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죽음에도…‘드루킹 특검’ 속도 낸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 08:55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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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투신 後 특검 내 ‘당혹감’ 팽배…데드라인 임박에 수사 강도는 높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투신은 ‘드루킹 특검’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노 의원을 발판 삼아 드루킹과 정치권 간 엉킨 실타래를 낱낱이 풀어내겠다던 특검이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의 죽음 이후 입장이 난처해졌다. 정치권 일각에서 특검이 수사의 방향타를 잘못 쥐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그러나 특검이 수사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전무(全無)해 보인다. 수사 데드라인이 한 달 안으로 다가오면서 특검은 수사의 고삐를 오히려 더 바싹 죄는 모양새다. 특검이 예고한 ‘8월 수사망’에는 거물급 정치인 이름이 연이어 오르내리고 있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특검에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당초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노 의원이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았다는 물증과 증언을 모두 포착한 상태였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노 의원을 비롯한 관계자 소환조사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당시 특검팀 박상융 특검보는 “(금품을) 전달한 측 관련자들의 진술과 그러한 (진술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확보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노 의원의 유죄를 확신했다. 수사 보안을 중시하는 특검이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특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허익범 특별검사가 7월23일 서울 서초구 특검 브리핑룸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 투신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방향 잃어”…진보진영, 특검 ‘집중포화’

 

그러나 노 의원이 죽음을 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노 의원을 겨냥했던 특검의 화살이 갈피를 잃은 사이, 특검을 향한 여론은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동료를 잃은 진보진영부터 분노했다. 노 의원의 소속 정당인 정의당은 물론 여권 일부 인사들까지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특검이 드루킹과 김경수 경남지사 등 여권 핵심부와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하는 등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자 노 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론몰이식’ 수사를 강행,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7월23일 정의당은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특검의 노회찬 표적수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한 줄짜리 논평을 발표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7월2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특검 수사의 본질적인 목표는 노회찬 의원이 아니었다. 별건 수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방향이 옳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특검이 수사에서 성과가 나지 않자 애꿎은 노회찬 의원 수사로 방향을 돌린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난처해졌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는 분위기가 특검 내부에 팽배하다는 전언이다. 한 특검 관계자는 “(노 의원의 죽음을 처음 접하고) 전 국민이 그랬듯,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자신이 단죄하려던 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며 “특히 영장 청구 후가 가장 논리적으로 무장돼야 할 시기인데, 이때 감정이 흔들리면 수사의 힘도 빠지기 일쑤”라고 귀띔했다.

 

특검은 과연 수사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일까.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오히려 ‘강공’을 택했다. 악재를 핑계로 ‘어설픈’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남은 수사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6월27일 출범한 특검팀은 오는 8월26일 1차 수사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추가 기한 요청을 하지 않을 경우 남은 수사기간은 30일이다. 정치권 눈치 탓에 수사 강도를 낮춰 진행하기에는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두 달간의 수사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무능한 특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공산이 크다.

 

4월10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왼쪽)과 김종대 의원 ⓒ연합뉴스


 

수사 반환점 돈 특검, ‘정의당·김경수’ 겨냥

 

당장 특검의 수사망이 향한 곳은 정의당이다. 노 의원에 대한 애도(哀悼)와 별개로, 정의당과 드루킹 간 연결고리는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게 특검 내 분위기다. 7월25일 박상융 특검보는 브리핑에서 “드루킹 트위터에 올라온 (정의당에 대한) 협박성 내용을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며 “(트위터에 언급된) 정의당 관계자들에게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검토하겠다. 이 부분은 수사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드루킹 김동원씨(49)는 2017년 5월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과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 방에 날려버리겠다. 못 믿겠으면 까불어보든지”라고 적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심상정·김종대 의원의) 소환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지만 의혹이 있다면 증거를 찾으라는 것이다. 증거를 가지고 하면 당연히 응할 문제”라며 “정의당이 힘이 없어 흔들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정의당은 약하지 않다”고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한편 특검은 수사기간이 반환점을 돈 만큼, 여론 조작 사건의 핵심 의혹 대상자인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수사 속도도 더 높인다는 계획이다. 노 의원 죽음 이후 ‘여론몰이식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득세한 만큼, 드루킹 측 진술이 아닌 물증 확보에 열중하는 모양새다.

 

특검은 드루킹 김씨가 지난 3월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댓글 조작 활동 기록을 담아 놓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확보했다고 7월25일 밝혔다. 박상융 특검보는 이날 “후반기 수사는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특검이 확보한 USB는 128기가바이트(GB) 용량 중 절반가량(60GB)이 채워진 상태로, 김 지사와 드루킹 간 보안메신저 대화 전문과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댓글 조작 내역, 김씨가 정치권 인사를 만난 일지와 대화 내용 등을 기록한 문서 파일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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