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LG와의 싸움, 해도 해도 너무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11:31
  • 호수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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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1호 민원, LG유플러스·서오텔레콤의 기나긴 특허 분쟁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긴 싸움이 있다. 이 지난한 싸움은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 앞에 수천 장의 서류와 수십억원의 손해를 남겼다. 2004년부터 LG유플러스(옛 LG텔레콤)와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는 “그동안 잃어왔던 것들을 떠올리면 하루도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며 “올해엔 반드시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유플러스와 서오텔레콤의 싸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특허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왔다. 국내 특허 분쟁 중 최장기록이기도 하다. 단초가 된 기술은 김 대표가 2001년 특허 출원을 하고 2003년 등록을 마친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다. ‘폴더폰’이 상용화되던 시절, 위급 상황 시 휴대전화 옆면에 설치한 버튼을 누르면 미리 등록한 연락처로 긴급문자가 발송되는 기술이다. 

 

김 대표는 LG가 이 기술을 탈취해 2004년 출시한 ‘알라딘폰’에 담았다고 주장한다. “2001년 특허 출원하니까 LG 쪽에서 기술 설명을 듣고 싶다고 방문 요청을 했다. 변리사와 함께 사업계획서와 특허자료 등을 들고 두 차례 방문했다. 그 후 1년간 연락이 없던 어느 날, 우리 기술이 담긴 알라딘폰 광고를 보게 됐다.”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건물 ⓒ시사저널 박정훈


 

“다른 기술이란 LG 주장은 억지”

 

그렇게 소송전은 시작됐다. 2007년 LG 측이 제기한 특허등록무효심판에서 대법원은 서오텔레콤의 관련 특허가 모두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어진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김 대표가 특허심판원에 제기한 특허 권리범위확인심판 1·2심에선 모두 LG유플러스 손을 들어줬다. 기술의 아이디어는 같지만, LG에서 사용한 기술이 김 대표가 받은 특허 권리범위 안에 속하지 않는 다른 기술이라는 해석이었다. 김 대표는 “이동통신 시스템의 기본을 아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특허심판원이 엉터리 판결을 내렸다”고 분개했다.

 

LG유플러스와 서오텔레콤이 가장 강하게 맞붙고 있는 쟁점은 기술을 구현하는 데 사용되는 통신 채널의 개수다. 김 대표는 “LG는 문자신호와 음성신호를 별개의 채널을 통해 전송하기 때문에, 한 개의 채널로 두 신호 모두 전송하는 우리(서오텔레콤) 기술과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LG가 한 개의 채널로도 가능한 일을 굳이 2개의 채널을 만들어 비효율적으로 운용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LG가 주장하는 기술은 국제표준규약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LG유플러스 측은 김 대표의 주장에 단호히 반박했다. 권명진 LG유플러스 부장은 8월8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과거 김 대표가 LG에 두 차례 기술 설명을 간 사실에 대해 “우리 회사가 아닐 것”이라며 짧게 답하며 “오랜 기간 서오텔레콤이 우리 측에 소송을 제기해 오히려 회사 이미지상 피해를 입어왔다”고 강조했다. 기술 부분에 대해선 “서오텔레콤이 가진 특허는 인정한다. 다만 유플러스가 이를 침해했느냐를 보면 둘은 전혀 다른 기술”이라며 “대검찰청, 특허심판원, 대법원에서 모두 십여 년간 일관되게 LG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뒷받침해 온 박진하 카이스트(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 운영위원은 LG유플러스가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기술을 “개악(改惡) 발명”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위급상황에 사용되는 기술인데, LG의 기술은 채널이 두 개라 오히려 전송이 더 늦다”며 “이 때문에 채널 개수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이를  서오텔레콤 기술의 특허 권리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기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금력 앞세운 대기업 앞에 공공기관 “…” 

 

서오텔레콤 김 대표에겐 싸움이 길어진 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쌓여갔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국책연구기관의 기술검토보고서, 과거 LG 방문 기록 등 낼 수 있는 걸 다 제출해도 번번이 묵살됐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연이은 패소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6월,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가 운영하는 광화문1번가 민원접수창구로 향했다. 1호 민원이 아니면 관심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접수 첫날 새벽같이 광화문으로 향했다.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순번 1번이 적인 접수증을 손에 쥐었다. 접수 후 얼마 안 돼 그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방문 요청을 받았다. 찾아가 그간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안이라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판결 다 끝나고 도와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저 미심쩍었던 지난 1·2심 선고 과정을 좀 살펴봐주길 바랐다”며 “접수 1년이 넘도록 1호 민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기술 개발에 몰두했던 김 대표는 현재 국내 특허만 175개를 갖고 있는 ‘특허 부자’다. 이들 중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그에게 오랜 분쟁 중인 해당 기술(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처리장치)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2000년 겪은 한 사건의 영향이 크다. “2000년 14살 여중생이던 조카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불에 태워져 숨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 고통으로 아이 엄마인 처제도 이내 목숨을 끊었다. 비극이었다. 그 후 이러한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겨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아픈 경험으로 만들어낸 이 기술을 지켜내는 게 비극을 겪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김 대표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이 같은 사연을 올렸다. 6700건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매주 국회를 찾아가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때때로 지적재산권 분쟁 등 관련 세미나와 토론회에 연사로 참석하기도 한다. 오랜 설득의 과정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공감을 끌었다. 그는 “지난주(7월 마지막 주)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을 만났다. 내 얘기를 듣고는 이건 꼭 알려야겠다 싶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 후 홍 장관 측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해 직접 갖다 줬다. 철저히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소 결과도 남아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취임 당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대해 엄벌 의지를 밝힌 김상조 위원장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다. 권리범위에 대한 대법원 선고일도 공정위 결과가 나온 이후로 연기됐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답변했다.

 

김 대표는 “도와준 사람들 때문에 버티고 있다”는 말을 연신 강조했다. 그는 “갖고 있던 강남 아파트와 건물, 직원들도 다 잃었다. 15년 소송하면서 이래저래 80억원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며 “도와준 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도 크다. 여기에 보답하려고 버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남아 있는 대법원 판결에서 이겨도 김 대표에겐 ‘상처뿐인 승리’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가 이 싸움을 끝까지 부여잡는 이유는 ‘좋은 선례(先例)’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고 창업을 독려하면서 정작 이들의 기술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는다”며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맞붙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던 구조적 문제를 조속히 바꿔야 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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