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헌재 공무원 아들 둔 사망사고 뺑소니범, 구속영장 기각…유족들 분노
  • 인천 = 구자익 기자 (sisa3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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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법 “범행사실 인정하고 있으며 도망의 우려 없다”…유가족 “숨진 피해자 고려했어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 있다. 통상적으로 ‘특가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더 무겁게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법률이다. 이는 건전한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특가법이 적용되는 특정한 범죄에는 속칭 ‘뺑소니범’로 불리는 ‘도주차량 운전자’에 대한 규정도 있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피해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법률을 토대로 사망자를 낸 뺑소니범은 거의 대부분 구속된 상태에서 조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이미 범죄를 저질러 놓고 도망 다녔기 때문에,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족과 합의하거나,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다. 

 

 

인천지방법원 전경. ⓒ구자익 기자

 

 


13일 만에 붙잡힌 뺑소니범…아들은 헌법재판소 공무원

 

이런 가운데, 최근 인천지방법원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뺑소니범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바람에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구속영장이 기각된 뺑소니범의 아들이 현재 헌법재판소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의혹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인천 계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인천지법은 지난 8월22일 특가법 상 도주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A(64)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지난 8월6일 오전 5시40분쯤 인천시 계양구 정서진로 귤현대교 아래 부근에서 자신이 운전하던 승용차로 B(80·여)씨를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당시 사고현장에 떨어져 있던 조수석 쪽 백미러 덮개를 토대로 용의차량을 특정한 후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A씨가 이번 사고로 부서진 자신의 승용차를 자기차량손해 담보(자차보험)로 수리한 내역 등의 증거를 확보했다. 이어 지난 8월19일 오후 5시경 인천시 서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A씨를 붙잡아 긴급체포했다. 사고 발생 13일 만이다. 

 

경찰은 A씨가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A씨는 범행사실을 인정했으며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천지역의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가 사망한 뺑소니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유족과 가해자가 합의를 했거나 유족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구속영장이 발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의 아들이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갖가지 의혹을 낳고 있다. 유족들은 법원이 정의롭지 못했고,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숨진 B씨의 아들(50)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듣고 판사에게 찾아갔는데, 판사는 ‘A씨가 나이도 있고, 질병도 있고, 자식도 있기 때문에 법리 상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며 “우리 피해자 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하소연 했다. 이어 “법원이 숨진 어머니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 아들의 직업만 고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자수한 ‘크림빵 아빠’ 뺑소니범은 구속…형평성 논란도 불거져

 

인천지법이 특가법 상 도주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A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일명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이 회자되면서 구속영장에 대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은 2015년 1월10일 오전 1시29분쯤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C(37)씨가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가지고 귀가하던 D(29)씨를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C씨는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발생 19일 만에 아내의 신고와 설득으로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당시 청주지법은 C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C씨가 자수를 하기는 했지만, 도망할 염려가 있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C씨는 뺑소니 직후 자신의 차량을 몰래 수리하는 등 사고은폐를 시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A씨가 자신의 승용차를 자기차량손해 담보로 수리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음에도 인천지법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과 대조적이다.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으로 C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C씨가 유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을 감안했지만, 유족과의 합의가 숨진 피해자 본인과의 합의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숨진 B씨 아들은 “가해자 A씨는 아직 우리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며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에 뭔가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도록 A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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