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묻지마 폭행’, 불안한 ‘무방비 도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4 10:14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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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200건 발생…‘묻지마 포비아’ 확산

 

대한민국이 ‘묻지마 폭행’ 공포에 떨고 있다. 목적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우발적 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찰이 폭력 사건 가해자를 제압하지 못하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경찰의 안이한 대처까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각종 폭력 사건에 국민들이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폭력 무법지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

 

2016년 5월17일 한 남성이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원한관계는 없었다. 살해 동기가 불분명한 ‘묻지마 범죄’였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지만 이 같은 비보(悲報)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한 해 평균 5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접수된 것만 200건이 넘는다. 이 중 상해가 연평균 28.4건으로 가장 많았고 살인 사건도 12.6건에 달했다.

 

최근 한 달 사이 보도된 묻지마 범죄만 해도 수 건에 이른다. 4월21일에는 전주시 효자동 한 치과 건물 계단에서 치위생사 A씨(여·45)가 갑자기 나타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경찰은 묻지마 범죄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5월3일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올레길에서는 B씨(43)가 산책하던 C씨(51) 등 남녀 행인 4명을 주먹으로 때리고 휴대폰을 빼앗아 저수지에 던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수사 결과, B씨는 C씨 일행과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었다.

 

© 일러스트 안병현


 

단순 시비가 ‘묻지마 폭행’으로 번지기도 한다. 싸움을 촉발한 원인에 비해 폭행 수위가 지나치게 가학적인 게 묻지마 폭행의 특징이다. 최근 공분을 일으킨 일명 ‘광주 집단폭행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4월30일 오전 6시28분쯤 D씨(31) 등 8명은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서 택시 탑승 문제로 E씨(31) 등 3명과 시비가 붙었다. 사소한 다툼이었다. 그러나 D씨 일행은 조직폭력배(조폭)를 연상케 할 만큼 잔인했다. D씨 일행은 E씨를 인근 풀숲으로 끌고 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무차별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D씨는 E씨에게 “너 오늘 죽어야 한다” “죽는 날이다”라면서 손가락과 나뭇가지로 눈을 찔렀고 결국 E씨는 실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엽기적인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국민들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경험한 적이 있냐’는 설문에 응답자의 72.8%가 ‘있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묻지마 범죄를 자신 또는 가족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나라가 안전하지 않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8.0%로 1위를 차지했다. 또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33.9%), ‘정신질환자 관리’(13.8%), ‘치안대책 강화’(12.5%), ‘약물 남용 규제 강화’(1.8%) 등의 의견이 있었다. 갈수록 잔혹해지는 묻지마 범죄 양상에 비해 현재 사법제도의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광주 집단폭행 사건도 처벌 수위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은 5월9일 집단폭행 피의자들에 대해 살인미수가 아닌 공동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살인미수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E씨 변호를 맡은 김경은 변호사는 “피의자들은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 및 예견을 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것”이라며 “피의자들의 범행 행태와 의도를 볼 때 살인미수가 아니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현장 대응력도 도마에 올랐다. 광주 집단폭행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가해자들을 제압하지 못하는 듯한 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돼서다. 경찰은 “출동 직후 찍힌 영상이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찰을 향한 불신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최윤호씨(30·대학원생)는 “국민들이 광주 집단폭행 사건 등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은 매우 크다. 그러나 경찰과 사법 당국이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느낌”이라며 “범죄자가 대한민국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사건 일선에서 수사 중인 경찰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11년 경력의 한 강력계 형사는 “폭행 사건의 경우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순간 구분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했다가는 공권력 과잉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며 “강력범죄를 일망타진하기에는 경찰의 인력구조나 공권력이 매우 미약한데 모든 화살이 우리(경찰)에게 쏟아지는 것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묻지마 범죄, 처벌 강화 능사 아냐

 

‘묻지마 포비아(phobia·공포)’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어떨까. 우선 공권력 강화는 사건 해결의 본질은 아니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강한 경찰’이 탄생한다 해도, 예고 없이 발생하는 우발적 범죄를 예방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이 같은 논란을 자초한 것은 지나치게 ‘친(親)가해자’적인 형사사법제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공권력은 힘의 크기가 아닌 방향의 문제다. 국민들은 이 부분에서 불신을 보내고 있다. 공권력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라며 “현재 형사사법제도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되지 않도록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지만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는 외면하고 있다. 경찰이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이 왜 자신들을 불신하는지를 자성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묻지마 범죄의 사후 대응이 아닌 원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떻게’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에 앞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가해자들의 폭력성에 주목한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다는 그 기저 심리에는 내면에 축적된 증오나 스트레스가 있다. 결과적으로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회 분위기가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미국의 범죄학자 셰이(Hsieh)는 1980년대부터 1991년 사이에 출판된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실업과 가난, 경제적 불평등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쟁이 일상이 되고 이 과정에서 경험하는 억압과 좌절감이 내부에 잠재된 공격성을 쉽게 행동으로 표출하게 한다. 사회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아무런 죄가 없는 타인을 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 외에도 낙오자나 사회 부적응자들을 품어줄 수 있는 치유 제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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