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수원 안전불감증을 어쩌나…원전 격납건물 구멍 '숭숭'
  • 경북 경주 = 박동욱 기자 (sisa5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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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월성3호기 첫 발견…한수원 자체조사서 4대 중 1대 곳곳 구멍

원자력 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한수원은 지난 2016년 10월 원전 곳곳에서 수소폭발을 막기 위한 핵심 안전설비가 마구잡이로 설치된 정황을 인지하고도 1년이 지난 2017년 11월에야 뒷북 감사를 실시, 대부분의 원전에서 부실 공사 흔적을 파악했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부실공사를 방조하거나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임직원이 징계시효 만료로 그 누구도 문책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수원 자체 감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으로 수소폭발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한 핵심 설비가 원전 격납건물 4곳 가운데 1개 이상에서 졸속으로 설치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0개월 전 원전 공사에 참여했던 근로자가 내부자고발에 나선 이후 국회의원까지 나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한수원은 사후 조치에 대한 결과 공개를 미룬 채 시간을 끌다가 자체 감사로 슬그머니 문제를 봉합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12일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합동 UAEㆍ베트남 프로젝트 전략회의'에서 백운규 장관(오른쪽)과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기념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日 원전사고 이후 설치된 '수소폭발 예방' PAR 졸속 시공

 

지난 2016년 10월19일 더불어민주당 박재호(산업통상자원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당국의 안전 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며 "지난 2011년부터 국내 모든 원전에 '피동형 수소재결합기'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졸속·부실 공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피동형 수소재결합기(PAR·Passive Autocatalytic Recombiner)는 원전 사고가 수소폭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핵심 안전설비다. 백금의 촉매작용을 이용해 격납건물 내부의 수소농도를 저감시키는 장치로,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중대 사고 발생 때 별도의 전원 공급이나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수소를 제거한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격납용기 내부의 수소가 제거되지 않아 폭발했다. 한수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으로,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30억원을 들여 국내 모든 가동원전 24기에 에어컨처럼 생긴 PAR을 총 604개 설치했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설비를 원전 격납건물에 장착한 월성3호기에서 최후의 방호 외벽에 지름 1.5㎝나 되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이를 처음 한 언론사에 제보한 관련 공사 근로자는 "한빛·한울·고리 등 PAR이 설치된 원전 내부에 크고 작은 홀이 무수히 많다"고 주장했다. 

 

PAR 설치 작업자들이 앵커볼트(구조물을 기초건물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제대로 박히지 않자 되메움 없이 다른 곳에 구멍을 뚫고 철수했다는 게 현장 근로자의 제보였다. 

 

 

한수원, 징계 시효 지났다는 이유로 임직원 징계 일체 내리지 않아 

 

박 의원의 폭로 이튿날인 2016년 10월20일 민주당 원자력안전특위는 제보자와 함께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을 방문, 현장을 점검한 뒤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당시 한수원 김범년 부사장은 "원전 내부 공사에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안전 관리에 사활을 걸겠다"며 조속한 안전 대책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같은 폭로가 있은 지 3개월여 지난 2017년 2월 감사관실을 통해 일부 원전에 대한 '천공홀'(穿孔hole)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발표되지 않아 아리송한 실정이다. 이후 한수원이 산자부가 실시한 원전을 제외한 원전 8호기에 대한 '천공홀' 실태 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1월14일과 올해 3월5일이다. 원전 여건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보름씩 진행됐다.

 

한수원은 원전 8개 호기에 설치돼 있는 PAR 74대 가운데 2개 호기를 제외한 6개 호기에서 모두 89개(PAR 74대)의 구멍을 발견했다. 구멍은 지름 1.5㎝ 안팎으로,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한수원은 이같은 감사결과에 따라 시공업자에 대해 하자보수 책임과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하지만 천공홀이 발견된 6개 호기 가운데 3곳은 하자담보 책임기간(4년)이 만료된 실정이다. 

 

더욱이 한수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 담당자는 물론 본사 본부장 등 임직원에 대한 징계를 일체 내리지 않았다. 설치기간 이후 징계 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다.  

 

한수원 관계자는 "공사 관계자들은 계획예방정비기간 등으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변명했다"며 "공사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감독직원과 직속 상급 임직원 5명이 모두 퇴직한 상태여서 징계하지 못하고, 인사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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