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선 확보해야”
  • 백근욱 영국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선임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6 10:04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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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北→南’ 또는 ‘中→南’ 가스관 프로젝트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이익우선주의, 러시아의 동방정책 강화, 한국의 북방정책이 맞물려 있다. 이 지점에서 동북아 지역의 가스 협력 구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돌발변수가 생겼다. 석탄·원자력에서 신재생·가스 중심으로 획기적인 에너지 전환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와 한국가스공사가 고민해 온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PNG)의 한반도 공급문제를 다시 짚어봐야 할 때다.

 

요즘 화두는 신재생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화석연료 시대의 종료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2015년 독일에서 개최된 G7정상회담에서 화석연료를 21세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철수(phase out)하기로 했다. 실제 모든 다국적 메이저 회사들이 가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사업을 향후 30~40년간 핵심 분야로 지목했다. 여기서 핵심은 가스에 대한 올인(All-in)이 이윤 극대화 계획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가스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은 13차 가스 수급계획에서 12차 계획보다 상향 조정하는 방향을 잡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석탄과 원자력을 전력공급의 축으로 해서 전력공급가격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석탄과 원자력에서 신재생과 가스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신재생의 극대화와 어중간한 가스 비중으로 13차 가스 수급계획을 매듭지었다. 문제는 한국의 LNG 수요와 공급은 국제 가스공급가격에 절대적으로 좌지우지돼 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돌파구 없인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2013년 1월 러시아 사할린에서 출발하는 LNG 운반선 ⓒ연합뉴스



文 대통령, ‘러-북-남’ 가스관 프로젝트 언급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LNG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2017년 중국이 처음으로 한국보다 많은 물량을 수입, 세계 2위 수입국이 됐다. 2030년엔 중국의 수입물량이 연간 110메가톤(mt)에 달해 세계 최대 수입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LNG 수입량이 급증할 것이므로 한국은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된다. 따라서 한국으로선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LNG 도입가격 협상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이 고려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선은 러시아-북한-남한 가스관 프로젝트가 있다. 중국 산둥성(山東省)과 한국 경기도-충청도를 연결하는 황해 가스관 프로젝트도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한·북한·미국·러시아·중국, 그리고 일본의 이해관계가 ‘사할린1 가스 프로젝트’만큼 잘 연결된 프로젝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엑슨모빌이 오퍼레이터이고, 일본의 정부-민간 컨소시엄(SODECO), 러시아의 국영석유사(Rosneft), 인도 국영석유사(ONGC)가 포진돼 있다. 현재 연간 8bcm 물량을 사할린2 LNG 증산(연간 5mt) 공급원으로 하거나 2011년 건설 완료된 1822 km SKV (Sakhalin-Khabarovsk-Vladivostok) 가스관(연간 6bcm)을 통해 중국으로의 직접수출 방안을 계속 협상하고 있다. 향후 북한의 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일환으로 사할린1 가스의 북한 및 남한 공급을 본격적으로 고려하는 상황이 되면, 문재인 정부의 북방정책이 지향하는 ‘나인 브릿지(NINE BRIDGE)’ 계획의 핵심 분야인 가스 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위 평화가스관 내지 러-북-남 가스관 프로젝트가 지금껏 실행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한 이해 없인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2003년 초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과 국가보좌관에 임명됐던 라종일 영국대사가 검토한 사할린1 가스의 한반도 공급안은 사실 미국 국무부에서 비공개로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 라 대사가 청와대와 제대로 된 조율 없이 미국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로 인해 모멘텀을 상실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2003년과 2008~11년 계획에 대해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한국 미디어들의 이해가 거의 없었다는 데 있다. 2003년 사할린1 가스의 한반도 공급의 경우, 공급원의 위치는 러시아 사할린섬 북단이지만 공급원의 주체가 미국 엑슨모빌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함부로 가스관 사고나 중단을 시도할 수 없다는 강점이 있었다. 그러나 2008~11년 러시아의 한반도 가스 공급안은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 공급의 축이 되는 프로젝트이므로, 유사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취약점이 있다. 그저 러시아의 중재능력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약점은 향후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7년 9월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PNG 공급은 北 비핵화 문제가 좌우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 동방포럼에서 러-북-남 가스관 프로젝트를 언급했을 당시, 미국과 북한은 서로 위협적인 말 폭탄을 투척하는 중이었기에 전혀 현실성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로 미국 회사들에 여러 가시적인 혜택들이 돌아갈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만약 사할린1의 연간 8bcm(연간 5mt LNG terms) 공급이 확정된다면, 러시아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사할린1 가스 수출을 위해 미국 정부가 대러시아 제재에 대한 예외규정을 만드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미국-러시아 간의 관계개선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선 사할린 PNG 수출 사업을 시발점으로 동 프로젝트를 파워 오브 시베리아(Power of Siberia·POS) 1 프로젝트와 연결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이 기대하는 러시아의 북극 LNG 개발사업 참여와 LNG 도입사업 진행이 가능하게 돼 실질적인 수혜국이 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이 가장 큰 피해국이 될 것이다. 사할린1의  8bcm이 사할린2 LNG 증대 물량이 아닌 LNG 수출 물량으로 할애되는 건 그들에게 악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백악관이 주도하는 사할린1 가스의 한반도 공급은 막기 힘들 것이다. 향후 부산과 대마도 간에 해저 가스관이 건설되면, 궁극적으로 러시아-한반도-규슈가 연결되는 다국적 가스 파이프라인망 구축이 실현될 수 있다.  

 

북한의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진 에너지 공급안보 측면에서 러시아 POS1이 중국 동북3성을 통해 2019년 12월부터 발해만 가스시장으로 공급할 동시베리아 가스를, 산둥반도를 통해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다. 황해가스관이 건설되면 이는 발해만 가스시장을 염두에 둔 환형가스배관망 구축을 촉진하게 되고 동시에 러시아에서 한반도로 내려오는 파이프라인을 연결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가스 공급중단에 대한 대안 마련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한반도 PNG 공급 실현 가능성은 결국 향후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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