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폭행·폭언 안 당해본 의사는 없을 것”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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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중환자실 폭행은 다른 환자 생명 위협하는 행위···의사단체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최근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한 환자에게 경찰은 7월5일 오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의사는 뇌진탕 등으로 전치 3주의 부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은 "병원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폭행은 늘 그리고 자주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나도 환자로부터 폭행당한 사실이 있는데, 환자에게 폭행·폭언을 당하지 않은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16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사 중 96.5%가 환자에게 폭력 및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 환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정신적 후유증을 겪은 의사도 91.4%로 나타났다. 병원 응급실은 그 특성상 의사와 환자의 갈등이 잦은 곳이다.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는 조급한 마음에 신속한 치료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응급실은 은행처럼 순서대로 진료하지 않는다. 위급한 상태와 중한 정도에 따라 진료 순서가 정해지므로 비교적 가벼운 질환 환자는 진료 순서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대기 시간이 길수록 환자는 자신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예민해진다. 

 

사실 응급실 당직 의사가 치료하지 못하고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전문의가 신속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고, 일부 의사는 성의 없이 환자를 대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환자와 의사 간에 언성이 높아진다. 그렇더라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병원 내부에서의 폭력은 의사 개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환자의 진료권까지 빼앗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17년 사이에 환자가 휘두른 칼에 의사가 복부를 찔려 중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고, 진료 중에 흉기에 수차례 찔려 응급 수술을 받은 치과의사도 있었다. 광주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조직폭력배 2명이 1시간 동안 의료기기를 부수고 의료진을 위협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기자

 

의료진에 대한 폭행이 도를 넘자 국회는 2016년 기존 '의료인 폭행방지법'을 강화했다. 이 법에 따라 의료진을 폭행하거나 협박해 응급의료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7월2일 성명을 내고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균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법을 강화했어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폭행하고도 100~300만원 벌금형을 받는 정도다. 대전의 한 비뇨기과 의사를 살해한 환자는 3년 징역형으로 끝났다"며 "의료진 폭행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없애고 실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 법에서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병원, 특히 응급실·중환자실 등은 다른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국은 의료인 폭행에 강한 처벌 규정을 적용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은 의료진에 대한 폭행·폭언을 일반 범죄보다 강력하게 다룬다. 미국 앨라배마주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최고 7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는 중대범죄인 2급 폭행죄로 분류한다. 워싱턴·애리조나·콜로라도주에서도 의료인 폭행을 특정범죄로 가중 처벌한다. 미국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1980~90년 근무 중 살해당한 의사와 간호사만 44명이다. 2011년 미국의 한 의료 전문지가 272명의 응급의료진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년간 근무지에서 적어도 1차례 이상 폭력행위를 경험한 사람은 78%였다. 이국종 센터장은 "미국 등에서는 응급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전신마취를 해서라도 치료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에는 당장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사실상 진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영국의 한 병원에서는 의사가 3차례 경고한 후에도 환자가 폭행이나 폭언을 멈추지 않으면 무장 경비원이나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이처럼 국내 병원에도 경비 요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노환규 전 회장은 "병원에서 환자가 난동을 부려도 의료진은 대응하지 못하는 게 우리 의료계의 현실이다. 도를 넘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폭행을 예방하기 위해 각 병원에 경찰에 준하는 경비원이 상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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