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포 수다를 장착한 ‘19禁 히어로’의 컴백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8 17:36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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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찾아온 속편, 청소년 관람불가 ‘가족영화’ 《데드풀 2》

 

2016년, 범람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들 사이에서 범상치 않은 주인공이 등장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히어로’ 데드풀이 나타난 것이다. 거침없는 욕설이 섞인 폭발적 수다, 등에 꽂은 카타나(일본검)로 무를 썰 듯 적을 썰어 해치우는 잔인한 실력, ‘제4의 벽(fourth wall·관객과 배우 혹은 캐릭터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느닷없이 관객이나 제작진에게 말을 거는 독특함으로 무장한 그에게 영화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데드풀 2》는 전 세계 극장가에서 7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린 1편에 이어 2년 만에 찾아온 속편이다. 영화는 여전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에 좀체 등장하지 않는 욕설과 상황 설정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번 편의 줄거리를 압축하자면 놀랍게도 데드풀이 한 소년을 구원하려고 나서는 ‘가족영화’다. 가능한 일이냐고? 가능하다. 그 과정이 몹시도 데드풀다운 방식이므로.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데드풀다운 방식으로 풀어낸 ‘가족영화’

 

“씨X, 울버린. 이 털보가 죽으면서 나보다 더 떴네. 내가 처음 ‘19금’ 영화 만들어놨더니! 나도 이번 편에서 죽을 거야!” 영화의 문이 열리자마자 웨이드 윌슨, 즉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수다가 쏟아진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한 울버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로건》(2017)을 겨냥한 대사다.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 중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는 《데드풀》과 《로건》밖에 없다. 기존에 두 작품은 마블 스튜디오가 아닌 20세기폭스가 영화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고, 원작의 내용상 《엑스맨》 시리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간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히어로들이 ‘어벤져스’로 묶이는 것과는 노선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디즈니가 마블 스튜디오에 이어 최근 20세기폭스까지 인수함에 따라, 지금껏 따로 갈라졌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둥지에 터를 잡게 된 ‘19금 히어로’ 데드풀의 향후 운명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다. 한데 흥미로운 건 마치 디즈니 입성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데드풀 2》가 스스로 가족영화를 표방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좋은 가족영화는 잔인한 살인으로 시작한다”는 데드풀의 수다가 말해 주듯, 일반적인 방식의 가족은 아니다.

 

연인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눈앞에서 잃고 분노한 웨이드는 폭주 중이다. 특수 능력인 힐링 팩터 덕에 어차피 죽을 수 없는 운명이지만 거창한 자살 기도를 하는 건 예사다. 하지만 바네사는 어쩐지 자꾸만 환영으로 나타나 “마음이 있어야 하는 올바른 곳”을 이야기한다. 웨이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엑스맨으로 함께 활동하자는 콜로서스(앙드레 트리코테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엑스맨 수습생’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결심한다.

 

문제는 돌연변이들의 고아원에 사는 통제 불가능의 소년 러셀(줄리안 데니슨)이다. 러셀은 미치광이 교장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러셀을 진정시키러 출동했다가 되레 그의 분노를 이해해 버린 웨이드는 ‘사람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엑스맨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설상가상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통해 현재로 온 케이블(조슈 브롤린)은 어떤 이유에선지 러셀을 없애려 든다. 웨이드는 아직 어린 러셀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팀원들을 모아 케이블에 대항할 팀 ‘엑스포스’를 결성한다.

 

1편이 데드풀과 콜로서스 그리고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란드)가 악당에 대항하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행운이 따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도미노(재지 비츠) 등 새로운 팀원들이 추가되며 데드풀과 동료들이 팀 ‘엑스포스’로 크게 묶이는 이야기다. 이 유사 가족은 러셀을 구하려는 총력전을 펼친다. 블록버스터로서의 외피는 한층 커졌고, 속살을 채우는 농담과 쉴 새 없이 터지는 잔재미는 더욱 자신감 어린 모양새다. 이 영화에선 케이블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를 연기한 조슈 브롤린을 향해 데드풀이 “꺼져, 타노스!”라고 외치거나, DC 코믹스 히어로 영화를 조롱하는 농담은 차라리 가벼운 수준. 젠더 감수성을 가져야 하므로 ‘엑스맨’이 아닌 ‘엑스포스’로 팀명을 짓는 데드풀의 모습은 기특할 정도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데드풀》의 인기 요인, 적역 캐스팅에 탁월한 번역

 

《데드풀》 시리즈가 몰고 다니는 인기의 중심에는 단연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있다.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 스탠 리가 말했듯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났듯,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명제는 여전하다. 데드풀은 극 중 인물과 그를 연기한 배우가 보여주는 실제 모습의 간극이 적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 캐릭터다. 스크린 밖에서도 재치 넘치는 말솜씨를 보이는 레이놀즈는 스스로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거의 흡사하지만 적어도 말할 때 약간의 자체 검열은 할 줄 아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하곤 한다. 《데드풀》 1편이 탄생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 않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레이놀즈. 그는 이제 《데드풀 2》에서 그의 첫 슈퍼 히어로 영화이자, 관객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망작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2011)을 스스로 조롱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2년 전 국내에서 이 낯선 히어로가 관객들과 통했던 데는 번역의 힘도 컸다. 데드풀 특유의 재치와 말맛 그리고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고스란히 옮긴 황석희 번역가의 찰진 번역 솜씨에 ‘약 빤 번역’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을 정도다. 2편 역시 개봉하자마자 ‘역시 번역이 최고’라는 관객 반응이 줄을 잇는 중이다. 최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대사 오역 논란에 한바탕 시달렸던 것에 비하면 고무적 현상이다.

 

무엇보다 ‘분수를 지킨다’는 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강점이다. 데드풀은 여전히 지구를 구하는 일 같은 거대한 임무에는 관심이 없다.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안고 있는 인류를 향한 고민 역시 남의 일이다. 다행히 이 방향성은 앞으로도 확실할 것이라는 게 레이놀즈의 추측이다. “(앞으로 속편이 더 나온다면) 《데드풀》 3편이라기보다 엑스포스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엑스포스는 어벤져스나 엑스맨과는 다르다. 착한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 엑스포스고, 이들은 윤리적 강인함이나 도덕성에서 약간 비껴난 인물들이다. 로건, 엑스포스, 울버린을 한데 묶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다.”

 

설령 기존 MCU와 엑스맨 그리고 데드풀의 세계관이 이어진다 해도, 드넓은 MCU 안에서 이 독특한 안티 히어로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일 것이다. 엄숙한 히어로의 세계에 이런 ‘또라이’ 캐릭터 하나의 존재는, 즐겁고 기발한 약이지 세계관을 망치는 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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