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들이 말하는 ‘통일된 독일은…’
  • 독일 베를린·라이프치히·드레스덴·트리어 = 송창섭·구민주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 14:26
  • 호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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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발전 위해 세금 많이 내야, 젊은 세대는 다르게 생각할 것”

 

독일의 통일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출국한 날은 7월2일.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이 독일을 2대0으로 격파한 직후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사람들로부터 “베를린 가서 한국말로 떠들지 마라. 자칫 독일 훌리건(축구장에서 난동 부리는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장난기 섞인 우려를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되레 “한국은 너무 잘 싸웠다. 독일이 자만한 나머지 제대로 못 뛴 게 문제지, 절대 한국 탓이 아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같은 독일 국민의 자신감은 통일이 가져다준 선물인 듯하다. 통일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베를린은 도시 곳곳이 공사 중이다. 옛 동독 지역의 대표적 도시인 드레스덴, 라이프치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슈뢰더만 해도 첫 연방의회 총리 임기를 끝낸 2002년 이후 제2차 연대협약을 통해 향후 15년간 옛 동독 지역 재건을 위해 1565억 유로(약 205조8000억원)를 투입했다. 동독 재건 사업은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 시사저널 구민주·연합뉴스


 

카로(17) 

7월3일 베를린 월 메모리얼은 각지에서 견학 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했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아헨(Aachen) 지역 카를루스 김나지움에 다니는 17세 카로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학교에서 통일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주 견학을 온다는 카로는 통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통일을 기억하는 세대는 아니지만 통일이 되면서 과거 꽉 막혔던 길들이 다 뚫려 자유 왕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 대해 독일 10대 소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카로는 “분단국가라는 것밖엔 큰 지식이나 관심이 없다”며 “다만 북한은 과거 우리 동독처럼 억압되고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뮐러(가명·50대 후반) 

옛 서독 지역에서 동독 출신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통일 이전을 기억하는 세대들은 대부분 통일 이후에도 기존에 거주하던 지역 인근에 터를 잡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통일 전 30년 가까이 동독에 살았던 뮐러는 지금 독일의 가장 서쪽 도시 트리어에 머물며 호텔 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뮐러의 기억 속 옛 동독은 “꽤나 살 만했고 이웃 간 정이 유독 두터운 곳”이었다. 그는 “동독이 가난하고 못살았는데 마치 구조되듯 통일이 됐다는 인식이 많다”며  “당시 동독 정치권에 어떤 문제와 비리가 있었는지 주민들 대부분 까맣게 모른 채 살다가, 통일 후 하나둘 드러나면서 ‘이게 내가 살았던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의 실망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토마스 슈미트(45) 

“장벽이 무너질 때, 모두가 TV 앞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서독 지역에서만 줄곧 살아온 토마스 슈미트 트리어 시청 문화부장은 장벽이 무너질 당시 15세로, 한창 학교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정치과목 내용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동서 갈등, 바르샤바 조약 등 시험 단골 주제들이 한순간에 쓸데없는 구문(舊聞)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얼마 전이던 1989년 여름, 베를린으로 견학을 가 견고한 장벽을 손으로 쓸어보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 곧 통일이 될 것이란 누군가의 말에 함께 비웃었던 일도 있었다. 동·서독 간 여전한 경제적 간극에 대해 그는 “옛 동독을 항상 옛 서독과 비교하지만 사실 폴란드·체코 등 동구권 국가의 발전이 어떻게 이뤄졌나를 비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쉬운 점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동독 산업의 민간화를 그리 서둘러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모범으로 삼을 통일의 ‘전례’가 전혀 없었기에 나온 실수다”며 “한반도 통일은 ‘전례’ 독일을 통해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카트린 헐(56) 

카트린은 지금도 베를린에 거주하며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카트린에게 통일은 ‘기쁨’ 그 자체였다. 그는 “하나의 ‘사건’이었던 통일이 점점 당연한 일상이 돼 온 지난 30년의 모든 순간들이 대단한 역사”라고 강조했다. 카트린은 “생활 속에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면서도 “동독의 발전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점에 있어, 나 같은 기성세대들은 기꺼이 감당해야 할 일로 여기지만, 젊은 세대는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동서독보다 훨씬 큰 남북 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분단 당시 서독은 동독 사상과 문화에 대해 적대적인 교육을 하진 않았다”며 “한국도 북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카롤리나 베르홀츠(52) 

드레스덴에서 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카롤리나 베르홀츠는 통일 전인 30년 전 시 외곽에서 살다 시내로 이사 왔다. 그는 독일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통일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성모교회(Dresden Frauenkirche)가 이처럼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공산당 고위직 몇 명을 빼곤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독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보다 생활형편이 낫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 문제가 심해지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누가 동독 주민들의 삶을 지금처럼 바꿀 수 있었겠느냐”며 통일의 중요한 가치로 풍요를 꼽았다.

 

다니엘 바겐크레흐트(73) 

다니엘 바겐크레흐트는 라이프치히 외곽인 피테펠트에서 태어났지만 동독 공산당의 억압에 못 이겨 13살 때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했다. 서독에 와서는 뉘른베르크에서 정착해 살다 나중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 회계업무를 맡아 일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2007년 무렵. 그는 통일 이후 변신하는 동독 지역의 사회상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자신을 ‘영원한 독신주의자’로 불러달라는 그는 동독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높게 평가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치원과 같은 보육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일된 지 30년 가까이 되면서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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