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만화영상진흥원장 퇴출 후 ‘곳간’에도 군침?
  • 경기 부천 = 김종일·윤현민 기자 (hmyun9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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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에 예산편성권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관련자 파면하고, 부서 폐지해야”

 

부천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장악 시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직원 성희롱 사주(시사저널 8월23일자 ‘부천시, 성희롱 덫 놓고 기관장 강제퇴출 시도’ 보도 참조)에 이어 ‘곳간’에까지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해당기관 이사장에게 예산편성권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관계법에도 규정이 없어 당장 겁박용이란 의혹을 낳는다.

 

최근 표적감사 논란 속에 원장 사임 직후 이뤄진 일이기도 하다. 이에 원장 퇴출 후 출연기관 장악 속셈을 표면화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시도에 해당기관과 관련업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당장 관련 공무원 파면과 주무부서 폐지를 요구했다.특히 관련 녹취파일 공개, 정부 조사, 노조 성명까지 예정돼 파문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부천시청 전경 @경기도

 

  

부천시, 만화영상진흥원에 불법 예산편성권 요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에 따르면, 8월24일 오후 3시쯤 부천시 문화국 김아무개 국장과 만화애니과 최아무개 과장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김동화 이사장이 있는 파주시 작업실을 방문했다. 시가 22일 안종철 전 원장의 사표를 수리한 지 이틀 뒤다. 

 

이날 두 사람은 우선 김 이사장에게 예산편성권 얘기를 꺼냈다. 김 이사장은 “시 문화국 김○○ 국장과 최○○ 과장이 찾아와 시 출연금과 보조금을 주무부서인 만화애니과에서 직접 편성하면 지역 만화가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고 더 효율적으로 집행될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과에서 이 예산들을 직접 다루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법상 해당 예산 편성은 출연기관 몫이다. 지방정부에겐 경영평가·지도감독 등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18조 제1호에서 출자·출연 기관은 매 회계연도의 사업계획 등을 작성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25조 제1호는 출연기관 위탁사업,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등에 대한 지방정부의 지도, 감독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위법까지 해가며 수십억을 쥐락펴락 하겠다는 얘기다. 최근 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시 보조금과 출연금 규모는 ▲2016년 146억5752만여원 ▲2017년 67억2513만여원 ▲2018년 64억7334만여원 등이다.  

 

부천시 문화국 만화애니과 사무실 @김종일 기자

  

 

만화영상진흥원, “관련자 파면, 주무부서 폐지” 강력대응

 

김 이사장은 뜻 밖의 재정편성권 요구에 아연실색 했다. 그는 내심 최근의 ‘직원 성희롱 사주’ 관련 사죄를 기대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시의 출연기관 장악 야욕만 확인한 셈이다. 

 

그는 “이미 출연기관장 퇴출에 성희롱 녹취 사주라는 비열하고 악랄한 수법을 동원한 것만으로도 우리 기관과 만화업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련자와 주무부서에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했다. 김 이사장은 “시 만화애니과 업무 대부분은 우리 기관이 오래 전부터 해 오던 것이라 전혀 새로울 게 없어 해당 과는 그 태생부터 시기상조이며 적절치 않았다”며 “일개 과장이 시 집행부와 출연기관간 오랜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만큼 그 당사자인 최○○ 과장은 파면하고 주무부서인 만화애니과도 폐지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노조, 만화업계 비난성명, 정부 현장조사

 

노조와 관련업계에서도 비난 성명이 잇따랐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노동조합은 27일 성명을 내고 “언론에서 제기한 모든 사안에 대해 부천시의 입장과 명확한 사실을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한다”며 “이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만화계와 함께 분연히 일어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사)웹툰협회와 스토리작가협회도 공동성명서를 통해 “작금의 추악한 의혹 이면에 예산과 행정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시 집행부의 집단 이기심이 자리매김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시 공무원에 의한 만화계 죽이기 사태에 대해 우리 만화계는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부천시의 투명한 조사와 조속한 해명을 요구한다”고 했다. 28일 시청 공무원 노조 등 5개 노조도 이에 동참키로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이번주 중 현장조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긴급이사회에선 성추행 사주 녹취파일도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계자는 “28일 긴급이사회에서 그간 시 집행부가 기도한 만화진흥원 장악 노력을 밝히고 성추행 사주 녹취파일도 함께 공개한 뒤 향후 대응방안을 심도높게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반면, 김아무개 국장과 최아무개 과장은 언론 접촉을 피했다. 이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병원 신세를 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국장은 치과치료 중이며, 최 과장은 연가를 낸 것으로 소속 직원이 각각 확인해 줬다. 이후 기자가 사실여부 확인을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들에게 문자 메시지도 세 차례씩 남겼지만 회신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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