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노회찬이 아니라 노회찬의 정의당이었다”
  • 창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 10:50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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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슬픔에 빠진 노회찬 의원 지역구 경남 창원시

 

해가 질수록 더 많은 발길이 모였다. 행렬은 어둠이 깔린 후에도 한참 더 이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떠난 이틀째인 7월24일 저녁, 경남 창원시 성산구 문화광장에 마련된 야외 분향소에선 작은 추모제가 열렸다. “상여금 문제로 회사와 싸울 때 의원님은 존재만으로도 힘이었다.” “늘 맞지 않는 양복을 입으셨는데 그게 꼭 의원님 처지 같을 때가 있었다.” 광장에 선 당원과 시민들이 저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길 가던 이들도 옷매를 다듬고 영정 앞에 꽃을 얹었다. 조문을 마친 후 광장을 두른 조화 뒤에서 한참 울음을 삼키다 가는 이들도 있었다.

 

7월24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문화광장에 마련된 야외 분향소에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시사저널 구민주


 

“노회찬이 곧 정의당이었는데…”

 

조문객들의 면면은 그의 삶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퇴근길에 들른 노동자, 장사를 멈추고 온 시장 상인들이 분향소에 줄을 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원래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을 떠나 창원 성산에서 당선되면서,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병수 상남시장 상인회장은 불과 열흘 전 노 의원이 시장을 방문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미국 가기 전 들렀습니다’라고 하는데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은 게 보였다. ‘드루킹 얘기로 속 시끄러워 그러나’ 했다”고 기억했다. “좋아하시던 술이 없어 사왔다”며 막걸리 한 상자를 안고 분향소를 찾은 한국지엠 공장 노동자 부부는 “지역에 다시 선거 얘기가 나올 텐데 벌써부터 지친다. 정치가 뭔가 싶다. 큰 중심이 무너진 정의당이 길을 잃을까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근자 한 명이 돌아가며 지키는 정의당 경남도당 사무실엔 오전부터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주로 분향소 위치를 묻는 경남 지역 당원들의 문의였다. 도당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오전 열리는 회의 도중 소식을 접했다. 주민들로부터 “TV에 이상한 말이 떴는데 무슨 일이냐”는 전화를 받고서도 순간 가짜뉴스겠지 했다. 그리고 1분 후 속보가 떴다. 그들은 한동안 멍하기만 했다. 임동선 정의당 경남도당 정책국장은 “수행차인 NF쏘나타를 40만km 넘게 타고 다니셨다. 현대자동차 직원이 ‘그렇게 타시면 저희 회사 망합니다’라고 할 정도였다”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그는 “받은 ‘돈’보다 의원님의 지난 행적이 더 조명되고 있는 게 곧 그분이 어떻게 삶을 살았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시민들은 그가 지켜온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만큼, 그가 떠난 빈자리를 걱정했다. 성산에 거주하는 대학생 박재현씨(25)는 “노회찬을 알고 정의당을 알게 됐다”며 “창원에선 정의당이 노 의원의 지지기반이 아니라 노 의원이 정의당의 지지기반이었다”고 말했다. 선거마다 주로 보수를 뽑았다는 이병수 상남시장 상인회장 역시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노 의원을 지지했고 다음 총선에서도 당연히 그가 될 거라 믿었다”며 “우리 지역에선 노회찬 한 분이 정의당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민주당으로 가겠다 했으면 거기서도 쌍수 들고 환영했을 만큼 큰 정치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정의당이 자꾸 거론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성산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박영재씨(67)는 “혹 이번 일 때문에 ‘정의당도 노 의원도 다 똑같다’며 진보정치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여아무개씨(65)도 “과거 노 의원 참모도 했었지만, 서민들 삶에 변화를 주지 못한 진보정당에 회의감을 느끼는 진보 시민들이 많다”며 “이른 얘기지만, 큰 인물을 잃은 진보가 혹 보선에서 보수에 표를 빼앗기진 않을지 걱정스럽다”고도 전했다. 

 

“천붕(하늘이 무너진) 상태”라며 당의 상황을 표현한 정의당 도당 측에서도 이 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도당 인사는 “워낙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많으니, 고인의 정신을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금세 추스를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국회의원 1석 줄고 원내교섭단체 깨져 금전적으로도 당이 어려워지겠지만, 옛날에 그보다 더할 때도 잘 이겨냈다”고도 덧붙였다.

 

 

진보정당 분열의 상처 여전해

 

기자가 만난 조문객들 중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을 진보정당 단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진보정치 일번지로 불리는 창원은 유독 진보정당 간 분열과 상처가 깊이 밴 곳이기도 하다. 2012년 진보진영이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뉘어 선거를 치르고, 2014년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진보정당들 간의 분열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정의당과 민중당의 후보 단일화로 지난(至難)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노 의원 역시 2016년 총선에서 성산에 출마했을 때 민주노총 등 지역 내 일부 진보진영의 반대에 부닥쳤다.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도 “지역에서 노력해 온 진보정당 후보들이 있는데 왜 중앙에서 내려보내느냐”며 노 의원의 출마를 반대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그때 진영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더욱 사분오열됐던 것 같다”면서 “지금 다 같이 느끼고 있는 이 슬픔을 계기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떠난 이가 이루려 한 진보정당의 가치를 단합해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통합에 대해 정의당은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임동선 정의당 경남도당 정책국장은 “그쪽(민중당·노동당) 입장에선 우리를 등 따습고 배부른 정당으로 보는 것 같다”며 “모든 통합에 열려 있다는 게 당의 기본 스탠스지만, 현재 정서상으론 통합이 쉽진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의당·노동당·민중당 다 각자 자기 이름 걸고 나와 1, 2등 뽑고 다시 결선투표를 거치는 결선투표제가 실시되면, 선거 과정에서 지금처럼 진보대통합 논의는 덜 나오게 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지키고자 한 진보정치 앞엔 여전히 과제가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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