 지도자 부부라는 상을 보여주면서 북한이 ‘정상 국가’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분단 극복과 평화를 위해 북한이 ‘불량 국가’에서 ‘정상 국가’로 이미지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면 정말 좋은 일이며, 합의할 수 있는 낮은 단계부터 합의하면서 평화로 가는 걸음을 출발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성이 수많은 인권문제를, 특히 여성 인권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국가가부장에서 핵가족가부장의 느낌으로 북한이 변화하는 것을 진일보라고 말하는 데 만족할 수 있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부인 리설주 여사(가운데),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제주도 오연준군의 《고향의 봄》을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여전히 아쉬운 남북의 여성 인권문제

 

작년 DMZ 영화제에서 만난 다큐 《마담B》가 머릿속을 맴돈다. 한 탈북 여성이 겪은 기구한 개인사를 추적한 영화다. 주인공 마담B는 북한에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 그녀는 중국에서 일 년간 돈을 벌어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중국으로 간다. 그러나 일자리를 알선한다던 브로커는 그녀를 중국 남성에게 팔아넘긴다. 다행히 중국 남편과 그 가족은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한다. 그녀는 일단 한국으로 온 다음 북한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을 데리고 나와 중국 남편과 정식으로 국제결혼을 하고 싶어 하나, 막상 둘째 아들뿐 아니라 북한의 남편과 큰아들까지 일가족이 모두 마담B를 찾아 탈북을 한다. 원치 않던 북한 남편과 돌아가고 싶은 중국 남편 사이에 마담B는 끼여 있다. 그녀가 중국 남편을 원하는 이유는 한 가지, 자신을 인간적으로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국제법과 다양한 정치적 장애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참으로 기막힌 상황이 아닌가. 이미 남북한은, 소위 ‘정상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를 경험하는 중이라는 것이 평화체제로 돌입할 때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남북의 평화라는 거대담론의 수레바퀴 아래, 수없이 다양한 개인들의 삶이 갈려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개개인을 보살피고 보듬어 안는 일을 도대체 어느 부처에서 감당해야 할까. 통일부인가 여성부인가 복지부인가 아니면 국민이자 여성일 뿐인 내가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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