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허용하면 출생률 더 줄어든다고?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9 14:57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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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와 출생률 상관관계 없는데도 낙태 단속이 저출생 대책으로 여겨져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전면 거부하면서 낙태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 사이 합계출산율은 곤두박질쳐 올해 2분기 0.95명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저출산이 심각한데 낙태죄까지 폐지하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낙태를 허용하면 출생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진짜 그럴까.

 

2016년 10월15일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 10번 출구' 등 페미니스트 그룹들과 시민들이 폴란드의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를 모티브로 하는 검은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낙태 단속이 저출생 대책?

 

낙태가 인구조절 장치로 여겨진 건 사실이다. 1960~70년대엔 산아제한 목적으로 정부가 낙태를 권장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월경조정술’이라는 피임법을 국민에게 장려했다. 이는 여성의 자궁을 흡입기로 긁어내는 방법으로, 오늘날 낙태 시술로 여겨진다. 그때 정부의 표어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2009년에도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낙태죄 단속을 내세웠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낙태 줄이기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8월,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 낙태 시술기관 신고센터를 만들어 낙태 단속을 강화했다.

 

 

“낙태율과 출생률은 관계없다”

 

그러나 낙태율과 출생률이 관계가 없다는 건 2005년에 이미 알려졌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이재경 여성학과 교수가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의 연구 용역을 받아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정책의 변화는 출산율의 실질적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여러 국가들에서 출산율 조절 장치의 하나로 낙태 규제를 내세웠지만, 실질적 영향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화여자대학교 이재경 여성학과 교수가 '저출산의 젠더분석과 정책대안 연구' 보고서에 게재한 자료


 

이 교수는 유럽국가의 낙태율과 출생률 간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1996년 기준으로 스페인은 낙태율이 5.7%로 낮은 편이지만 출생률도 1.15명으로 낮다. 반면, 노르웨이는 낙태율 15.6%, 출생률 1.89명으로 둘 다 높다. 폴란드의 경우, 90년대에만 낙태 규정을 세 번이나 바꿨지만 출생률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이 교수는 이를 근거로 “낙태는 단순한 출산조절기술을 넘어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5월2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에서도 제기됐다. 청구인측은 OECD 회원국의 낙태율과 출산율을 비교한 표를 보이며 “낙태율은 낙태 허용 범위나 출산율과 상관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사회경제적 사유나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데, 낙태율은 18.2%를 기록해 그를 허용하는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았다. 동시에 뉴질랜드의 출산율은 2.1명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청구인측은 “이처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면 낙태가 만연해진다는 건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윤정원 여성위원장은 “낙태와 출생률을 연관 짓는 건 구시대적 접근이다.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 중심으로 낙태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낙태를 처벌하는 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모성의 사망률만 높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5월2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 중 한 장면 ⓒ헌법재판소 변론동영상 캡처

 


헌재, 낙태죄 위헌 선고 미뤄

 

한편 이달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낙태죄 위헌 여부 판단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진성 헌재 소장 등 재판관 5명의 임기가 끝나는 9월19일 전에 이뤄지는 마지막 선고에 낙태죄가 포함되지 않았다. 새로 취임할 재판관들이 사건을 다시 검토할 걸로 예상돼,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가 나올지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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