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에 설레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1 17:50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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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평양 중심부 부동산 시장 들썩…시민들 외식도 잦아져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이튿날인 5월27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에 강한 거부의사를 보이는 글을 실었다.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이 대북 경제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CNN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을 비난하며 “우리가 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티끌만 한 기대도 걸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북한에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크게 늘었다. 올 4월 평양 고려호텔에서 본 한 평양 시민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北·美, 핵 폐기와 경제지원 맞바꾼다

 

그러나 북·미 간에는 이미 북한 핵 폐기와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대북 협의차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는 걸 허용하겠다”(5월13일 폭스뉴스 인터뷰)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은둔 국가가 21세기로 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국 기업은 수천만 달러를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에 줄 선물 보따리는 품목과 물량이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단순한 대북지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경제적 보상이 거론된다. 특히 수교상황까지 내다볼 수 있는 국면이 될 경우 평양 대동강변의 트럼프 타워와 평양 시내 맥도날드 매장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평양의 엘리트·부유층과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기대감을 부풀리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한 교포인사는 “지난해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초래된 제재 국면에서 한껏 움츠렸던 북한의 신흥자본가인 돈주와 특권층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귀띔했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미국과 관계개선이 이뤄지고 개혁·개방을 향한 물꼬가 트일 경우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평양을 중심으로 번지는 식도락 문화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중심으로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외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기관·기업소가 들어찬 평양 중심가엔 요즘 ‘한 딸라’ 식당들이 등장해 성업 중이라고 한다. 뉴타운인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도 각종 식당이 즐비하다. 53층 주상복합 건물을 비롯한 이곳 고층빌딩에는 모두 600여 개의 식당이 들어서 성업 중이라고 한다. 1달러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이들 식당은 점심때가 되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반찬 4가지와 국이 딸려 나오는 메뉴인데 밥값을 달러로 받는다고 한다. 달러가 없을 경우엔 암달러 시세로 환산한 북한 돈 7000원으로 치를 수도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도 퍼지고 있다. 과거엔 외교관·주재원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이들이 주로 호텔이나 외화식당에서 제한적으로 커피를 맛봤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생·청년층이 커피 소비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얼마 전 김일성대 앞에 들어선 현대식 건물엔 커피숍만 무려 8개가 오픈했다”며 “평양에 불고 있는 커피 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2015년 4월 조선신보에 실린 평양호텔 내 카페 ‘전망대 커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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