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⑥] 북·미 정상회담 또 다른 승자,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8 09:29
  • 호수 149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동북아 정국, 中 청사진대로 흘러간다” 평가 나와

 

“공동합의문에 미국 여론이 강력히 바랐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언급이 없어 일부 한·미 인사들은 북한의 최종 핵 폐기를 여전히 의심한다.”

 

6월12일 오후 4시37분(현지 시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중국 언론으론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논평을 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공동합의문에 대한 한·미 양국의 우려를 짚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북·미의 합의를 100% 성공적으로 실천되도록 보증하라고 요구하는 건 잘못됐다”며 “향후 계속 노력해 합의를 철저히 이행토록 하는 게 옳은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다. 강경한 국수주의적 논조와 ‘중국 제일주의’의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친북(親北)·반미(反美) 여론을 주도한다. 이런 환구시보가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몇 시간 뒤 나온 중국 외교부의 성명도 마찬가지였다. 성명은 “북·미 정상이 내린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회담 성과에 환영과 지지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한반도 정세에 나타난 중대하고 적극적인 변화, 특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중국의 기대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쌍궤병행·쌍중단 해법을 제시했던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환영 입장을 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5월8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중국이 인내하고 기다린 이유

 

이 같은 중국의 반응은 단순한 ‘립서비스’일까, 아니면 진정한 속내일까. 북·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승자는 중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 전개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해법으로 내놓은 쌍궤병행(雙軌竝行)과 쌍중단(雙中斷)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쌍궤병행은 한반도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동시 진행을, 쌍중단은 쌍궤병행을 위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가리킨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벌이자 다음 달 중국은 두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이행토록 하되 동시에 북·미가 직접 협상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과거 박근혜 정부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에 대해 “한·미 연합훈련은 협의 대상이 아니다”며 반대했다. 북한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제안”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쌍중단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올해 2월엔 북한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했다.

 

북·미 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지금의 정국은 그동안 한국 언론에서 제기해 온 ‘차이나 패싱’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잘 드러났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현재 정세가 중국이 제기한 쌍중단 제의대로 이뤄졌음이 입증됐다”면서 “중국이 한반도 정세를 현재로 이끌어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자찬했다.

 

일부 중화권 언론의 평가도 같았다. 6월13일 홍콩의 최대 일간지 ‘명보(明報)’는 톱뉴스를 통해 “뜻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연합훈련을 ‘도발’이라 지칭하고 최종적으론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해 북한과 중국에 큰 선물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사설에서도 “지금 동북아 정국은 중국의 청사진대로 흘러간다”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됨으로써 중국이 주장해 온 쌍중단과 쌍궤병행이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포스트 북·미 정상회담에 어떻게 대처할까. 앞으로 북·미 간 이뤄질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협상에선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언론의 예상과 달리, 중국은 종전선언을 위한 협상이 남·북·미 3자간에 이뤄지는 걸 묵인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국인의 협상 전략인 ‘명분’과 ‘실리’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중국 배후론’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로 만난 다음 태도가 좀 변했다”며 “시 주석은 세계적 수준의 포커 선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적극 반박하기보다 북·미 정상회담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인내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겉으론 명분을 지키는 중국인의 협상술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보장을 위한 로드맵 및 평화협정 협상엔 적극적으로 개입하리라 전망된다. 지난 5월 다롄(大連)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중은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脣齒)관계”라고 확언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반도, 정확히 북한의 존재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에 아주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6월12일자 중국 외교부 공식 성명

 

 

中, 대북제재 완화 착수할까

 

중국이 사드(THAAD) 배치나 주한미군의 존재에 민감한 이유는 오롯이 자국 안보를 위해서다. 중국인은 생존과 관계된 실리에선 절대 양보가 없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 정권 유지와 한반도 현상 유지를 위해 미국과 힘겨루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즉, 평화협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사드 철수와 주한미군 감축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6월12일 천펑쥔(陳峰君) 베이징대학 교수는 환구시보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지원군이 북한에서 철수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지만 미군은 여전히 한반도에 남아 있다”며 “북한 핵 폐기에 상응하게 미국도 주한미군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주목할 점은 향후 북·중의 경제 협력이다. 북한은 중국에 종속된 경제 현실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올해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개혁·개방을 위해선 중국의 절대적인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 형국이다. 실제 6월10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경제적 카드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CMP는 북한이 중국과 절실하게 필요한 협력 분야로 전력, 항공운수 그리고 경제특구 운영경험을 꼽았다. 이런 예상처럼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국제항공 747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오갔다. 6월11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에는 중국 국기를 단 항공기에서 내리는 김 위원장의 사진이 2장이나 게재됐다. 이는 휴대폰, 자동차 등 중국산 상품을 수입해 겉 상표는 북한 것으로 달아 판매하는 북한의 실정으로 볼 때 아주 파격적인 행태다.

 

중국도 이에 걸맞은 군불 놓기에 들어갔다. 6월12일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된 결의를 북한이 이행하거나 준수한다면 제재 조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쌍궤병행에 맞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도 완화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마땅한 역할을 하겠다”고 끊임없이 공언해 왔고 실천해 왔다. 북·중의 공조에 맞설 한·미의 끈끈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연관기사

▶ [북미관계①] ‘은둔의 제왕’ 커튼 젖힌 김정은

▶ [북미관계②] 김정은, 싱가포르 파격 행보 숨은 의미

▶ [북미관계③] 美 언론 “6·12 회담, 트럼프 패배”

▶ [북미관계④] “북한 열리면, 한국 新동북아 경제권 중심국”

▶ [북미관계⑤] 트럼프, 美 비난 여론 뚫을 수 있을까

▶ [북미관계⑦] “G7은 적처럼 대하고 북한은 띄워주다니…”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