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이제는 떠나야 할 때”
  • 인천=이영수 기자 (sisa3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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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너무 행복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중략)

이형기 시인의 작품 <낙화>의 일부 구절이다. 최근 이 시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은 김홍섭 인천시 중구청장이다. 그는 2000년에 민선 제3대 인천시 중구청장으로 당선된 이후 제4대와 제6·7대 구청장을 지냈다. 제4대 중구청장 시절에 자신의 월급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청장직을 상실했지만, 그가 구청장직을 수행한 기간은 모두 13년이다.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한 세월을 중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오는 6월30일 물러나는 김 구청장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눴다. 그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이면서도 언뜻언뜻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때가 됐으니 이젠 떠날 때가 됐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쉬움도 묻어났다.

 

 

김홍섭 중구청장이 임기를 마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구자익 기자

 

 

-긴 시간을 중구청장으로 일했다.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데.

“인천의 중심지로 지난 1980년대까지 번성했던 중구지역이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항만에 드나드는 대형 트럭으로 인한 극심한 교통체증과 환경공해, 열악한 주거환경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신도시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개발의 동력을 잃은 중구는 상대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했고 여건만 되면 떠나고 싶어 하는 지역이 됐다. 고향인 중구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은 심정에 민선 중구청장에 도전했고, 취임과 동시에 많은 일을 역동적으로 했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으로 발전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한 해 한 해 바뀌어가는 중구지역을 보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이제 곧 임기가 끝난다. 멀고도 험한 산 정상에 서서 그동안 흘려왔던 땀과 발자취를 되돌아보니 처음 청장으로 취임할 당시 각오했던 꿈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도 든다. 텅 빈 느낌이다. 하지만 중구 주민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너무나 행복했다.”

 

-구청장으로 일하는 동안 중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0년 취임 당시 경인 철도 1호선 시발점인 인천역을 이용하는 인구가 1회당 10여 명에 불과했다. 1974년 경인 철도가 개통할 당시에 붐비던 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몸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사람들이 모여야 도시가 활기차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신념으로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세 가지 목표 가운데 최우선을 둔 사업이 인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중구를 역사가 살아있는 채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채로 그대로 낡아 있는 지역은 개발하고 역사가 있는 건물과 거리는 보존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또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로 지역 특화를 통한 개발이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인현동 쪽방촌과 북성동 새우젓거리, 송월동 일대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개발하는 것이었다. 10여 년의 노력 끝에 중구의 가장 열악했던 이들 지역이 말끔한 환경의 공동주택과 관광지로 조성됐다. 세 번째 사업은 내항을 개발해 해양관광 관문 도시로 개발하자는 구상이었다. 내항은 공항의 하늘길에 이어 중국과의 경제문화관광 교류의 최적지 아닌가. 중앙정부와 인천시 등 관련 기관에 힘겨운 설득 끝에 1·8부두 개발을 공공개발로 추진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 세 가지 사업을 통해 중구 발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고 확신한다.”

 

-아직 주거와 생활여건 등이 신도시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역사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중구지역이지만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가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개발에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다. 일례로 내항에 초고층 건물을 조성해 한류 열풍과 더불어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 여기에다 면세점도 유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물론 각종 국제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역으로 육성해야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예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높여야 가능한 사업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초단체장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업이 아닌가. 

“이를 풀기 위해서는 지역 국회의원과 인천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동안 지역 국회의원들과 역대 시장들은 원도심 개발보다는 신도시 개발에 집중했다. 치적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신도시 개발이라는 프레임 때문일 것이다. 중앙정부와 싸워서라도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틀에서 새로운 개발 개념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 발언으로 중구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정 대변인의 말은 너무 과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중구지역은 물론 원도심에 있는 주민들은 기회가 되면 떠나려고 하지 않는가. 도시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보다 싼 비용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정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원도심 개발은 더디고 어려워지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구시대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고 추진해야 한다. 중구의 경우 공항과 항만이 있는데…이를 개발하지 못하면 중구 발전에 대한 기대는 어렵다.”

 

-구청장을 맡으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중구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마치 불모지를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하지만 항만기능이 끝난 내항을 랜드마크 도시로 개발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모양새라도 내항을 랜드마크 도시로 개발하는 데 조력하겠다.”

 

-새로 취임하는 신임 구청장과 주민들에 한마디 해 달라.

“중구는 원도심과 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로 이원화돼 있다. 원도심은 항만을 중심으로 관광특구 조성이 필요하다. 또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관광 활성화 계획을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영종지역은 공항과 해양 환경을 중심으로 마이스(MICE)산업 및 관광 레저복합도시로 조성해야 한다. 임기 동안 이러한 지속가능한 개발계획을 갖고 일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그동안 중구를 위해 묵묵히 일해 준 700여 명의 공직자와 이러한 사업추진을 믿고 지지해 준 중구 구민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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