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징수 실적 낸 국세청, ‘문제는 내년부터다’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8.08.05 15:15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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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세 더딘데 유례없는 ‘세수 호황’…내년부터 돌아설 ‘세수 감소’,뚜렷한 대책 없어

 

경기회복세가 더디다. 그런데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례없는 세수 호황에 기대 대규모 조세 지출을 계획하고 있다. 10년 만에 나온 ‘마이너스 세수’ 정책이다.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1.0% 증가해 빠르게 회복할 것처럼 보였던 국내 경기는 2분기에 0.7%로 다시 내려앉았다. 1분기 성장을 주도한 민간소비는 겨우 0.3% 늘어 증가세가 둔화했다. 건설(-1.3%)·설비투자(-6.6%)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민간소비는 2016년 4분기(0.3%) 이후 1년 반 만에 다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경기회복세는 매우 더디다. 산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8년 한국경제수정전망’에서 최근 국내 경제 동향과 관련해 “경기후퇴 국면에서 경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고용이 내수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기업심리가 악화되고 있는 점은 향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의 징수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배경이 주목된다. ⓒ 연합뉴스

 


MB 이후 10년 만에 세수감소 정책

 

이런 악조건에서 아이러니하게 국세 수입이 최고치를 찍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세청이 최근 조기 공개한 ‘2018년 국세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세청 세수는 255조6000억원으로, 전년 233조3000억원보다 9.5%(22조3000억원) 증가했다. 세수 증가율은 2016년(12.1%)보다 조금 줄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상황이 더 좋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국세 수입 누계액은 14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 기간 세수진도율은 52.5%로, 전년보다 3.2%포인트 상승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10월까지 목표 세수를 모두 채운다는 것인데, 불과 4년 전 세수결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다. 이런 유례없는 세수 호황에는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의 공이 크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법인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조6000억원, 소득세는 5조7000억원, 부가가치세는 32조4000억원 각각 증가했다.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곳간을, 정부는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다. 대규모 예산집행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최고치를 찍은 올해 세수는 내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7월30일 발표한 2018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향후 5년간 세수가 2조5343억원 감소(순액법, 전년 대비)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올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약 12조6018억원(누적법)의 세수감소 효과가 발생한다. 정부는 저소득층 근로장려금(EITC)과 자녀장려금(CTC) 확대에 주력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에 정부는 334만 가구에 근로장려금 3조8000억원, 111만 가구에 자녀장려금 9000억원을 지급한다. 약 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조세지출 계획을 잡았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해 내수 활성화를 도모하는 정부의 기조는 대체로 환영받고 있지만, 문제는 세수감소를 만회할 뚜렷한 세수확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문성환 세연회계법인 회계사는 “경기회복이 기대보다 더뎌 세수가 예상대로 안 걷힐 경우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세수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하강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1분기 1.0%의 경제성장률 역시 전분기(2017년 4분기) 침체(-0.2%)에 대한 기술적인 반등으로 볼 수 있고, 경기 동행 및 선행 지수가 모두 하락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2017년 5월 정점을 찍고 1년여 동안 하락 기조며, 경기의 방향성을 예고하는 선행지수순환변동치도 작년 7월 이후 하락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향후에도 이런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 경제활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내수 불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유사시 대비한 세수확보 대책 마련해야”

 

세무 업계에서는 세수감소 정책에 따른 국세청의 역할론을 주목한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세수가 기대에 못 미쳐 국세청이 세무조사나 사후검증 등으로 무리한 세정집행에 나설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무조사와 사후검증이 기업 영리활동에 큰 부담을 준다는 비판에 따라 국세청도 자발적 세금신고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집행정책에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향후 세수 실적에 따라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일선의 한 세무사는 “국세청이 사후검증을 줄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장은 사후검증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국세청의 사후검증 남용을 금지하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되도록 하는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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