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기회 “9월·연내·2020년 세 번 남았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11:34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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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정에 발목 잡힌 개헌, 개헌 촛불 사그라지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결론은 같았다. 헌법 개정(改憲) 얘기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다며 정권 초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었던 과거 대통령들과 달랐다. 오히려 청와대가 개헌 정국을 주도했다. 분위기도 나쁘진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대통령 개헌안을 적극 옹호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개헌안의 세부 내용이나 처리시기에 입장차를 보였지만,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된 지 두 달, 개헌 시계는 멈췄다. 위헌 결정을 받은 국민투표법 개정 무산으로 6월 개헌은 불가능해졌다. 그 사이 정국의 블랙홀로 여겨졌던 개헌 이슈보다 더 강력한 ‘메가 블랙홀’이 등장했다. 시민들의 시선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국회는 가까스로 정상화됐지만 이른바 ‘드루킹’ 특검 등 정치 이슈에 함몰돼 있다. 개헌안은 제대로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못한 채 점점 먼지만 쌓이고 있다.

 

개헌의 의미는 단순히 헌법 문구를 몇 줄 고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행 헌법은 6월 항쟁의 성과물이자 민주주의의 완성을 담은 ‘87년 체제’로 불린다. 이후 30년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성숙했고, 시민 의식은 높아졌다. 시민들은 앞서가는 데 권력과 제도는 그대로였다. 때문에 87년 헌법 체제를 대신할 권력구조와 정치제도를 혁신하는 과정이었다. 일각에선 촛불혁명의 명령을 완수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개헌의 촛불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까.

 

개헌의 시계는 멈췄지만 세 번의 기회는 남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전히 9월 혹은 연내에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내 개헌이 어렵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인 2020년에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정치권 최대 쟁점인 특검 공방이 끝난 뒤에 개헌 논의는 가능한 일일까. 당초 6월 개헌에 반대해 왔던 한국당은 9월 개헌을 대체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헌정특위(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 시한인 6월말까지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마련하자는 제안이었다. 국회 의결 및 국민투표를 9월까지 마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엔 6·13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시간보단 내용이 중요하다는 명분이 동시에 작동했다. 6월 개헌에 반대하면서도 ‘반(反)개헌세력’이라는 공세를 피하려는 전략이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멈춰진 개헌 시계…연내도 어렵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 동력은 사라질 공산이 크다. 지방선거 직후 거대 양당 모두 당권 경쟁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의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개헌은 물론 다른 현안들도 발목 잡힐 수밖에 없다. 현재 지방선거 분위기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민주당의 낙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선거 직후 한국당의 분위기다. 한국당 지도부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 많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홍준표 대표가 물러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조기 전당대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개헌을 추진하고 싶어도 제1야당의 대화 파트너가 사라지는 셈이다.

 

민주당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방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서다. 만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도부는 후폭풍에 휩싸이게 된다.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다 하더라도 8월 전당대회는 이미 예고돼 있다. 이번에 선출될 당 대표가 2020년 총선 공천권까지 쥐게 된다는 점에서 온통 당권 경쟁에 올인하게 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대권 잠룡으로서 당권 도전이 유력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낙마하면서 혼돈 상태다.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9월 혹은 연내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있다. 개헌 국민투표가 효력을 가지려면 50% 이상의 투표율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방선거와 같은 투표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투표율 50%를 넘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와 여당의 개헌 의지는 시들해졌다. 청와대와 여당 입장에선 언제까지 개헌 이슈에만 몰두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중·장기 로드맵을 실현해야 하는 정부·여당 입장에선 개헌 논의 재점화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개헌으로 인해 또다시 정쟁(政爭)이 이어질 경우, 다른 국정과제를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는 현실적인 판단인 셈이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야3당 개헌 연대’를 구축하고 연내 개헌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월25일 야3당 원내대표와 헌정특위 간사들이 공동입장을 발표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시들해진 개헌 의지 “다시 불 밝혀야”

 

청와대 관계자는 “개헌의 6월 지방선거 동시 실시가 동력을 잃어버리면 앞으로 개헌 논의가 동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기를 다 놓치고 (개헌을 추진) 하는 것은 정치공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국정운영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의 우려가 반영된 발언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은 “사실상 올해 개헌 논의는 끝났다고 봐도 된다”며 “제대로 협상조차 벌이지 못했는데, 또다시 개헌 이슈를 꺼내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개인 생각도 그렇고 의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이 끝난 직후에 잘 드러났다. 우원식 전 원내대표는 고별 기자회견에서 “6월 국민개헌 기회를 놓친 게 천추의 한”이라고 밝혔다. 반면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개헌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한국당의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 이후에 정계개편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개헌을 논의하기는 어렵다”며 “4월 (국민투표법) 무산 이후 개헌을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원은 “4월초 의원들을 상대로 개헌안을 둘러싼 입장을 물었지만 하나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며 “민주당 내에서도 대통령 권한을 더 분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처럼, 한국당 내에서도 정부 형태를 4년 중임제 혹은 연임제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장 내부 의견 조율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 논의를 다시 꺼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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