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투자③] “경협 대박론, 맞선 보자마자 혼수 얘기하는 격”
  • 김종일·조유빈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2 16:48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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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조차 ‘경협 주도 성장론’ 경계…전문가들 “‘경협의 이중성’ 주목해야”

 

남북한 경제협력(경협) 전성시대다.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정부와 언론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한 철도 연결 그리고 북한 지하자원 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남북경협이 바로 시작될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그럴듯한 말만 나오는 상황은 아니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6월18일 ‘신(新)북방정책 로드맵’을 발표하며 향후 경협에 대한 밑그림을 선보였다. 사실상 대북제재 완화 이후 우선 추진할 경협 구상이 총망라돼 있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협 대박론’의 중심에는 ‘경협 주도 성장론’이 자리 잡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경협이 본격 시작되면 2500만 명이라는 새로운 내수시장을 얻게 된다. 동시에 인구 1억 명이 넘는 중국 동북 3성과 바로 연결되는 통로도 확보하게 된다.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 시장까지 접근할 수도 있다. 여기에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토지 사용료로 한국 기업들의 생산기지를 확보한다. 이렇게 경협을 통하면 남북한 경제는 동시에 성장 정체를 돌파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이 신성장동력’이라는 구상이다. 이런 논리적 흐름 속에 각종 경협 시나리오와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실제 ‘천우신조’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럼에도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하늘에 붕 뜬 전망보다는 손에 잡히는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부처에서 ‘화창한 봄날’을 말할 때 경협에 대해 신중함을 주문한 곳이 있다. 바로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KDI는 5월 발간한 ‘북한경제리뷰’에서 경협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된다거나, 남북 간 경제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가 지적한 사안들을 따라가면, 장밋빛 전망 속에서는 볼 수 없던 경협의 냉정한 현실이 펼쳐진다. 

 

정부의 개성공단 운영 전면중단 발표에 철수작업을 시작한 2016년 2월11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한 화물차량들이 통일대교 검문소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KDI “경협으로 韓 성장률 큰 변화 어려워”

 

KDI가 낙관론을 경계하는 이유는 크게 4가지다. 먼저 시간적 상황이다.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이석 KDI 북한경제연구팀장과의 대담에서 “정상회담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문구가 나와도 북한이 바로 다음 날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며 “경제 제재는 비핵화에 대한 합의 사항이 실행된 후에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만 최소 1~2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다음은 북한의 태도 문제다. 조 원장은 북한이 경협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동시다발적으로 해외 자본이 들어온다고 해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용 문제도 제기됐다. 조 원장은 “경협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자본이 필요한데, 이는 한국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특정 사업에 추가 비용이 투입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그에 따라 다른 사업비용을 어떻게 조정할지, 추가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도 이뤄져야 한다. 오히려 경협이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서로 다른 제도와 수준의 경제 단위들이 관계를 맺어 나가면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고, 번영의 성과는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남북도 이런 경향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종합적으로 KDI는 경협이 진행된다고 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조 원장은 “낙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北이 南과 모든 경협을 한다는 생각은 순진”

 

KDI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민주당 정책 파트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경협에 대해 담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라면서도 KDI가 제기한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북한 입장에서 경협 문제를 바라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경협 대박론’이 아직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경협의 ‘이중적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제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김정은 체제가 분명한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하지만, 경제 발전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의식 개선 등으로 인한 민주화 가능성은 북한 입장에서는 악몽이라는 지적이다. 

 

이 민주당 관계자는 “베를린 장벽은 어느 날 갑자기 허물어진 게 아니라 동·서독 간 왕래 허용이 결정적 변수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며 “이런 흐름에서 생각해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의 자본과 노동력이 대거 유입돼 북을 휘젓고 다니는 상황이 제일 아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말하는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이 한국이 상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일 수도 있다”며 “북이 당연히 남과 손잡고 경협을 이뤄낼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면 순진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임 교수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북·미 관계 정상화 논의와 더불어 북·중 관계 복원, 북·일 관계 정상화 등이 연쇄적으로 추진될 경우 북한 투자 진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협력이 벌어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협으로 열리는 내수시장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6년 기준 146만원”이라며 “북한에 무엇을 팔 수 있는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한동안 구매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북한의 교통 및 물류 인프라와 전력 사정은 생각보다 열악한 상황”이라며 “중국이나 베트남의 과거 개방을 돌이켜보면 내수시장이 아니라 생산기지로서 제대로 된 공장을 건설해 운영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지금 경협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너무 이르다. 마치 맞선 보자마자 혼수 얘기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특별연구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엄연한 현실”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마치고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원활한 경협과 투자가 이뤄지기까지는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남북의 의지로 완벽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만큼 대규모 경협의 섣부른 출발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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