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얼굴 ‘서울숲’ 도시공원 넘어 랜드마크로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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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변화 시도 중인 '뜨는 동네' 서울 성수동

 

‘요즘 뜨는 동네’라 불리는 서울의 성수동. 이제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몇 년째다. 성수동이라 하면 새로 생긴 카페거리 정도로 여길 수 있겠으나,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 같은 것은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 혹자의 말을 빌리자면, 성수동은 한 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성수동은 196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이후 점차 산업시설들은 도심을 빠져나갔고 일부 남은 공장들 사이사이로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매력으로 느껴졌는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성수동 곳곳에 남겨진 창고와 공장건물들을 작업실로, 갤러리로, 카페로 변신시켰다. 어떤 곳은 겉으로 봐선 공장인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편에서는 이 지역의 자랑거리였던 수제화 산업을 다시 한 번 일으키기 위한 수제화공동판매장이 만들어지며 또 한 겹의 이야기를 더했다. 이렇게 도시에 쌓여 있는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여기서부터 카페거리’, ‘이곳은 갤러리’ 따위의 분명한 이정표가 없다는 것이 성수동의 매력이다.

 

‘서울숲’은 이런 성수동의 또 다른 얼굴이자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2005년 서울숲이 만들어지고 나자 한강이 보이는 지역이란 특징이 장점으로 함께 부각되면서 고급주거지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이때가 ‘환경쾌적성’이 부동산 가치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시기였다고도 말한다. 집 주변에 지하철역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큼, 울창한 나무그늘과 시원한 물가를 가까이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 대단지 아파트들은 앞 다퉈 지상공간에서 주차장을 없애고 마치 공원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호수공원 주변 부동산은 불황이 없다는 말까지 생겼다. 서울숲 역시 성수동 부동산값을 들썩이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파크데이 페스티벌' 두번째 날에 만들어진 '아웃도어 오피스' ⓒ사진=김지나 제공

 

 

 

일상 가까이서 느끼는 자연 ‘서울숲’

 

서울숲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였을까. 물론 아니다.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오아시스 같은 푸른 자연을 만들겠다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 서울은 세계의 그 어떤 대도시보다 산과 강이 아름답지만 정작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히 찾을 수 있는 자연은 부족했던 터다. 서울숲이 성수동 도시재생의 신호탄이었을지는 몰라도, 도시민들이 좀 더 생활 가까이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자연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본분이었다.

 

왜 일상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일이 중요할까.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대도시에 이다지도 큰 공원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지난 5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숲에서는 ‘파크데이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행사는 마치 ‘공원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듯했다.

 

파크데이 페스티벌은 3일 동안 매일매일 다른 주제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첫째 날은 ‘스쿨 데이’.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 정원을 가꾸는 법 등등, 공원에서 무언가를 배워가는 날이다. 둘째 날은 ‘밸런스 데이’로, 직장인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은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열리는 ‘컬처 데이’로 마무리됐다. 셋째 날은 어린이날이어서 그랬는지 가족들을 타깃으로 하는 익숙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이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밸런스 데이’였다. 공원에 야외사무실과 회의실을 꾸리고 와이파이를 설치해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점심때는 직접 싸온 도시락을 사람들과 함께 먹는 ‘빅런치’ 이벤트가 펼쳐졌다. 저녁에는 야외영화관을 만들어 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영화 한편을 권했다. 삭막한 사무실과 매일 거기서 거기인 점심메뉴, 야근 또는 음주로 하루를 마감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를 공원에서 한번 바꿔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이 일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민들에게, 그렇지 않은 삶도 한번 상상해보자는 신선한 쇼케이스 같은 하루였다.

 

 

확대되는 서울숲 구역에는 과학문화미래관(가칭) 건립이 확정됐다. ⓒ사진=김지나 제공

 

 

 

미완의 서울숲, 테마파크로 조성 계획

 

사실 평소에도 서울숲 말고도 많은 도시공원들에 이런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 공원이 필요한 것일까? 프로그램은 단지 도시민들에게 공원에서 여가를 보내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한 도구다. 도시에 공원이 없어도 괜찮았던 건 시간을 내 여가를 즐길 여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못 느꼈기 때문이었을 테다. 지금은 다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과 여가의 균형을 원하고, 집이나 직장이 아닌 곳이 필요해졌다. 공원은 그저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현시켜주는 장소로서 등장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다만 ‘거들뿐’이었다.

 

서울숲은 그동안 미완성된 모습이었다. 원래 61만㎡ 규모로 만들 예정이었지만 삼표레미콘 공장과 승마장, 정수장과 같은 일부 부지가 빠져, 원래 계획의 3분의 2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2022년까지 레미콘 공장을 이전하기로 합의가 됐고 그 자리에는 수변공원과 ‘과학문화미래관(가칭)’이 들어서는 계획이 발표됐다. 이는 포스코의 창립 50주년 기념공헌 사업으로 추진된다.

 

과학문화미래관을 가히 서울시의 대표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건축물도, 그 내용물도 ‘세계적인 수준’을 목표로 하겠다고 한다. 서울숲의 확장이라기 보단, 새로운 테마파크를 짓는다는 인상이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과학문화미래관을 보기 위해서 서울숲을 찾고, 성수동을 찾는다면 나름의 의미는 있겠다. 애초에 서울숲을 만든 이유가 무색해지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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