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성장펀드’, 중소기업 성장의 마중물
  • 박세라 산은 전임컨설턴트 (serapark@kdb.co.kr)
  • 승인 2018.07.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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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행의 작은 컨설팅 이야기] 6회 - 반도체성장펀드, 반도체산업 발전에도 기여


지난 2016년 10월27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계 인사 450여 명이 모인 제9회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반도체펀드의 첫 걸음이 된 공식행사가 진행되었다. 펀드 투자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펀드 사무국인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운용사로 선정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주), 그리고 자문기관인 산업은행이 함께 MOU를 체결하였다. 바로 산업은행 컨설팅실에서 2016년 2월부터 수행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컨설팅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컨설팅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1차 컨설팅(2016년 3∼6월)에서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회복방안의 일환으로 반도체펀드의 조성 및 운영방안을 제시하였고, 2차 컨설팅(2016년 8∼12월)에서는 1차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펀드 지배구조, 출자자·운용사 요건, 타깃기업군 등을 구체화하여 실제 펀드를 조성할 준비태세를 갖췄다.

 

(사진 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사실 당시 조성한 펀드가 최초의 반도체펀드는 아니었다. 반도체 1차 펀드는 이미 2010년 조성되어 투자·회수 중이었다. 이 펀드는 삼성전자가 300억 원, 하이닉스가 150억 원을 출자하여 총 1350억 원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기존 펀드에 특별약정을 통해 반도체부문 투자를 의무화하는 조건으로 운용되었다. 반도체 1차 펀드는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첫 걸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운용주체인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도 평가하듯 절반의 성공에 그친 측면이 있다. 펀드구조상 투자목표, 타깃기업군, 관리책임 등에서 불분명한 측면이 있어 정책목적 달성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펀드를 주도할 앵커투자자가 불분명하여 중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도 조금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우리는 2차 반도체펀드를 모태펀드(Fund of Funds) 형태로 운영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미 국내에는 간접투자 시장을 정착시킨 성공적인 모태펀드로서 KIF(Korea IT Fund) 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 등이 운영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벤치마킹 포인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성장사다리펀드 운영체계를 반도체펀드에 접목하기 위해 이 펀드의 운용기관인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주)과 많은 교류를 하였는데, 결국 2차 반도체펀드의 운용사로 한국성장금융이 선정됨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펀드 출범의 닻을 올리게 되었다.

 

 

모래밭 위의 아슬아슬한 반도체 호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몇 년 동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있어 초호황기를 맞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시장 1위는 미국의 인텔이 왕좌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1월 미국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는 삼성전자가 인텔을 따돌리고 1위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이제 삼성전자는 더 이상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업체가 아니라 당당히 ‘종합반도체부문 세계 1위’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세계 반도체시장 3위 자리를 차지하며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반도체 호황기가 언제까지 갈지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가트너는 삼성전자의 왕좌가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이 메모리 생산량을 늘려나갈 경우 2018년에는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고, 2019년 중국이 낸드플래시와 D램 시장에 진입해 공급량을 늘리면 우리 기업들의 매출이 지금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반도체 굴기(倔起)’라는 명목 하에 반도체업체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규모 물량공세로 인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곧 중국에 따라잡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중소 반도체업체의 경쟁력은 미약한 상황으로, 대만과 같이 팹리스(Fabless; 칩의 설계와 개발, 제품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의한 시스템 반도체산업 육성도 먼 나라 얘기였다.

 

우리는 반도체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팹리스, 반도체 장비업체, 반도체 대기업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폭넓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반도체산업 종사자들의 미래 전망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D램은 잘나가고 있었고 실적도 좋았지만, 2~3년이면 이 호황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국내 경쟁력이 낮은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 팹리스 대표는 이미 정부에서는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해 엄청난 지원을 해왔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스템 반도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인력과 함께 파운드리(Foundry; 주문방식에 의해 칩 위탁생산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의 동반성장이 필요한데, 정부는 돈만 퍼주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산업 생태계 조성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산업 관계자들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사양화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활용하여 파운드리를 육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다. 사양화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사들여 대만의 TSMC 같은 퓨어 파운드리(Pure Foundry; 자체 설계 없이 위탁생산만 진행하는 업체)를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우리나라 파운드리로는 삼성전자·DB하이텍 등이 있으나,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반도체제조) 파운드리로서 자체 설계제품의 생산과 위탁생산을 병행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중소 팹리스는 물량이 적을 경우 IDM 파운드리에서 거절당하기 십상이었고, 중국이나 대만의 파운드리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 세계 팹리스 매출은 연평균 13%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성장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산업 환경이 취약하여 제자리걸음 상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도체성장펀드’의 목표는 중소기업 지원

 

이러한 냉정한 문제인식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지원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랐다. 첫째, WTO 제소 우려로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 파운드리를 육성하기 위한 정부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설령 정부 지원이 가능하더라도 파운드리 설립을 위해서는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실현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다행히 당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독립 신설하여 시스템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필자는 국내 팹리스에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컨설팅의 초점을 반도체산업 내 중소업체 지원을 위한 펀드 역할 강화에 맞추었다. 간접투자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으며, 특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드디어 ‘반도체성장펀드’가 출범하게 되었다. 펀드 구조는 성장사다리펀드와 유사하다. 삼성전자가 500억원, SK하이닉스가 250억원을 모태펀드에 출자하였고, 한국성장금융이 집합투자업자로서 하위펀드를 선정하고 관리하는 구조이다. 전체 펀드 규모는 한국성장금융 매칭 250억원을 포함해 총 2000억원을 목표로 하였다. ‘반도체성장펀드’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총 3개의 운용사를 선정하였으며, 현재 3차 출자사업으로 2개 운용사를 추가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출처: 한국성장금융)

 

아직 초기단계인 ‘반도체성장펀드’의 성공여부를 지금 시점에서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겠지만, 1차 펀드와 비교해서 2차 펀드에 대한 인식과 영향력이 커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된다. 다만 자펀드 운용사들은 여전히 투자제약이 적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풀도 작아 펀드 운용에 애로가 많다는 아쉬움도 내비치고 있다. ‘반도체성장펀드’는 현재진행형으로, 향후 어떻게 평가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펀드가 마중물이 되어 국내 반도체산업 발전에, 그리고 특히 중소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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