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투자가 ‘대박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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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외자유치 걸림돌 될 사회주의 사상…투자금 빼앗겨도 법적 대안 없어

 

대북투자 방안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의지다. 미국은 핵 폐기 대가로 민간투자를 약속했고, 청와대도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미국·일본 경제계와 대북투자 관련 공조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우선 투자 분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대북투자 경험이 많고 투자액이 큰 나라는 중국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중국의 대북투자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5년 중국의 대북투자 총액은 7억 6000만 달러(8214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비스 부문의 투자액은 약 4300만 달러(464억원)에 불과하다. 전체의 5.6%다. 

 

서비스업은 북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국책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제조업 성장이 수반되지 않는 서비스업만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며 “서비스 주도 성장 모델의 의의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2014년 9월16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모습. © 연합뉴스


 

北 서비스업, 성장 가능성 크지만 투자액은 미미

 

북한의 현 상황도 녹록지 않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4월26일 "대동강변에 트럼프 타워를 짓거나, 평양에 맥도날드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단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는 별개의 얘기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넘어 미국식 자본주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분업에 따른 제조 공정, 세계 공통으로 적용되는 매뉴얼, 가게 앞의 황금 아치 등 곳곳에 자본주의 요소가 녹아 있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가 품고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결정하고 있다는 뜻으로 '맥도날디제이션(McDonaldization)'이란 신조어를 쓰기도 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 기치를 내건 북한 당국이 '주민의 맥도날디제이션'을 내버려둘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또 맥도날드가 뿌리를 내리면, 북한이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 부르며 배척하는 외국 문물이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북한의 경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4월5일 "북한이 주민을 대상으로 비사회주의적 요소에 대한 단속을 최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북한은 자본주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북한 노동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30일 "인류의 이상을 꽃피워 주는 것이 사회주의고 그것을 짓밟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날라리풍’ 맥도날드 받아들일까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5월16일 "북한은 그동안 제한적이지만 시장경제 요소를 어느 정도 도입해왔다"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외국 자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단정하긴 이르다"고 평가했다. 

 

부동산업의 북한 진출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 북한의 토지법은 땅의 사적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즉 법적으론 토지와 건물 등의 재산을 뜻하는 '부동산'이란 개념조차 생겨날 수 없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4월27일 한반도 전문가 진창이(金强一) 연변대 교수를 인용, “북한은 외국인의 부동산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며 “시장의 주택 매매도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음악, 영화 등 문화 콘텐츠의 유입은 북한이 극도로 경계하는 부분이다. 노동신문은 5월11일 "미국이 (북한에 보내려는 정보내용을) 자본주의 나라의 썩어빠진 음악과 영화 등으로 대폭 확대한다"고 비난했다. 

 


2018년 2월2일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수촌에서 북한 쇼트트랙 대표팀 최은성(왼쪽)과 정광범이 훈련을 위해 숙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주체사상 있는 한 자본주의가 못 흔들 것” 반론도

 

물론 대북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박상권 남북경제인협회 회장은 5월16일 시사저널에 “북한은 이미 미국식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재미교포로 북한을 234번이나 갔다 온 북한통이다. 그는 평양에서 평화자동차를 운영하다 2013년 북한에 기증했다. 

 

박 회장은 “북한에서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강력한 것이 최고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이라며 “주체사상이 살아있는 한 자본주의가 북한 내부를 흔들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외국기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외국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기업 자산을 빼앗아버릴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서비스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 중국 시양(西洋)그룹은 북한 광산업에 4500만 달러(485억원)를 투자했다. 이후 성과가 나오자 북한은 근로자 임금 상승 등 요구사항을 꺼내기 시작했다. 시양그룹이 이를 거부하자 북한은 2012년 사업 계약을 끊어버렸다. 결국 시양그룹은 ‘쪽박’을 차고 철수했다.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도 뒤통수를 맞았다. 이 기업은 2008년 북한 정부와 손을 잡고 통신사 ‘고려링크’를 북한에 세웠다. 고려링크는 7년간 6억5300만 달러(7050억원)를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1월 “오라스콤은 수익을 (북한에서) 갖고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돈을 외화로 환전할 때 공식 환율을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게 원인으로 추정된다.

 


투자피해 입어도 대책 없는 점 역시 걸림돌

 

이런 경우를 대비해 국제사회는 일종의 보험을 마련해 놓았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그것이다. 이는 투자자가 해외 투자에 실패했을 때 세계은행의 중재를 받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 실행 근거는 국가끼리 맺은 투자협정의 협정문에 나와 있다. 

 

하지만 북한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상대적으로 적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그 수는 총 24곳이다. 이 중에서도 불가리아,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등 상대국 10곳은 협정문을 써 놓고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즉 북한의 횡포로 투자 손실을 입어도 손 쓸 방법이 없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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