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의 교훈, ‘점유율’보다 ‘속도’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4:19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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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이 바꾼 새로운 축구 트렌드

 

2010 남아공월드컵은 스페인의 우승과 함께 점유율 축구의 도래를 알렸다. 1년 전인 2009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FC바르셀로나가 트레블(라리가, 챔피언스리그, 코파델레이)을 포함해 6개의 트로피를 모두 드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남긴 데 이어 또다시 기술과 패스로 무장한 점유율 축구가 성공을 거둔 것이다. 탁구에서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패스를 계속 펼치는 ‘티키타카’는 세계 축구의 롤모델이 됐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은 점유율 축구에 한층 안정된 밸런스와 조직력을 더해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과 독일의 잇단 성공으로 점유율은 축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졌다. 한국도 브라질월드컵 실패 후 점유율을 중시하는, 독일에서 자라 스페인에서 성공한 축구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 축구 대표팀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PDP 연합


 

점유율 축구는 왜 비효율이 됐나

 

지난 10년간 세계 축구 철학의 근간이었던 점유율과 지배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고배를 마셨다. 점유율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수치와 결과를 봐도 그렇다. 평균점유율 1위였던 스페인(74.7%)은 16강에서 탈락했다. 2위 독일(72%)은 80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도 모두 16강이 마지막이었다. 

 

반면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는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에서 점유율 34.2%를 기록하고도 4골을 넣었다. 월드컵에서 점유율이란 기록이 산출되기 시작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우승팀이 기록한 최저 점유율이다.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8강 이상의 성적을 낸 팀들도 점유율은 중하위권이었다. 

 

점유율은 상대적이다. 스페인과 독일처럼 완벽한 기술을 갖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팀이 아니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수치다. 지배하는 축구를 흉내 내려고 하다가 소유를 위한 소유에 그쳤다. 현대 축구의 전술적 초점은 실점하지 않는 것에 맞춰지고 있다. 수비라인을 한층 낮추고, 최전방과의 간격을 좁힌다. 스트라이커가 전방에서부터 수비에 가담한다. 득점은 상대 실수를 개인기술로 공략하며 얻는 쪽이다. 

 

아무리 70%에 가까운 볼 점유를 하고, 1000개가 넘는 패스를 성공시켜도 상대 수비가 전열을 정비하고, 라인을 내리고 있으면 뚫기 어렵다. 오히려 패스를 돌리는 것이 시간을 소모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대회 1위부터 3위를 차지한 프랑스, 크로아티아, 벨기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바로 속도다. 상대로부터 공을 뺏어 소유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전환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음바페, 그리즈만(이상 프랑스), 페리시치(크로아티아), 아자르, 더 브라위너(이상 벨기에)처럼 개인 스피드가 탁월한 선수들이 첨병이 되는 역습과 그 속도를 이용한 팀의 전술적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공격을 만들었다. 

 

패스는 여전히 축구의 중요한 작동 원리다. 하지만 전체 점유율과 성공률이 아닌 공격 전개 시 상대를 위협할 수 있는 성격의 패스를 얼마나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경기장 전체 면적이 아니라, 경기장을 3등분으로 세분화한 면적 중 상대 골문에 가까운 3분의 1 지역인 어태킹서드(attacking-third)에서의 패스 내용이 주된 분석 장면이다. 3분의 2 지점에서는 볼 소유를 적게 가져가는 대신, 개인 돌파가 되는 빠른 선수에게 직선적인 침투 패스를 전달한 뒤 상대 진영에서 최대한 공을 소유하며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이 러시아월드컵을 기점으로 강조되는 속도의 축구다.

 

이제 세계 축구는 ‘점유율’보다 ‘속도’를 중요시하게 됐다. 2018 러시아월드컵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결승전 ⓒAP 연합


 

세트피스의 중요성, VAR의 영향력

 

러시아월드컵이 남긴 또 다른 화두는 세트피스다. 전체 169골 중 73골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다. 전체의 43%로, 역대 월드컵 중 세트피스 득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세트피스로 가장 재미를 본 팀은 28년 만에 4강에 오른 잉글랜드였다. 12골 중 9골을 세트피스로 넣었다. 우승팀 프랑스도 14골 중 5골을 세트피스로 만들었다.

 

잉글랜드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세트피스 전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프로풋볼(NFL)과 프로농구(NBA) 전술을 연구했다. 공이 정지된 상황에서 약속된 움직임과 공간 확보가 능한 타 종목의 전술과 방법론을 이식한 것이다. 잉글랜드는 미리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기존 팀의 방식과 달리 코너킥과 프리킥 상황에서 페널티박스 안의 선수들이 한데 좁게 뭉쳐 있다가 킥이 나오는 순간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 뒤 약속한 공격을 성공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의 최초 도입은 세트피스와 페널티킥 득점의 급증을 이끈 배경 중 하나다. 30개의 카메라는 경기장 전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과도한 경합, 영리한 파울을 잡아냈다. 종전 월드컵에서는 상대 선수 유니폼이나 신체 부위를 잡아 움직임을 방해하는 행위가 어느 정도 용인됐지만 VAR 시스템은 자비가 없었다.

 

이로 인해 조별리그에서만 28개의 페널티킥이 쏟아졌다. 종전에 한 대회 최다 페널티킥 기록이 18개였던 것을 감안하면 급증한 것이다. 토너먼트 들어서 각 팀들은 페널티킥 주의보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토너먼트 16경기에선 페널티킥이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의 페리시치의 핸드볼에 의한 파울 1번 밖에 없었다. 대신 VAR을 의식해 얌전해진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수비로 인해 세트피스 득점이 상승했다. 잉글랜드·프랑스·크로아티아가 이런 현상으로 이득을 본 수혜자였다. 

 

세트피스 수비를 크게 의식하다 보니 자책골도 크게 늘었다. 이번 대회의 자책골은 12골이었는데 종전 한 대회 최다 기록인 6골의 2배다.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의 만주키치는 자책골로 선제실점을 했는데, 월드컵 결승전에서 자책골이 나온 것도 최초였다.

 

반대로 퇴장을 비롯한 억울한 판정은 상당수 줄었다. 이번 대회에서 퇴장은 4명에 불과했다. 심판들은 VAR의 도움을 20차례 받았는데 이 중 14건이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았다. 현역 심판 시절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익숙한 피에를 루이즈 콜리나 FIFA 심판위원장은 “VAR로 인해 이번 대회 판정 정확도는 99.3%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8개의 페널티킥 중 7개는 VAR을 통해 결정된 사후 판정이었다. 한국의 경우 독일전에서 김영권이 터트린 선제 결승골이 처음엔 노골로 선언됐지만, VAR 확인 후 골로 인정되며 역사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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