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공매도 사태에 뿔난 투자자들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6.18 10:47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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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던 무차입 공매도 사실상 가능…“강력한 처벌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세워야”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골드만삭스 공매도 미결제 사태’가 보도된 6월4일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주일간 ‘공매도’로 검색되는 게시글이 100건을 넘어섰을 정도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을 했음에도 불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분노 기저에는 ‘불공정한 시장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매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과 겨루고 있다는 불만이 이번 사태를 통해 표출됐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제도의 전면적 개선과 함께 불공정한 공매도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6월4일 골드만삭스의 공매도 미결제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매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AP연합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매도 폐지 청원 ‘빗발’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런던 소재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 5월30일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골드만삭스)에 주식 공매도 주문을 위탁했다. 하지만 전체 공매도 주문 중 20개 종목, 138만7968주(약 60억원어치)가 결제일인 6월1일 결제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골드만삭스가 사실상 불법으로 규정된 ‘무차입 공매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상적인 차입 공매도라면 골드만삭스와 같은 미결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리 빌려 놓은 주식을 결제일에 청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결제일이 돼서도 주식을 갚지 못했다.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공매도한 셈이다. 골드만삭스 측은 주문 착오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매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한다는 뜻으로, 증권 가치가 떨어질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가격 발견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부정적인 정보가 가격에 빠르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해 ‘주가 버블’ 형성을 방지하는 등의 이점이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다른 투자자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빌린 주식 없이 주식을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결제 불이행 우려로 금지돼 있다. 금융 당국도 지난 4월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태가 발생하자 “무차입 공매도는 시스템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당시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배당금 지급을 위해 ‘1000’원을 입력해야 할 것을 ‘1000’주로 잘못 처리해 유령 주식이 발생했고, 이 주식이 실제 증시에서 매도되면서 공매도 논란까지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던 무차입 공매도가 이번 골드만삭스 사태로 사실상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 매매 시스템에 정통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상 운용사가 공매도 주문을 증권사에 내게 되면 증권사는 이를 내다 팔면서 운용사가 실제 그 주식을 차입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없다. 주식을 차입했는지 구두로 확인하고 믿을 뿐”이라며 “특히 운용사가 A증권사에서 차입하고 공매도 주문을 B증권사에 한다면 실제적으로 주식을 차입했는지는 실시간으로 확인이 더 어렵다. 이번 골드만삭스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이은 공매도 논란이 발생하자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골드만삭스의 공매도 미결제가 보도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를 규탄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6월4일 이후 일주일 동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매도로 검색되는 글이 100건 넘게 올라왔다. ‘불공정한 공매도 제도를 폐지 또는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다수였다.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태 때도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폐지를 주장했고, 한 공매도 폐지 청원글에는 동의자가 20만 명을 넘기도 했다.
 

지난 4월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태 때도 공매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연합뉴스


 

 

불공정 거래에 대한 투자자 불만 가중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김학주 한동대 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학부 교수는 “일반 투자자들은 공매도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주식을 사서 보유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관만 주가 하락에 투자할 수 있는 공매도라는 무기를 갖고 있으니 일반 투자자로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선 ‘공매도 제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개인과 기관이 공평하게 공매도 제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기관투자가보다 신용도와 자금동원 능력에서 뒤처져 증권 차입이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 역시 개인의 공매도를 위한 대여 가능 종목이나 취급 증권사 등이 부족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다.

 

기관이 공매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누적된 점도 분노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공매도로 논란이 됐던 한미약품 사태 등 그동안 공매도가 불공정 행위에 악용되거나, 악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들이 쌓이면서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진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공매도는 순기능보다는 악용된 역기능이 부각되면서 공매도 제도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투자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매도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면적으로 시스템을 고쳐 원천적으로 불법적인 공매도를 차단하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금융 당국이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공매도를 강력하게 처벌해 공매도를 통한 시장 조작 행위 유인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증권 관련 범죄 피해에 비해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현실적으로 공매도 자체를 폐지 또는 규제하기보다는 불법 공매도를 사후적으로 엄하게 벌하는 것이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불법 공매도를 예방하는 데 훨씬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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